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순욱기자] 통합진보당의 이석기·김재연 의원에 대한 제명이 26일 김제남 의원의 사실상 반대표 행사(기권)로 인해 부결됐다.
제명 부결의 파장은 여러 곳에서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구 당권파, 원내 접수할 듯
이번 표결은 단순히 두 의원에 대한 제명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통합진보당 소속 의원들이 국회에서 의정활동을 하는 데 있어서 어느 쪽이 대표성을 갖느냐의 상징성도 갖고 있었다.
구 당권파에 의해 비례대표를 받은 김제남 의원이 줄곧 중립파로 분류되며 혁신파의 손을 들어주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나왔지만 '배신'은 없었다.
물론 무기명 투표이기 때문에 김 의원이 반란표를 던졌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다. 하지만 그동안 각 의원들의 입장표명을 볼 때 김 의원이 백지표를 던진 게 확실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김 의원을 비례대표로 밀어준 게 바로 구 당권파이기도 하고, 당초 23일 의총에서 제명 결정을 하려고 했지만 25일 중앙위원회 이후로 연기된 것도 김 의원의 주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김 의원이 구 당권파를 배신하지 않으면서 통진당 원내 분포는 구 당권파가 숫적으로 확실한 우세를 차지하는 것으로 마무리 됐다.
이 때문에 혁신파로 구성된 원내지도부도 일괄 사퇴했다.
박원석 원내대변인은 26일 의총 직후 국회 정론관에서 브리핑을 갖고 부결 소식을 전한 뒤, 당의 방침을 따르지 못한 책임을 지고 심상정 원내대표와 강동원 원내수석부대표, 자신이 원내지도부에서 사퇴키로 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통진당은 구 당권파(이석기·김재연·김미희·오병윤·이상규·김선동·김제남) 7명, 혁신파(심상정·노회찬·강동원·박원석·서기호) 5명으로 재편됐다. 구 당권파의 천거로 비례대표로 선출된 정진후 의원은 중립파로 분류된다. 하지만 구 당권파가 우위를 점한 상황에서 구 당권파와 협조적 관계로 갈 가능성이 크다.
결국 통진당 원내 구조는 구 당권파 8명, 혁신파 5명으로 정립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강기갑 체제, 구 당권파와 절충 불가피..혁신 '올스톱'
두 의원에 대한 제명 부결은 출범한지 불과 2주도 채 안된 강기갑 대표 체제에도 심각한 타격을 입혔다.
지난 15일 출범한 강기갑 대표 체제는 확고한 리더십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다. 5명의 최고위원 중에 혁신파는 천호선, 이정미 두 사람 뿐이다. 이혜선, 유선희 최고위원은 구 당권파고, 민병렬 위원은 중립파로 분류되지만 구 당권파에 가깝다.
결국 당 지도부 구성 자체도 3대 3 동일한 비율이라서 혁신파가 주도하기 힘든 여건이다.
여기에 최고 의결기구인 중앙위원회는 구 당권파가 우세하다. 지난 23일 열리기로 했던 의원총회가 25일에 개최되는 중앙위원회 이후로 연기된 것도 중앙위 의결을 통해 구 당권파가 뒤집기를 모색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실제로 25일 중앙위에서는 구 당권파의 필리버스터(의사진행지연)를 통해 단 한 건의 안건도 통과시키지 못한 채 막을 내렸다. 이어 26일 의총에서 제명안이 부결되었다.
강기갑 대표와 최고위원회가 지명할 수 있는 지명직 최고위원 2명과 10명 이내의 추천직 중앙위원 인준이 남아있기는 하다.
하지만 최고위원 비율이 동등한데다가 의총에서 제명안 부결된 상황에서 혁신파 성향의 중앙위원을 추천하기는 힘들다. 최소한 동등한 비율로 추천만해도 구 당권파는 과반수를 유지하게 된다.
이같은 일련의 흐름과 당 지도부와 중앙위원 구성 분포를 볼 때 향후 통진당은 구 당권파가 주도권을 잡고 갈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그렇게 되면 기반이 약한 강 대표로서도 일반 국민들이 바라는 방향보다는 구 당권파와 절충점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당을 이끌고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석기·김재연 복당 수순 밟을 듯
의총에서 두 사람에 대한 제명이 부결된 이상 다음 수순으로는 복당이 거론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구 당권파는 25일 열린 중앙위에서 안건으로 올린 바 있다. 제명안이 부결된 상황에서 두 의원의 자격을 어정쩡하게 놔두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현재 두 의원은 통합진보당 소속 의원이지만, 당내에서는 중앙당기위 결정에 의해 출당이 된 상태다. 즉 당권이 없는 상태다. 따라서 '당권이 없는 당 소속 의원'이라는 모순적인 상황을 어떻게든 해소할 필요성이 대두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제명안이 부결된 상황이기 때문에 당권을 회복시키는 방안만 남은 상태다. 따라서 향후 통합진보당은 두 의원의 복당을 놓고 또 다시 내홍을 치를 것으로 보인다.
◇야권연대, 통합진보당 배제 가능성 커지다
문제는 이같은 상황이 반복되면서 국민들의 피로감이 깊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야권연대의 중심인 민주통합당의 고민이기도 하다.
이미 우려스러운 반응이 나오고 있다.
민주통합당 김현 대변인은 27일 평화방송라디오 '열린세상 오늘'과의 인터뷰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이기 때문에 굉장히 놀랐고, 국민들이 바라던 정치의 상식에 비추어 봤을 때 유감스러운 결과"라고 평가했다.
박용진 대변인도 "공당이 국민에게 약속한 내용을 스스로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서 대단히 유감"이라며 "이런 결정을 국민들이 얼마나 납득하고 받아들일지도 의문"이라고 우려했다.
박 대변인은 "통합진보당의 이번 결정이 야권연대와 자격심사 등에 여러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본다"며 "오늘 당무조정회의가 있고, 확대간부회의와 최고위원회의가 있다. 이 자리에서 이번 문제와 관련해서 심도있고 신중한 판단을 해야 할 것 같다"고 전했다.
이미 야권을 지지하는 국민들로부터 야권연대에서 통합진보당을 배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하고 있다.
제명안 부결에 대해 네티즌을 비롯한 국민들은 비판 일색이다. 민주당으로서도 이같은 상황을 외면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특히 통진당도 자체적으로 대선 후보를 선출할 것으로 보이지만, 혁신이 중단된 현 상황에서 누가 후보가 되든 야권연대의 한 축으로서 의미있는 후보가 될 수 있을지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