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6년 04월 22일 11:00 IB토마토 유료 페이지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IB토마토 홍준표 기자]
한국금융지주(071050)(이하 한투지주)가 예별손해보험(옛 MG손보) 인수전에서 사실상 단독 협상 구도를 확보하면서 '몸값 0원' 수준의 인수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본입찰이 유찰되며 경쟁 구도가 사라진 가운데, 향후 재공고 절차를 거쳐 수의계약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예금보험공사의 지원금 규모를 둘러싼 협상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한국투자증권 본사 (사진=한국투자증권)
22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지난 16일 마감된 예별손보 매각 본입찰에는 한투지주만 참여하면서 유효 경쟁이 성립되지 않아 유찰됐다. 국가계약법상 재공고 입찰에서도 유찰될 경우 매각 주체인 예보는 단독 원매자와 수의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 예보는 재공고를 실시하겠다는 입장이지만, 관련 업계에선 사실상 한투지주와의 1대1 협상 구도가 형성됐다는 평가다.
'몸값 0원' 인수 가능성, 예보 지원금 규모 '관건'
시장에서는 한투지주가 예별손보를 상징적 금액에 인수하는 이른바 '1원 딜' 시나리오도 거론되고 있다. 예별손보는 현재 자산보다 부채가 많은 완전 자본잠식 상태로, 지분 가치가 사실상 '0원'이거나 그 이하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예별손보는 지난해 말 기준 자본 총계가 약 -4870억원이다. 총자산은 약 3조8191억원인 반면, 총부채는 4조3061억원에 달해 외부 자본 유입 없이는 독자적인 정상화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지급여력 측면에서도 상황은 녹록지 않다. 예별손보의 지급여력(K-ICS) 비율은 경과조치를 적용한 기준으로도 -9.69%를 기록 중이다. 이는 금융당국 권고치인 130%를 크게 밑도는 수준으로, 한투지주는 인수 이후 해당 수치를 최소 100% 이상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이에 시장에선 협상의 초점은 매각가가 아닌 예보 지원금 규모에 달려있다고 본다. 최근 한투지주는 예별손보를 정상화하기 위해 필요한 약 1조3000억원의 자금 중 1조원 이상을 예보가 공적자금으로 메워주길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투지주가 이처럼 강공을 펼칠 수 있는 이유는 든든한 대안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 시장에는 롯데손해보험과 KDB생명 등 보험사 매물들이 대기 중이다. 한투지주 입장에서는 예보와의 협상이 틀어지면 언제든 판을 깨고 다른 매물로 눈을 돌리면 그만인 셈이다. 특히 KDB생명은 과거 수차례 매각이 실패하면서 재차 매물로 나올 시, 몸값도 크게 낮아질 것으로 관측된다.
'계약이전' 리스크…행정적 혼란에 주주대표소송 가능성도
반면 예보는 상대적으로 절박한 상황이다. 이번에도 매각에 실패하면 예별손보의 122만건 계약을 대형 손보사들에 강제로 나눠주는 계약이전(P&A) 절차를 밟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행정적 혼란은 물론 정책적 실패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특히 제각각 운용되는 전산 시스템를 고려하면 122만건의 계약이 이관되는 과정에서 크고 작은 오류가 발생할 위험성도 제기된다.
계약이전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소비자 혼란 역시 부담 요인으로 꼽힌다. 관련 업계에선 보험계약이 단순 금융상품과 달리 장기간 유지되는 특성을 가진 만큼, 보험료 납입 조건이나 보장 내용이나 특약 구성 등이 미세하게 달라질 경우, 민원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특히 기존 계약 조건이 이전 과정에서 일부 변경되면 소비자 신뢰 훼손으로 직결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IB토마토>에 "한투지주가 통매각 방식으로 인수하면 기존 시스템과 인력을 그대로 승계하기 때문에 데이터 이관에 따른 리스크가 사실상 사라지게 된다"라며 "보험사는 민원 평가가 곧 평판이자 영업권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금융당국과 예보 입장에서는 민원 폭탄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한투지주와의 협상을 성공시키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계약이전 당사자인 대형 손보사 입장도 금융당국이 풀어야 할 숙제로 꼽힌다. 일각에서 계약이전에 대한 법적 강제성을 둘러싼 행정소송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행 제도상 부실 금융기관의 계약을 우량 금융기관으로 강제 이전하는 것은 금산법 제10조 등에 따라 보장되어 있다. 다만 대형 손보사 절반 이상이 상장사라는 점이 문제다.
5대 손보사 가운데 현재
삼성화재(000810),
현대해상(001450),
DB손해보험(005830)은 코스피에 상장되어 있으며, 메리츠화재, KB손해보험은 비상장사다. 상장사인 삼성화재, 현대해상, DB손보가 부실 계약을 강제로 떠안게 될 경우, 주주에 대한 책임 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다. 계약이전 과정에서 주가 하락으로 이어지게 된다면 주주들로부터 배임 혐의로 소송을 당할 가능성도 있다. 특히 최근 상법 개정으로 인해 손해배상이 폭넓게 인정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에 관련 업계에선 금융당국의 정책적 판단과 보상 구조가 병행되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배임 책임으로까지 이어질 가능성은 제한적이라는 시각이다. 다만 주주대표소송 등을 통해 시장의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진단이 뒤따른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IB토마토>에 "사익을 취한 것이 아니고 절차적 정당성을 갖췄다면 설령 나중에 회사에 손해가 발생했더라도 배임죄까지 이어지긴 어렵다"라면서도 "주주들 입장에선 계약이전 과정을 두고 주주대표소송에 나설 수 있어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홍준표 기자 junpyo@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