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송종호기자] 한국의 물가상승 압력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회원국 가운데 특히 심한 것으로 조사됐다.
4일 OECD의 3월 소비자물가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같은달과 비교해 4.7% 급등해 에스토니아(5.2%)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았다.
지난 1월에는 34개 회원국 가운데 4위였지만 물가가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OECD소비자 물가 상승률 통계에서 2월 처음 2위를 기록한 이후 두달 연속이다.
물가 상승 기록도 2월 4.5%, 3월 4.7%로 2008년 10월 3.7% 이후 매달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 외부 충격에 약한 취약한 경제구조
정부는 물가급등은 금융위기 극복 과정에 풀린 유동성 자금이 원자재값 상승 등을 부추긴데다 기상이변 등에 의한 농산물 수급 불균형도 가세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저금리·고환율을 내세운 성장 우선 경제정책의 부작용과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경제구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유철규 성공회대 교수는 "한국의 산업구조상 대외충격에 취약하기 때문에 OECD국가들 가운데 물가상승 압력이 더 높다"고 평가했다.
유 교수는 "정부가 자연재해와 중국, 중동 문제 등을 물가상승 원인으로 설명하지만 그보다 앞서 충격에 약한 경제시스템을 바꾸는 노력을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유통구조상의 문제도 지적하며 "유가 인상이 소비자에게 전가되는 방식이 서구와 달라 물가 상승이 가파르게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조성봉 한국개발연구원(KDI)연구원도 "우리나라는 에너지의 98%를 수입하는 국가"라며 "고유가 시대에 자원과 석유의존도가 높은 경제시스템을 가지고 있다보니 물가상승 압력이 높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 실패한 성장정책..실기한 물가정책
'저성장 ·고물가'에 대비했어야 했는데 성장우선 정책만 추구해 금리 인상시기를 놓치고, 전반적인 물가 대책에 실기했다는 목소리도 높다.
신관오 고려대 교수는 "한국은 수출이 잘 되면 성장률이 높아지고 환율은 하락해 물가가 안정되는 경향이 있고, 반대로 수출이 부진하면 성장률은 하락하고 환율은 상승해 물가가 높아진다"며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 한국은 저성장·고물가의 위험이 높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정작 지금 상황에서 정부가 '저성장·고물가'에 대비할 수 있는 정책은 많지 않다.
금리 인상과 환율 인하가 물가대책이지만 각각 가계부채와 수출 기업의 피해가 우려돼 적극적으로 실행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금리의 경우 한국은행이 지난해 7월 처음 금리를 올린 후 4번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11월부터는 두 달에 한 번꼴로 금리 인상을 실행했지만 물가는 당분간 잡힐 가능성이 없어보인다.
유철규 교수는 "정부가 가계부채를 이유로 금리인상을 주저하지만 실제로는 가계부채를 늘리는 정책만 쏟아내고 있다"며 "물가 안정을 위해 금리 카드를 못쓰는 이유를 스스로 만들고 있는 '자가당착(自家撞着)'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 가파른 물가상승 압력..갈피잡지 못하는 정부
현재 OECD가 발표한 한국의 식품물가는 지난해 같은달과 비교해 1월 11.6%, 2월 12.2% 급등해 매달 에스토니아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3월에도 10.9%로 2위를 보였다.
OECD회원국 가운데 3개월 연속 식품물가가 두 자릿수의 상승률을 보인 국가는 에스토니아와 한국뿐이었다.
소비자 물가에서 식품과 에너지물가를 제외해 장기적인 물가 상승압력을 나타내는 근원물가(코어인플레이션) 역시 2월 2.5%, 3월 2.7%로 매달 증가세다.
이처럼 물가상승 압력은 갈수록 높아만 지고 있고, 정부의 대응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