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 제19대 국회의 파행으로 대법관 임명절차에 차질이 예상되면서 대법원 운영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5일 국회에 고영한(57·사법연수원 11기, 법원행정처 차장), 김신(55·12기, 울산지법원장), 김창석(56·13기, 법원도서관장), 김병화(57·15기, 인천지검장)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임명 동의안을 제출했다.
대법원도 일정에 맞춰 신임 대법관 후보자들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국회 상황으로는 임명동의안 처리기한인 7월4일까지 인사청문회가 열릴지조차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인사청문회 열릴지 조차 불투명
이같은 상황은 임명되어야 할 대법관 수가 네명으로 적지 않다는 점에서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우선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정상적인 운영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로 꼽힌다.
법원조직법상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대법원장을 포함한 대법관 전원의 3분의 2 이상으로 합의체를 구성해야 한다.
대법관 4명이 결원되더라도 일단은 9명의 대법관이 전원합의체를 구성할 수는 있지만, 찬반이 첨예하게 대립되는 전원합의체 운영 특성상 대법관 4명의 공백은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결과 바뀔 수도
더구나 전원합의체는 우리나라 사법부의 최고 결정기구다. 종전 대법원에서 판시한 헌법·법률·명령 또는 규칙의 해석적용에 관한 의견을 변경할 필요가 있을 때에만 제한적으로 열린다. 그만큼 국민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절대적이다. 대법관 네명이라면 전원합의체의 결과도 어렵지 않게 바꿀 수 있는 인원이다.
대법원 소부의 파행적 운영 가능성도 문제다.
대법원의 대부분 사건은 대법관 4명으로 구성된 소부에서 처리되고 있으며, 대법원은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을 뺀 12명의 대법관이 총 3개 소부를 구성하고 있다.
신임 대법관 임명이 늦어질 경우 당장 오는 7월10일 대법원을 떠나는 김능환·안대희 대법관이 속한 1부의 재판기능은 마비된다. 법원조직법상 소부의 재판은 대법관 3명 이상으로 구성되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김 대법관 등과 같이 퇴임하는 전수안 대법관은 2부에, 박일환 대법관은 3부에 소속되어 있어 이들 대법관들이 후임을 맞지 못하고 대법원을 떠난다고 해도 일단 2부와 3부의 재판은 가능하다.
◇매일 33.6건씩 사건처리 지연
그러나 업무 처리면에서 남은 대법관들이 받을 하중은 더욱 늘어나게 된다.
대법원에 따르면, 지난해 6월1일부터 올 5월31일까지 대법원이 처리한 본안사건 건수는 3만6964건이다. 대법관 1인당 1일 처리건수가 8.4건 정도임을 감안할 때 대법관 4명이 없는 상태에서 매일 33.6건씩의 사건처리가 지연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여기에 김능환·안대희 대법관이 속한 1부의 경우 재판이 아예 불가능하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1일당 처리가 지연되는 사건 수는 50.4건, 한달이면 1512건에 달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같은 상황은 지난해 김용덕, 박보영 대법관의 인사청문회 지연으로 발생한 공백 상태에서도 이미 벌어졌다.
당시 정치권은 한미 FTA비준을 두고 대법관 임명동의안 처리를 미뤄 무려 42일 동안 대법관 공백사태를 빚었다.
이 기간 동안인 2011년 11~12월 대법원의 사건 처리율은 각각 84.6%, 85.9%에 그쳐 직전 9, 10월 처리율인 각각 109.0%, 106.1%에 크게 미달했다.
◇피해는 '국민 몫'
이렇게 사건처리가 지연되거나 사법부 공백사태가 지속되면 그 여파는 그대로 국민에게 미친다.
특히 구속된 형사피고인의 경우 구속기간 제한으로 6개월 이내에 재판을 마쳐야 하는데 사건 처리가 지연될 경우 피고인의 권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게 된다.
또 선거범의 경우 상고심 재판은 항소심 판결 선고일로부터 3개월 이내에 반드시 실시해야 하는데 이 또한 어렵게 된다.
대법원 관계자는 "공식적인 항의 방안은 검토하고 있지 않다"면서도 "인사청문회 등 국회 임명동의 절차가 지연돼, 대법관 4명의 공백이 생길 경우 사실상 대법원의 재판기능이 마비되는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게 된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