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시대)공적연금시대 가고 IRP시대 열렸다

[기획특집]100세시대 우리는 준비됐나
근로자 90% "국민연금에 노후 의존 어렵다"..2053년 기금 고갈 전망도
정부, 근퇴법 개정..개인퇴직계좌 IRP로 일괄 변경
은행·증권사·생보·손보사 등 58개 사업자 시장선점 경쟁 '후끈'

입력 : 2012-08-16 오후 2:01:00
 
 
[뉴스토마토 차현정기자] 연금시장의 판도가 바뀌고 있다. 기존 공적연금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는 반면 개인형퇴직연금(IRP) 시장이 새롭게 막을 올리면서 금융권이 시장 선점에 '올인'하고 있다.
 
100세 시대 노후를 대비한 연금이 자식보다 낫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는 가운데 공적연금 재정 불안이 부각되면서 갈수록 개인연금이나 퇴직연금 등 사적연금 확대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달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근퇴법) 개정으로 본격적인 IRP 시대가 열리면서 퇴직연금시장은 가파른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업계는 판단하고 있다.
 
금융권에서 사활을 건 한바탕 대접전이 예고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공적연금 한계..사적연금으로 갈아타라
 
미래에셋퇴직연금연구소가 지난해 근로자 700명을 대상으로 ‘국민연금의 노후대비 충분성’을 조사한 결과 85.8%가 부족하다고 답했다. 12.3%는 그저 그렇다고 응답했고, 충분하다는 응답은 2.0%에 불과했다. 10명 중 9명이 국민연금에 노후를 의존하긴 어렵다는 평가를 내린 셈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국민연금 시장을 더욱 암울하게 만드는 분석결과도 나왔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최근 펴낸 ‘국민연금 장기 지속가능성 확보방안’에 따르면 현행 국민연금제도를 유지할 경우 2041년 재정수지 적자가 발생하고 2053년에 기금이 고갈된다.
 
인구 고령화 심화와 유럽의 재정위기에 따른 성장률 둔화가 장기화되면서 기금고갈시점이 정부가 발표했던 2060년에 비해 무려 7년이나 앞당겨진 것이다.
 
반면 금융업계와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2005년 163억원에 불과했던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는 2010년 29조원을 돌파한 데 이어 지난 2월 50조원을 넘어섰다. 2020년에는 192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이란 분석이다.
  
IRP 시장 선두권을 둘러싼 금융권의 마케팅 전(戰)은 이미 불이 붙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한 마디로 사적연금의 필요성이 급격하게 높아지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성이다.
 
지난 2011년 현재 177조원으로 추정되는 사적연금 적립액이 10년 후에는 500조원대로 확대될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하지만 주요 선진국과 비교하면 국내 사적연금 시장 규모는 아직은 걸음마 수준이다. 미국의 경우 은퇴 후 자금을 연금으로 지급받으면 퇴직 전 소득의 78%가 보전된다. 한국의 연금 소득대체율(국민·퇴직·개인연금을 합한 은퇴 후 월평균 연금소득을 은퇴 전 3년간의 월평균 소득으로 나눈 값)은 미국의 절반 수준인 40% 정도다.
 
미국은 공적연금에 의한 소득대체율은 38.7%로 한국과 큰 차이가 나지 않지만 국민들이 사적연금을 통해 40.1%의 소득을 추가함으로써 78.8%의 소득대체율을 기록한다. 영국의 경우도 마찬가지. 70.0%의 소득대체율 가운데 39.2%가 사적연금에 의해 충당된다.
 
이에 따라 최근 정부는 연금소득의 세제 매력 확대를 골자로 한 세법개정안을 발표했다.
 
노후를 대비해 연금소득의 세부담을 낮추고 퇴직소득은 올리는 쪽으로 세제의 초점을 둔 것으로 사적연금을 활성화하는 한편 퇴직금 일시 수령 관행을 장기연금 쪽으로 유도함으로써 ‘노년무전(老年無錢)’을 방지하자는 취지다.
 
개인연금(사적연금)의 인기도 매년 급증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11년 6월 현재 보험사의 연금저축보험, 은행의 연금신탁, 자산운용사의 연금저축펀드를 모두 합한 개인연금시장 규모는 64조원이다.
 
지난 2007년 42조원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3년 반 만에 약 22조원 가량 늘어난 것이다. 연성장률 또한 2008년 11%, 2009년 12%, 2010년 15%로 높아져 매년 성장속도가 가속화하고 있다.
 
 
자산운용사가 제공하는 연금저축펀드의 성장세 또한 주목된다. 연금저축펀드는 전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6% 정도로 크지 않지만 2010년 약 2조원이었던 설정액이 2011년 3조원으로 증가하는 급성장세를 보였다는 게 금융투자협회 측 설명이다.
 
◇IRP 시대 본격 개막.. 경쟁 심화로 들썩이는 금융권 
 
개인연금 시장 확대는 또 다른 노후 안전망인 개인형퇴직연금(IRP) 시장을 들썩이게 하는 배경이다.
 
지난달부터 시행된 근퇴법 개정안에 따라 개인퇴직계좌(IRA)는 IRP로 일괄 변경됐다. 이에 퇴직연금을 다루고 있는 은행·증권사·생보·손보사 등 58개 사업자들은 일찌감치 은퇴시장을 겨냥한 행보를 본격화했다.
  
기존 IRA를 확대한 IRP는 연간 1200만원까지 추가납입이 가능하고 이자(배당)소득세 과세이연과 추가납입액의 연 400만원 소득공제 등 세제혜택이 주어진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으로 꼽힌다.
 
다만 이직이나 은퇴로 받은 퇴직금을 자기 명의의 퇴직계좌에 적립해 연금 등 노후자금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한 IRP의 경우 본인이 직접 가입해 적립액 비중을 정하는 것인 만큼 사업자별로 내세우는 차별성을 따져봐야 한다.
 
리스크까지도 가입자 본인이 떠안는 구조다. 때문에 IRP 계좌 개설 시 주의사항은 꼼꼼히 살펴 볼 필요가 있다.
 
한정 삼성증권 은퇴설계연구소 선임 연구원은 “퇴직금 분배에 있어 예·적금 규모, 펀드 규모 등을 개인이 짜고 운용에 따른 손실도 본인이 책임져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예상되는 리스크를 충분히 이해하는 게 좋다”며 “각 은행, 보험사, 증권사에서 해주는 은퇴자산 설계 체험을 통해 본인에게 적합한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나만의 IRP 계좌..금융사별 장점 꼼꼼히 살펴야
 
은퇴시장 선점을 위한 각 금융사들의 상품과 전략도 다양하다.
 
은행은 기업경영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만큼 개인대출이나 송금서비스 등에 있어 자유롭다는 점을 장점으로 꼽히고 있다.
 
증권사는 자산운용·투자관리 측면에 있어 펀드나 상품을 통한 고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점을 전면에 내세웠다. IRP 도입이 장기적 자금 마련의 한 축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면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앞세우며 관련 상품 마련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보험사의 경우 은행·증권사에 비해 훨씬 앞서 은퇴 관련 사업을 영위해온 데 따른 노하우 축적을 바탕으로 한 장기자산운용 강점을 매력이라는 평가다.
 
손성동 미래에셋퇴직연금연구소 실장은 “기존에 퇴직연금을 유치하던 금융사의 경우 유치 고객이탈을 막기 위해, 또 퇴직연금 유치에 실패했던 금융사 입장에선 새 고객을 확보할 수 있는 고객확보 기회가 생긴 것이기 때문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만 퇴직연금 시장이 개막과 동시에 '레드오션화'됐듯이 IRP 시장 역시 변질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손 실장은 “아무리 좋은 제도나 상품이 있어도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서 이론적으로만 도움될 뿐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며 “인프라가 미비한 IRP 초기 시장인 만큼 다소간의 시행착오도 있겠지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선 앞으로 많은 제도개선 등이 뒤따라야 한다"고 조언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차현정 기자
차현정기자의 다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