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코의혹)대출 미끼로 중소기업 협박하는 은행

"대출상환 연기해 줄테니 소송 취하해라"

입력 : 2012-02-09 오전 9:21:04
[뉴스토마토 특별취재팀]이른바 '키코 쇼크'가 발생한지 올해로 4년째다. 200여개 중소기업들은 은행들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참패하고 129개사가 현재 항소심을 진행 중이다. 이미 항소심에서 패소한 11개사의 소송은 대법원에 까지 올라가있다.
 
법원 재판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가려진 의문점이 있다. 그렇게 많은 중소기업들은 왜 키코상품에 가입했는지다.
 
일각에서는 복잡하고 위험성이 예견됐다면 당연히 계약을 피했어야 한다는 질타와 함께 중소기업 자신들에게도 적지 않은 과실이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심지어는 환율로 수익을 거둬 이른바 '대박'을 치기 위한 투기심의 발로가 아니었느냐는 시각도 있다.
 
◇중소기업들은 왜 KIKO에 가입했나
 
그러나 중소기업과 은행들간의 관계를 이해하고 있는 전문가들이 보는 관점은 다르다. 키코상품 자체가 이익을 내기 위한 상품이 아닌데다가 절대적으로 우월적인 지위를 갖고 있는 은행들의 집요한 계약 권유를 중소기업들로서는 거절하기 어려웠을 거라는 분석이다.
 
한국파생상품학회 회장을 역임한 오세경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중소기업들이 키코상품 계약을 한 것은 이익을 내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환위험을 피하기 위해서였다"고 설명했다.
 
오 교수는 "환위험을 헤지(hedge)하기 위해서는 코스트, 즉 비용(cost)이 드는데 은행들은 키코상품이 비용이 들지 않는 '제로코스트(zero cost)'라고 소개하면서 가입을 시켰다"면서 "그러나 사실상 제로코스트도 아니었고 헤지할 수 있는 구간도 지나치게 좁았다"고 말했다.
 
그는 "다시 말해 키코상품은 헤지상품이라고 볼 수 없다"면서 "이런 사정을 잘 모르는 중소기업들에게 키코상품을 판매한 것은 은행들에게 문제가 있다"고 꼬집었다.
 
◇은행들 국제표준계약서 생략
 
그는 "기업들이 키코상품을 샀을 때 신중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지만, 사실은 은행들이 제대로 설명을 안 한 것에 더 주목을 해야 한다"면서 "키코 같은 장외상품을 계약할 때 작성하는 국제표준계약서(INSDA)를 쓰지도 않았기 때문에 기업들은 자세한 설명을 들을 기회조차 없었다"고 설명했다.
 
오 교수는 이어 "'계약 상대방인 중소기업들도 조심했어야 한다'는 명제를 아무리 감안 하더라도 키코라는 복잡한 상품을 그같이 불성실하게 판매했다는 점에서 은행은 무거운 책임을 벗어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키코상품에 기업들이 가입한 경위에 대해서도 은행이 우월적 지위를 악용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상당수의 중소기업은 항상 자금압박을 받아 대출에 목을 매기 때문이다. 은행으로서는 상품을 팔면서도 목에 힘을 줄 수 있는 상대가 바로 중소기업인 셈이다.
 
A어패럴은 30년간 건실하게 커 온 중견기업이다. 키코상품에 가입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A어패럴 자금관리 담당상무는 평소 거래하던 B은행으로부터 키코상품 권유를 받고 너무 기업쪽에 불리하다고 생각해 거절했다. 그러나 은행관계자는 환전이나 기타 금융관련 업무에 불이익을 줄 것 처럼 으름짱을 놨다.
 
◇은행이 신용장까지 옭아 매..결국 파산
 
울며 겨자먹기로 키코상품에 계약한 A어패럴은 그러나 2008년 국제 금융위기 직격탄을 맞으면서 기울기 시작했다. 계약상 은행에 지급하기로 한 키코결제금액을 대출을 받아 충당해야 할 정도로 급격히 사정이 악화됐다. 매출이 75% 급감하면서 업계에서 쌓아온 신용도 떨어졌다. 은행들이 신용장(L/C)까지 옭아매는 바람에 회사 사정은 더욱 악화됐다. 금감원 등에 민원을 제기했지만 답이 없었다. 2011년 11월 A어패럴은 파산했다.
 
키코 피해기업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는 지난 6일 서울 서초동 법원종합청사 앞에서 집회를 열고 키코소송에 대한 공정한 판결을 촉구하면서 A어패럴과 같이 은행측의 집요한 권유로 키코상품에 들었다가 문을 닫은 기업이 적지 않다고 주장했다.
 
공대위 김화랑 사무차장은 이날 집회에서 "기업들은 은행을 믿고 키코상품 계약을 했지만 수십억에서 수백억의 손해를 입었다"며 "소송이 제기된 뒤 은행들은 기업들에게 소송을 취하하면 대출상환 기일을 연기해주고 대출금리를 낮춰주겠다고 꼬드겨 소송을 취하시켰다"고 주장했다.
 
◇"대출상환 연기해 줄테니 소송 취하해라"
 
키코계약을 맺었다가 문을 닫은 기업들 중에는 기구한 사연도 적지 않다.
 
C산업기술은 D은행의 오랜 우수기업고객으로, 신년이 되면 은행장이 직접 초청할 정도로 예우를 받았다. 2007년 부행장이 인솔해 동남아에서 실시한 금융공학센터 교육에서 C산업기술 대표는 "키코가 중소기업 외환관리에 가장 적합한 헤지상품"이라는 D은행측의 교육에 키코상품 계약을 맺었다. 그동안 맺어온 은행과의 신뢰가 크게 작용했다.
 
그러나 2008년부터 키코 월별 결제금액으로 회사 유동성에 문제가 발생하더니 자금압박이 심해지면서 큰 위기가 찾아왔다. 급기야 C산업기술은 법원에 기업회생을 신청했고, D은행은 1년뒤 C산업기술을 170억원에 매각 공고했다.
 
C산업기술 대표 이사는 회사를 잃고난 후 "40년 사업을 했는데 키코로 인해 내 손에 남은 것은 빚밖에 없다"며 "이런 나라에서 어떻게 기업가 정신이 클 수 있겠느냐"며 비탄한 심정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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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