앞뒤 안 맞는 ‘한국형 원잠’…건조 장소가 ‘문제’

미 정부, 미국서 원잠 건조 입장 명확
정부 “원잠, 한국서 건조할 것” 이견
“1호는 한국, 추가는 미국” 대안 부상

입력 : 2025-11-10 오후 3:34:52
[뉴스토마토 박창욱 기자] 한미정상회담 합의문 성격의 ‘조인트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 발표가 지연되고 있는 가운데, 그 배경에 ‘한국형 핵추진잠수함(원자력추진잠수잠)’의 건조 위치를 둘러싼 한미 간 이견이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정부는 논의 초기부터 국내 건조를 전제로 협의가 진행돼왔다고 밝히고 있으나, 미 정부는 원잠을 미국 내 조선소에 건조해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이 지난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10일 업계에 따르면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은 “한국이 원잠을 필리조선소에서 건조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트럼프 행정부의 ‘제조업 부흥’ 기조를 주도하는 상무부가 한미 조선업 협력 프로젝트인 ‘마스가(MASGA)’ 구상을 실현하기 위해 필리조선소뿐 아니라 인근 부품·기자재 산업의 동반 성장이 필요하다는 것으로 분석됩니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도 지난달 30일 한미정상회담 직후 “한국의 원잠 건조를 허용한다”면서 “필리조선소에서 짓게 될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미 국무부 역시 한국 내 원잠 건조가 핵전력 확산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이 사안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반면 대통령실은 “원잠은 한국 내에서 건조하길 바라고 있다”며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습니다. 대통령실은 지난 6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한미 간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 내 건조를 전제로 진행됐다”고 강조했습니다. 또 정부 관계자는 “정상회담 당시에도 이재명 대통령이 ‘우리가 여기서 짓는다’고 직접 언급했다”고 했습니다. 
 
한미간 의견 차이가 지속되는 가운데, 필리조선소에서 원잠을 건조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게 업계의 중론입니다. 한화가 필리조선소에 50억달러(약 7조원)를 추가 투자해 도크 등 핵심 인프라를 확충하기로 했지만, 현대화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지난해 11월 미 해군 로스엔젤레스급 원자력추진잠수함(SSN) 컬럼비아함이 부산작전기지에 입항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특히 미국이 주력으로 생산하는 버지니아급(7800톤급) 원잠은 태평양과 대서양을 오가며 장거리 작전을 수행하는 대양 작전용 대형 모델입니다. 반면 한국의 해역은 수심이 낮고 작전 반경이 좁아, 이 같은 대형 원잠은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평가입니다. 따라서 5000톤급 이하의 중형 원잠이 현실적이며, 이는 국내 조선소에서도 충분히 건조할 수 있는 규모로 분석됩니다. 또 필리조선소는 아직 미 방산업체로 지정돼 있지 않아 원잠 건조가 법적으로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이에 정계 및 외교가에서는 우선 국내에서 선도함(1호기)을 건조하고, 이후 추가 물량을 필리조선소에서 생산하자는 의견이 나옵니다. 1호기를 국내에서 제작하는 동안 필리조선소의 설비와 기술 역량을 강화해, 향후 추가 잠수함 건조가 가능하도록 조선소를 단계적으로 발전시키자는 취지입니다. 그러면 원잠 건조를 명분으로 필리조선소의 방산업체 지정 절차가 속도를 낼 수 있고, 마스가 협력 강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반면 업계는 이 방식은 오히려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입니다. 미국 투자 명분을 고려해야 한다면 차라리 필리조선소가 선도함을 먼저 건조하고, 이후 추가 물량을 한국이 담당하는 방식이 현실적이라는 의견입니다. 업계 관계자는 “납기일이 중요한 사업인데, 우리가 선도함을 완성한 뒤에도 필리조선소의 군함 건조 인프라가 갖춰져 있을지 예측하기 어렵다”며 “일정과 효율성을 고려하면 오히려 필리조선소가 선도함을 맡고 국내가 추가 사업을 맡는 것이 낫다”고 했습니다. 
 
박창욱 기자 pbtkd@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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