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료, 이대론 안된다!)①'원가주의' 원칙따라 새 체계 도입해야

(집중기획)"일반용·산업용·교육용, 전압용 요금체계로 전환 필요"

입력 : 2012-05-16 오후 6:30:35
[뉴스토마토 이보라기자] 전기요금 인상 여부를 놓고 정부와 산업계의 충돌이 깊어지고 있다. 한국전력의 적자폭이 해마다 누적된 탓에 이제 요금을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는 게 정부 측 주장이인데, 전력 대란(블랙아웃)에 대한 두려움도 짙게 깔려 있다. 반면 산업계는 생산원가 상승에 따른 소비자 부담을 내세우며 정부에 맞서고 있다. 심지어 전기료를 인상하려면 산업용뿐만 아니라 일반 가정용까지 현실화하라며 국민을 볼모로 잡았다. 경영난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부담 여력이 고민거리다. 양측 간 충돌 속에 또 다시 국민은 실종됐다. 피해는 고스란히 서민들에게 전가될 가능성이 크다. '전기요금' 문제의 본질과 현상을 진단하고, 해법을 몇차례로 나눠 짚어본다. [편집자]
 
 
한국전력이 최근 정부에 전기요금을 평균 13.1% 인상해줄 것을 건의했다. 경제 5단체를 비롯한 산업계는 지난 15일 전기료 인상을 자제해달라는 내용의 건의서를 정부에 제출하며 반발했다. 서민부담 가중에 물가상승까지…. 전기요금 문제가 다시금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난 한전의 적자규모를 지나칠 수는 없다. 공기업의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에게 전가되기 때문이다. 한전의 적자는 2008년 이후 총 8조원에 달한다. 하루에 내는 이자만 60억원이 넘는다.
 
전기요금을 원가 수준으로 올려 적자를 메우지 못하면 더 큰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경고했다. 윤철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국장은 "한전이 하루에 내는 이자비용은 금융기관 배만 불려주는 것으로, 하루빨리 전기요금 현실화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한경 에너지경제연구원 박사는 "전기요금을 원가 수준으로 올리는 전기요금 현실화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지금 당장 모든 전기료를 원가로 올리는 게 힘들다면 일반 국민에 비해 부담 여력이 있는 대기업 중심으로 산업용 전기를 일단 원가에 가깝게 인상하자는 게 정부의 생각 같다"고 말했다.
 
◇"100원에 팔면 12원 손해보는 구조"
 
                                                      <2012. 한전>
한전의 적자는 원가에 못 미치는 전기요금 때문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전기를 만드는데 들어가는 비용보다 판매하는 원가가 더 싸기 때문이다. 한전의 원가회수율은 약 88.4%다. 쉽게 말하면 100원짜리 전기를 88원에 팔아 12원씩 손해를 본다는 말이다.
 
전문가들은 원가에 미달하는 요금수준이 지속되면서 산업용 전기, 심야전기, 농업용 전기 등 비효율적인 전기 소비가 가파르게 늘어났다고 진단했다. 전기료를 원가 수준으로 올려 불필요한 소비를 줄여야 한다는 주장의 배경이다. 
 
전기료 같은 규제적 에너지 요금을 결정하는데는 원가주의, 공정보수, 공평의 원칙이 작동한다. 원가주의 원칙은 요금을 발생원가를 기준으로 산정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원가주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정 박사는 "2008년 이전에는 대체로 원가에 근접한 수준이었지만 2008년 이후 유가가 급등했는데도 총선, 대선 등을 의식한 정치권이 물가인상 우려로 전기요금을 동결하거나 인상을 억제한 것이 지금의 결과를 초래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전기요금은 용도에 따라 가격을 매긴다. 정부는 주택용과 일반용은 전기를 '소비' 용도로 보고, 에너지 절약을 유도하기 누진세를 두는 등 상대적으로 높은 요금을 부과했다. 반면 산업용과 농업용은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주택용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요금을 책정했다. 전력정책 방향에 정부의 의지가 담긴 것이다.
 
그 결과 우리나라는 전기 '다(多)소비 국가'가 됐다. 우리나라의 GDP 대비 전력사용량은 OECD 평균의 1.7배에 달하고 1인당 전력소비량은 2007년부터 일본을 추월했다.
 
한 연구원은 "지금의 전기요금제도는 정부의 잘못된 정책으로, 지나치게 물가측면만 강조되서 전기요금이 희생된 꼴"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가격을 시장기능에 맞게 맞추거나, 그게 아니면 근접한 수준은 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 일반용·산업용·교육용, 전압용 요금체계로 전환해야
 
◇전체 전력 사용량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산업계는 정부의 정책적인 '혜택'을 받아왔다.
 
전문가들은 우선 용도간 요금격차를 축소해 원가에 근접한 수준으로 요금을 올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주택용과 농사용 가로등용은 지금의 용도별 체계로 유지하되, 현재의 일반용·산업용·교육용을 전압용 요금체계로 전환해야한다는 방안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 지난 2009년 지경부가 제시한 '고유가시대를 대비한 에너지가격구조 개선방안'에 따르면 2012년 1월에는 전압별료 요금을 통합하기로 돼 있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실행된 것이 없어 '로드맵'으로만 남아 있는 상태다.
 
전문가들은 최종 소비에 따라 요금을 나누는 것보다 사용전압별로 요금을 달리 책정하는 전압별 요금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압은 고압보다 수송단계가 많고 비용부담이 많아 고압보다 저압이 더 비싼 것으로 알려졌다.
 
대부분의 전압에 따른 원가차이는 전압별 요금체계로 사용시간대에 따른 원가차이는 계절별, 시간대별 요금제를 통해 반영할 수 있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공급전압을 기준으로 요금을 부과하는 전압별 요금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정 박사는 "최종소비처에 따라 원가를 달리 받아서는 안된다"면서 "어느 용도에서 쓰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어느 시간에 어느 전압을 쓰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예전보다는 원가회수율이 개선돼 전압별 요금제로 가기 위한 여건이 더 좋아진 상태"라며 "전압별 요금제가 된다면 용도간 교차보조 문제는 해소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산업용과 일반용 교육용은 통합하되, 나머지 농사용과 주택용의 경우 바꿀 부분이 있다.
 
일방적으로 사용을 억제하도록 설계된 주택용 누진 제도의 개선이 시급하다. 최근 TV와 냉장고, 컴퓨터 등이 급속히 대형화되면서 가구당 월평균 전기사용량이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누진적용구간은 1995년 이후 큰 변화가 없어 달라진 시대상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우리나라의 누진세율은 11.7로 다른국가들에 비해 월등히 높은 편이다. 누진구간을 전기사용량 기준으로 현행 6단계에서 3~4단계로 낮추는 등 구간을 재조정하고, 누진율을 선진국 수준인 3배 이내로 낮춰야한다고 전문가들은 주장한다.
 
이렇게 되면 원가회수율을 높이는 데 따라 전기료가 오르긴 하겠지만, 과도하게 누진요금을 적용받던 일반 가정에는 큰 도움이 돼 전체적으로 요금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현재 원가회수율에서 가장 낮은 수치를 보이는 농업용 역시 요금을 현실화하되, '요금제도'가 아닌 보다 직접적인 지원책을 통해 체계를 고쳐나가야한다는 의견이 많다.
 
대만은 지난 4월 전기료 인상을 발표했다. 그동안의 보조금 제도로 전력회사의 적자가 누적됐기 때문이다. 산업용 전기료는 평균 35%, 가정용 전기료는 10~25% 올리기로 했다.
 
우리나라도 대만과 비슷한 상황이다. 원가 수준으로 전기요금을 인상하는 데 대한 사회적 공감대는 어느 정도 형성된 상태다. 이제는 누구에게 어떤 근거로 얼마나 더 걷어야할지에 대한 합리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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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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