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복근무도 지휘받아야 할 판", 경찰들 부글부글

정부의 밀어붙이기 수사권 조정, 후유증 크다

입력 : 2011-06-23 오후 3:46:42
[뉴스토마토 권순욱, 오민욱기자] 검경 수사권 조정을 둘러싼 후유증이 심상치 않다. 정부의 밀어붙이기식 합의문안 작성이 남긴 새로운 논란거리도 한 둘이 아니다. 현 정부의 성과주의의 한계가 드러난 것이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다.
 
◇ 부글부글 일선 경찰, "잠복근무도 지휘받아야 할 판"
 
일선 경찰서 강력계의 어느 팀장은 "정부 조정으로 만든 합의문안에 따르면 잠복근무도 검찰의 지휘를 받아야 할 판"이라며 "일선 강력계 형사들이 부글부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논란이 생기는 이유는 지난 20일 정부가 내놓은 형사소송법 합의문안에 '모든 수사'라는 표현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수사현실에서는 범죄 용의자를 잡기 위한 잠복근무는 사실상 수사지휘를 받지 않고 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번 법률 개정으로 오히려 검찰 지휘를 받게 생겼다는 것이다.
 
특히 검찰은 정보수집과 첩보활동 단계를 내사로 제한해서 해석하는 반면, 경찰은 정보수집과 첩보활동 이외에도 수집된 정보에서 범죄 혐의가 있는지 확인하는 활동을 모두 내사로 보고 압수수색과 계좌추적 등을 포함해 그 범위를 확대 해석하고 있다.
 
물론 청와대가 나서서 중재에 나서기도 했다. 지난 21일 임태희 대통령실장은 "현재도 지휘를 받지 않고 경찰이 하는 내사는 모든 수사 범위에서 제외된다"고 말했다.
 
이어 22일에는 청와대 관계자가  "현상 유지란 경찰이 내사를 사실상 수사에 준하는 것으로 확대해도 안되고, 검찰 역시 관행인 경찰 내사를 더 제어하려 해서도 안된다는 것"이라며 "쉽게 말해 경찰이 더 가져도 안되고, 검찰이 더 간섭해서도 안된다는 뜻"이라고 말해 진화에 나섰다.
 
쉽게 말해서 "그동안 하던대로 계속 하라"는 이야기가 된다.
 
결국 "이럴 바에야 형사소송법 개정을 차라리 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경찰의 반발은 역설적으로 청와대 관계자들의 발언에 의해서 뒷받침되고 있는 것이다.
 
◇ '내사'를 둘러싼 논란은 이미 평검사 회의에서 예고됐던 것 
 
사실 '내사'가 '모든 수사'에 포함되는지 여부를 둘러싼 논란은 지난 19일 서울중앙지검에서 열린 평검사 회의에서 예고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날 평검사들이 관심 깊게 논의한 부분이 다름 아닌 '내사'에 관한 것이었다.
 
평검사들은 '수사개시권'을 인정하는 문제를 '내사에 대한 통제' 문제로 바라보았다.
 
특수부의 모 검사는 "경찰이 추구하는 바대로 하면 사법경찰관이 행사하는 내사는 완전히 통제 밖에 놓이게 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검사도 "개시권을 주는 순간 검찰이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며 "실제 경찰은 송치명령 내사에 관한 지휘를 받지 않겠다는 취지"라고 말해 '내사'에 대한 통제권을 잃어버릴 것을 우려했다.
 
실제로 지난 21일 국회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에 출석한 조현오 경찰청장은 "이번에 개정된 형사소송법 196조 1항의 '모든 수사'에서 경찰의 '내사'는 빠진다"면서 "'내사'는 '수사'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강조한 바 있다.
 
검찰 입장에서 이같은 경찰 입장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향후 법무부령을 손질하는 과정에서 대법원 판결을 근거로 내사를 통제하려 들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 국회차원의 논의가 정부차원로 넘어간 것도 문제
 
이번에 벌어진 수사권 조정문제는 그동안 국회 차원의 입법권으로 다루어온 사안이었다. 그런데 정부가 만들어서 사개특위가 의결한 합의문안은 이제 국회의 손을 떠나 정부 차원의 논의로 넘어갔다. 법무부령은 말 그대로 정부에서 권한을 갖고 있는 명령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가 되는 '내사'에 관하여는 법무부령 사법경찰관리 집무규칙 제 20조 1항에 있는 "범죄에 관한 신문 기타 출판물의 기사, 익명의 신고 또는 풍설이 있을 때에는 그 진상을 내사한 후 범죄가 있다고 인정될 때에는 즉시 수사에 착수하여야 한다"라는 규정이 유일하다. 내사의 범위에 관해서는 규정이 없다. 이제 이 규정을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검찰이 느긋한 이유는 대법원 판례가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지난 2001년 10월 "수사를 개시하는 행위를 한 때에는 이 때에 범죄를 인지한 것으로 보아야 하고, 그 뒤 범죄인지서를 작성하여 사건수리 절차를 밟은 때에 비로소 범죄를 인지하였다고 볼 것이 아니며"라고 판결했다. 쉽게 말해서 범죄인지서 작성여부와 관계없이 경찰이 말하는 내사행위도 수사행위로 본다는 것이다.
 
결국 경찰 입장에서 보면 검찰의 수사지휘권이라는 통제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기 위해 형사소송법 개정에 매달렸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형사소송법보다 하위인 법무부령에 의해 제약을 당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물론 청와대가 직접 나서서 합의문안을 이끌어낸만큼 법무부령을 손질하는 과정에서 경찰의 이같은 입장을 반영해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일선 경찰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검찰의 수사지휘권에서 벗어나기는 요원해졌다는 불평을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불만의 목소리를 단순히 '밥그릇의 문제'로만 보기엔 이번 논란이 간단치 않다.
 
그래서 시끄러운 논란을 일단 잠재워놓고 보자는 청와대의 밀어붙이기식 행정이 더 큰 논란을 잉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경찰 내부에서는 조현오 청장이 책임을 지고 퇴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고 일선 경찰서 강력계 팀장은 전했다.
 
뉴스토마토 권순욱 기자 kwonsw87@etomato.com 
오민욱 기자 shprince81@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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