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진단)거리로 내몰리는 청년변호사..탈출구가 없다

여성변호사 "임신, 축복보다 두려움 앞서"..남성보다 취업 차별
과중한 업무 줘 못 보티면 '무급휴직'..임금 못 받고 취업도 못해

입력 : 2012-10-15 오후 4:50:07
[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 "휴직통보를 받은 뒤 급격히 건강이 나빠졌고 우울증 증세까지 겪었다. 숨을 쉴 수 없는데다 이유 없이 눈물을 쏟기도 한다. 당연히 잠도 못자고 있다."
 
임신을 했다는 이유로 부당하게 무급휴직 처리됐다며 소속 로펌인 법무법인 J의 대표 변호사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한 황모 변호사(31)는 소장에서 현재의 근황을 이렇게 전했다.
 
황 변호사는 무급휴직 처리된 뒤 화병증세에 수면장애까지 겹쳐 한방병원에서 진찰을 받은 결과 심화상염증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치료를 권유했지만 임신 초기로 조심스러워 제대로 된 치료조차 받지 못하고 있었다.
 
◇"임신, 기쁨보다 유산 안 할까 두려움 앞서"
 
그는 "임신했을 때 기쁨보다는 회사에서 업무량 늘리려고 하는 상황에서 유산하지 않고 무사히 출산까지 할 수 있을까하는 두려움이 앞섰다"며 "하지만 지금까지 겪은 일 보다 현재의 고통이 태아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알 수 없어 더 답답하다"고 말했다.
 
황 변호사의 소송사실이 알려지면서 청년변호사들의 근무에 대한 처우 문제가 다시금 법조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개업 5년차 이하 또는 40세 이하를 일컫는 청년변호사들의 처우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매일 야근에 주말까지 나와서 일하며, 일을 그만 둘 때에는 퇴직금 조차 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주당 근무시간이 평균 60~80시간이니 최소한 하루 13시간을 일하는 셈이다. 물론 주말 업무를 뺀 시간이다. 휴가는 2년차쯤 되어야 말을 꺼낼 정도라고 한다.
 
황 변호사도 "평균 퇴근 시간이 늘 새벽 1~2시였다. 주말에도 나가서 일했고. 밤 11시에 새 업무가 배당되면 처리하느라 1~2시간 밖에 못자고 다시 출근해서 일했다. 그래야만 주중에 끝낼 수 있었다. 운동부족에 수면부족을 건강에 이상이 생길 지경이었지만 이를 악물고 버텼다"고 말했다.
 
◇변호사 단체 선거때마다 공약..진척 없어
 
대한변협과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단 선거 때마다 청년변호사들 처우 문제는 새내기 변호사들의 취업문제와 함께 후보공약 0순위였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렇다 할 해결은 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당사자들인 청년변호사들은 꾹꾹 참았다. 그들은 도제식 교육 시스템이 고착된 변호사 업계에서 건의나 요구는 곧 반발로 낙인찍히기 때문이라고 했다.
 
38기의 한 변호사는 "법조계는 상명하복이라는 개념이 군대랑 비슷하다. 도제식 시스템으로 군대의 사수와 부사수의 관계와 마찬가지다. 반항 그런 것은 생각할 수 없다"고 말했다.
 
청년변호사들이 초인적 업무량에 허덕이면서 쉽게 자리를 박차고 나올 수 없는 데는 자신을 고용하고 있는 대표 변호사나 선배들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황 변호사도 "대표 변호사가 늙어서 노인이 되더라도 계속 일할 수 있도록 보장해주겠다고 약속했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청년변호사가 같은 고충을 겪고 있지만 그동안 당사자가 직접 공론화 시킨 적은 없었다. 황 변호사가 '사회적 이목의 집중'이라는 희생을 감수하며 수면 밑에 있던 법조계의 오랜 부조리를 밖으로 끌어올린 것이다. 여러 청년변호사들과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있는 중견 변호사들도 '용기 있는 결단'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0월에는 중견 법무법인 H에 다니던 35기 K변호사가 심장마비로 돌연사한 사건이 있었다. 갓 결혼한 30대 중반의 젊은 변호사였다. 군법무관 출신으로 지병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과도한 업무에 의뢰인 접대..청년변호사 과로사
 
K변호사의 지인인 한 변호사는 "과도한 업무에 회사에서 의뢰인 접대까지 시켰으니 그런 일이 벌어졌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K변호사는 주간에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다가 클라이언트 접대를 마친 뒤 다시 사무실로 돌아와 일을 했다. 이런 일이 몇 개월 반복되다 보니 결국 무리가 왔다"며 "당시 회사차원에서 유족들에게 재해보상금이나 위로금 등을 최대한 도와주기로 했지만 유야무야 넘어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여러 청년변호사들의 말에 따르면, 변호사 업계에서는, 물론 일부 로펌이나 법률사무소의 경우지만 청년변호사들을 반 강제로 퇴직시키는 전형적인 방법이 있다.
 
과중한 업무를 주고 버티지 못하거나 반발할 경우에는 무급휴직 처리하는 것이다. 무급휴직을 시키면 로펌 대표 등 고용변호사는 두 가지 이익이 있다. 해고와 동일하게 임금지급의무를 면하면서도 다른 로펌이나 법률사무소에 취업하지 못하게 할 수 있다.
 
청년변호사로서도 두 가지 고통이 다르게 된다. 임금을 받지 못해 생계에 중대한 위협을 받게 되지만 다른 곳으로 취업할 수 없게 된다. 끝내 자진 사퇴로 내몰리는 것이다.
 
이렇게 내몰린 경우도 재취업이 쉽지 않다. 나가는 마당이라고 그동안 부당했던 처우에 대해 속 시원히 들이대지도 못한다고 한다. 변호사 업계가 워낙 좁은 마당이라 알음알음 다 알기 때문에 소문이 나쁘게 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런 경우는 경력도 짧기 때문에 경력변호사로 취업할 수 없다는 하소연도 나온다. 결국 울며겨자 먹기로 무리를 해서 개업을 하거나 기업의 사내변호사로 들어가려 하지만 이마저 쉽지 않은 실정이다.
 
여성 변호사의 경우는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연수원을 수료하고 처음 변호사 개업을 하는 나이가 통상 30대 전후반이 많다. 결혼 적령기다. 여성 변호사들에 따르면 “언제 결혼하느냐” “아기는 언제쯤 가질 생각이냐”는 질문은 여성 변호사들이 면접장에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기도 하다.
 
◇여성변호사 87.7% 채용단계서 차별당해
 
대한변협 여성변호사특별위 집행위원인 고미진 변호사가 여성 변호사 360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답변자의 87.7%가 '취업'에 있어서 여성변호사가 남성변호사보다 불리하다고 응답해 여성변호사 대부분이 채용 단계의 차별을 가장 크게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출산 후 재취업은 더 어렵다고 많은 여성 변호사들은 말하고 있다.
 
사무실이나 로펌의 조직적인 차원에서 사생활 부분을 침해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결혼해 집을 새로 장만하는 변호사들에게는 되도록 사무실과 가까운 곳에 신접살림을 차리도록 무언의 강요를 넣는가 하면, 한 대형로펌의 경우 최근 의뢰인들에게 '프로패셔널'한 인상을 주기 위해 소속 여성 변호사들의 헤어스타일을 '단발'로 통일하자는 안이 강하게 추진되기도 했다.
 
전체적인 청년변호사 처우 문제에 대해서는 비관적인 시각이 많다. 피고용변호사로 있다가 최근 개업한 한 36기 변호사는 "변호사들이 많다 보니 저렴한 인건비로 청년변호사들을 고용하는 추세다. 결국 경제논리대로 가고 있는 것"이라며 "상황은 악화될 뿐 쉽게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급여사정도 좋지 않다. 초임 변호사의 경우 세후 400만원~450만원이 대체적인 수준이라고 한다. 그나마도 로스쿨출신 변호사들이 업계에 배치될 경우 급여수준은 더욱 내려갈 것이라고 업계는 보고 있다.
 
가장 많은 회원들이 소속된 서울지방변호사회측 관계자는 "청년변호사들 문제는 고용변호사와 피고용변호사의 문제에 국한시켜서는 안 되고 사회 전체적인 규모로 봐야한다"고 말했다.
 
◇변호사 공급 과잉시대의 과도기적 현상
 
그는 "이같은 상황은 변호사 공급 과잉시대의 과도기적 현상"이라며 "사회 전체적인 차원에서 변호사들이 일할 곳을 넓힌다면 변호사 업계에만 갇혀 갈등을 빚는 일은 줄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그는 "이 작업은 상당한 시간이 걸리므로 그 동안에 고용·피고용 변호사들이 마음을 터놓고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서울회 차원에서도 고용·피고용 변호사간 분쟁과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분쟁 중재시스템 마련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청년변호사들은 이와 다소 거리가 있는 해석을 내놨다.
 
최근 창설한 청년변호사협회 관계자는 "현재 변호사단체들은 모두 기득권층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문제의 심각성을 잘 모르고 있다"며 "우리는 사는 게 너무 힘들다. 생존의 문제"라고 말했다.
 
청년변협은 지난 11일 황 변호사에 대해 부당한 무급휴직 처리를 했다는 혐의(남녀고용평등법 위반)로 법무법인 J 대표 변호사를 서울중앙지검에 형사고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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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