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송종호기자] "돼지고기 값이 올라 삼겹살 값도 올려야 하지만 주변 식당들과 경쟁 때문에 가격을 마음대로 올릴 수도 없다. 손님도 눈에 띄게 줄었다. 자금 여유가 있는 사람은 버틸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이 바닥(식당업)에서 몇개월 안에 퇴출될 것이다." (서울 마포의 한 삼겹살 집 주인)
"삼겹살 1인분에 1만3000원까 올랐다. 더 이상 소주 한 잔 안주로 먹을 서민용 음식이 아니다. 닭고기, 쇠고기는 물론 생선값까지 올라서 아예 육식을 끊고 채식만 해야 할 것 같다."(서울 망원동의 한 직장인)
지난 16일 밤 서울 마포에서 만나 인근 돼지고기 음식점 상인들은 모두 울상이었다. '원조 마포 갈매기살' 식당을 운영하는 고창근(40)씨는 "1000원, 2000원 가격을 올리긴 했지만, 물건이 없어 판매자체가 어려울 지경"이라고 한숨을 지었다.
돼지고기 도매가격은 이달 초 설을 기점으로 최고치를 경신한 이후 내려가지 않고 있다. 구제역 사태로 전체 20%에 육박하는 돼지가 살처분됐고, 이동제한과 도축장 폐쇄 조치 등으로 수급이 불안정한 탓이다.
기상이변으로 수산물 어획량이 줄어들면서 고등어·갈치·오징어 등의 가격도 뛰었다. 중국집 짬뽕 요리에서 오징어 다리를 찾을 수 없게 된 지 오래다.
생활물가 중에서도 특히 구제역 파동에 따른 육류가격 급등과 기상이변으로 인한 생선류가격 상승으로, "고기 먹기 힘들어졌다"는 말이 곳곳에서 들린다. 육류·어류를 요리해서 파는 음식점은 아예 '줄폐업'을 걱정할 정도다.
◇ 돼지고기 가격인상..음식점 폐업 각오
◇ 돼지고기 도매가격 추이
(단위:원, 자료:축산물품질평가원)
17일 축산물품질평가원에 따르면 돼지고기 대표가격은 전국 평균 kg당 5992원으로 구제역 발생이 확인된 지난해 11월 29일 3703원에 비해 60%이상 급등했다.
설 연휴 직전인 지난달 31일 6917원까지 치솟았던 돼지고기 가격은 이후 5900원선 밑으로 내려가지 않고 있다.
'대표가격'이란 축산물 공판장에서 경매·입찰의 방법으로 팔리는 돼지고기 경락가격의 합계액(당일 포함 직전 2일간)을 중량합계로 나눈 가격이다.
마포에서 삼겹살 식당을 운영하는 박모씨는 "본래 강원도에서 고기를 가져왔는데, 지금은 전라도에서만 고기가 올라온다"며 "유통비용이 2배 가까이 더 든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가계가 삼겹살 1인분에 6500원으로 제법 비싼 삼겹살집인데도 불구하고 유통비까지 계산하면 2만1000원대에서 거래가 이뤄져야 한다"며 "현실적으로 가계운영 자체가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돼지고기 음식점 운영자들은 "이 상태로 수급이 불안정하다면 2월 이후에는 줄폐업이 이어질 것"이라며 경영난이 심각한 상태임을 강조했다.
서울 안암동에서 곱창집을 운영하는 김모씨는 "손님 수가 급감했다"며 "구제역의 직접적인 원인보다 침출수 보도가 나가면서 더욱 돼지고기에 대한 좋지 않은 인상이 굳어진 것 같다"고 구제역 대비에 안일한 정부를 비판했다.
같은 지역에서 중국집을 운영하는 박모씨도 "체감하는 돼지고기 가격이 3배 정도 올랐다"며 "탕수육 가격 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다 가격을 올려야 하는 상황이지만 손님들은 1000원만 인상해도 발길을 돌릴 것"이라며 가격인상에 대한 부담을 토로했다.
박씨는 "가격이 오르면 손님들이 더 줄어들 것 같아 아직은 가격을 올리지 못하고 견디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 16일 저녁, 마포와 안암동 지역은 저녁식사와 뒤풀이 모임으로 손님들이 많아야 할 시각임에도 음식점들은 한산했다.
하지만 2월 이후에는 가게문을 닫거나 가격을 인상할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앞서 1월에는 대형 할인 유통업체 아마트는 도매가 인상에 맞춰 삼겹살뿐만 아니라 목살·앞다리살·뒷다리살 등 돼지고기 소매가격을 일제히 15%~20% 인상한 바 있다.
돼지고기 대란이 소비자 피해 뿐만 아니라 상인들의 마진감소와 줄폐업으로 이어질 수 도 있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곽범국 농림수산식품부 식품유통정책관은 "수급상황에 관해 정부는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수급이 원할할 수 있도록 도축검사와 등급판정 인력을 휴일에도 근무하도록 조치했다”고 말했다.
◇ 기상이변에 수산물 가격도 상승..'피시플레이션' 빨간불
큰폭의 물가 오름세에 수산물도 예외가 아니다. 인플레이션 우려가 바닷속으로까지 번져가고 있다며 '피시플레이션(fishflation)'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피시플레이션'은 수산업(fisheries)과 인플레이션(inflation)을 합쳐 만든 신조어다. 농업(agriculture)과 인플레이션(inflation)을 합성한 애그플레이션을 본떴다.
통계청이 16일 발표한 '2010년 어업생산동향조사 결과(잠정)'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전체 어업 생산량은 312만6000t으로 전년대비 5만6000t 감소했지만, 어업생산금액은 7조4137억원으로 4895억원 증가했다.
생산량은 줄어들었는데 생산금액이 늘어난 것은 가격이 큰 폭으로 뛰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1인당 수산물 소비량이 55kg으로 전 세계에서 일본(64.6kg)다음으로 많아 '피시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현실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최근 강원지역에 기상관측이래 최대 폭설이 내리면서 출항 자체를 할 수 없게 되고, 폭설로 인한 도로사정 악화 등에 활어차 운행도 원활하지 않아 피시플레이션 현실 가능성은 더욱 높아졌다.
국제 수산물 가격도 고점을 뚫고 있다. 지난달 5일 일본 도쿄의 최대수산시장 쓰키지시장 경매에서 342㎏짜리 홋카이도산 참다랑어가 사상 최고가인 3249만엔(약 4억4000만원)에 거래됐다.
유엔산하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수산물가격지수는 지난 10년간 40% 급등하며 지난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서울시 동대문구 제기동에서 활어집을 운영하는 김영중(45)씨는 "지난 가을부터 가격 압박이 시작됐다"며 "가격을 올리기는 어렵고, 유통마진이라도 줄이기 위해 직접 횟감를 운반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자본력이 있는 가계들은 버티겠지만 수산물 가격이 올라감에 따라 손님들에게 가격인상을 통해서라도 부담을 덜어야 할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다.
농수산물유통공사에 따르면 16일 거래 기준으로 고등어의 kg당 경락가격은 4380원으로, 지난해 대비 무려 38.6% 올랐다. 물오징어는 67.3%, 갈치 kg당 1만6700원으로 1년 전보다 24.6%상승했다.
이동우 국립수산과학원 자원관리과장은 "고등어나 갈치, 오징어처럼 난류성 어족의 가격이 오른 것은 이상기온 탓으로 잡히는 물량이 없기 때문이다"며 "더구나 전반적으로 자원량이 줄어들고 있는데, 지난해 새끼어종을 많이 잡아, 더 힘들어진 상황”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