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기철·김기성기자]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제일모직 소액주주들이 자신을 상대로 낸 수백억대 손해배상 소송의 항소심에서 패소했으나 상고를 포기해 판결이 확정됐다.
이에 따라 이 회장은 제일모직에 130억원을 지급하게 됐으며, 기업 지배권을 자녀들에게 이전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위법성을 스스로 인정한 것 아니냐는 논란을 피하지 못하게 됐다.
이 회장 측은 지난달 22일 선고된 제일모직 주주대표소송의 항소심에서 패소한 뒤 상고기간 마감일인 지난 12일까지 상고하지 않아 2심 판결이 최종 확정됐다. 이에 따라 지난 2006년부터 진행했던 제일모직 주주대표소송이 원고주주들의 최종 승소로 6년 만에 마무리됐다.
앞서 대구고법 민사3부(재판장 홍승면)는 지난달 22일 장하성 고려대 교수 등 제일모직 소액주주 3명이 "이 회장이 에버랜드 전환사채(CB) 인수를 포기하도록 해 제일모직에 손해를 입혔다"며 이 회장 등 15명을 상대로 낸 소송의 항소심에서 "이 회장은 130억원과 지연손해금을 제일모직에 지급하라"고 원고 일부승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에버랜드 전환사채는 발행과 동시에 주식으로 전환이 가능한 것이어서 실제로 유상증자와 비슷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며 "에버랜드 전환사채의 이자율이 낮아 사채로서 투자가치가 없고 배당한 예도 없어 경영판단상 인수를 포기했다는 이 회장측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고 판시했다.
또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 등 이 회장의 자녀들이 1054억원의 가치가 있는 에버랜드 주식을 97억원에 취득한 것만으로도 그 차액만큼 이 사장 등에게는 이익이 되지만 제일모직과 그 주주들에게는 손해가 발생했다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앞서 1심을 맡았던 대구지법 김천지원에서도 "이 회장이 조세를 회피하면서 그룹의 경영권을 이전하려는 목적으로 에버랜드 전환사채를 발행하고 제일모직에 전환사채 인수를 포기하게 한 것은 배임에 해당하는 만큼 이 회장이 130억원을 제일모직에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소액주주들을 모아 이번 소송을 진행한 경제개혁연대 관계자는 "이번 법원 판결은 이재용 사장으로의 지배권 승계 과정에서 이 회장과 삼성그룹 비서실이 주도적으로 개입한, 조직적인 배임행위에 의한 것임을 최종적으로 확인해준 것"이라며 "이 회장이 더 이상 상고하지 않은 것은 이같은 법원의 판단을 수긍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이에 대해 "회장에 대한 민사 소송이기 때문에 그룹 차원에서 따로 낼 입장은 없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달라. 법원 판단을 존중한다는 뜻"이라며 말을 아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