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장퇴근·진짜퇴근'..하루에 두번 퇴근하는 공무원들

박재완표 '유연근무제'.."현실성 없는 제도 왜 시행하나"

입력 : 2011-08-03 오전 11:27:08
[뉴스토마토 송종호기자] "일단 오후 5시에 퇴근한다. 만날 사람이 없어 혼자 운동을 하거나 사우나에 가서 쉬다가 저녁 7시쯤 다시 출근..다 못끝낸 일 마저 하고 진짜 퇴근은 밤 10시 넘어야 한다." (기획재정부 고위관계자)
 
박재완 기재부 장관이 '오전 8시 출근, 오후 5시 퇴근'이라는 유연근무제를 실시하겠다고 밝힌 뒤 과천 공무원들의 출퇴근 시간이 복잡해졌다.  
 
일부 직원들은 눈치를 보다 결국 유연근무제를 신청해 '8 to 5'(오전 8시 출근, 오후 5시 퇴근) 또는 '10 to 7' 근무를 하고 있다. 또 다른 일부 직원들은 출근만 8시, 퇴근은 종전처럼 10시다. 퇴근시간을 억지로 5시에 맞추기 '위장퇴근'(?)을 한 뒤 다시 사무실로 돌아와 밀린 업무를 보고 밤늦게야 '진짜 퇴근'을 하는 직원도 있다. 
 
박 장관은 지난달 27일 경제정책조정회의를 주재하면서 '8시 출근, 5시 퇴근을 솔선수범하겠다'고 밝혔다. 장시간 근무에서 벗어나긴 힘든 중앙부처 공무원들에게 느닷없이 유연근무제를 제안한 이유는 대통령의 '내수진작' 요구에 모범이 되겠다는 취지에서였다. 
 
하지만 박 장관 역시 5시 퇴근은 할 수 없었다. 오후 6시 넘어 끝난 청와대 회의 때문에 첫날부터 자신의 약속을 지킬 수 없었다.
 
과천 공무원들은 한마디로 '유연근무제는 현실적으로 실행에 옮기기 어려운 지시'라는 주장이다.
 
이달 말까지 내년도 예산 심의의 큰틀을 갖춰야 하는 예산실 직원들은 대부분 밤 12시까지 일을 하고 있다.
 
예산실 한 서기관은 "요즘 같이 바쁠때는 새벽 1시 전에 퇴근한 적이 없다"며 "'8-5 근무제'는 꿈도 못꾼다"고 말했다.
 
'10시 출근, 7시 퇴근'을 신청했다는 한 사무관은 "8시 출근, 5시 퇴근을 실행하는 경우는 초등학생을 둔 여자직원 가운데 이따금 있을 뿐"이라며 "퇴근 시간 7시를 지키는 일도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또다른 국장급 재정부 관계자는 "일찍(오후 5시) 퇴근해도 약속을 잡을 수 없어 혼자 식당이나 사우나를 방황할 수 밖에 없다"며 "사회 전체적으로 5시 퇴근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상태인데 공무원들만 '8 to 5 근무제'로 내수를 살리겠다는 목표는 달성하기 어려운 지침"이라고 밝혔다.
 
현재 재정부 직원 중 유연근무제를 신청한 공무원은 90명이다. 이 가운데 직급이 높은 한 공무원은 "공식적으로 5시에 퇴근해서 운동하고 저녁에 일하러 다시 사무실로 온다"고 밝혔다. 쌓인 일을 두고 퇴근할 수 없어 '두 번 퇴근'하는 셈이다.
 
한 재정부 직원은 "본인도 지키기 어렵고 직원들도 지키기 힘든 유연근무제를 장관이 왜 꺼냈는지 모르겠다는 게 속마음"이라고 전했다. 
 
지난 2일 전국사무금융노동조합은 서울 광화문 정부중앙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공기관 유연근무제 확대 방침 철회를 요구했다.
 
전국사무금융노동조합은 이 자리에서 "이미 실효성을 상실한 유연근무제 확산을 강요하는 것은 정치적 쇼"라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뉴스토마토 송종호 기자 joist1894@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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