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해 우리나라 경제는 대선이슈 등으로 대내외적으로 '눈치작전'이 치열하게 전개됐다. 시장 위축과 정책 실종이라는 평가는 어쩌면 당연했다.
우리나라 경제의 향후 5년 동안의 향방이 결정되는 대통령 선거가 예정돼 있어 정부 및 금융기관들도 바짝 웅크렸던 것도 한 몫했다.
때문인지 가계부채 1000조원, 불법사금융과의 전쟁, 카드 가맹점 수수료 체계개편, 금융시장 부실을 대변한 저축은행 구조조정 마무리 등 서민들과 연계된 현안들을 중심으로 적잖은 논란들도 일었다.
무상보육 정책은 재정난 심화로 정치권과 정부, 지방자치단체, 학부모간 갈등의 골을 깊게 만들었고, 비리사고로 얼룩진 원전사고는 최악의 전력난에 대한 우려를 키우고 있다.
반면, 국제기구인 녹색기후기금(GCF) 본부 한국 유치와, 우리나라의 신용등급 한단계 상향은 긍정적인 성과로 평가받고 있다.
◇금융권 화두는 서민금융..주요 정책 내놨지만 결과는 실망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가계부채는 올해 1000조원 시대를 맞게 됐다. 올해 금융권의 화두가 서민금융이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올해 신년사 등을 통해서 중소기업 금융지원 개선과 서민층의 금융애로 해소를 주요 정책방향으로 내세웠다.
중소기업이 전체 고용의 88%를 차지하고 있어 이들이 살아날 경우 효과적인 고용창출은 물론 서민금융지원에 따른 부실 위험 부담도 줄일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권혁세 금감원장도 대선을 코앞에 둔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서민금융 챙기기에 나서는 행보를 보였다.
권 원장은 은행권에 주택대출에 대한 프리워크 아웃 확대와 10%대 서민대출 출시를 권고했다.
하우스푸어 대책으로 은행권에 세일앤리스백(주택을 은행에 신탁 방식으로 맡긴 뒤 임대료를 내고 계속 거주하는 상품) 추진도 지시했다.
권 원장은 재래시장과 복지시설, 군장병 및 대학생들을 찾아다니며 현장에서 금융애로 사항도 들었다.
그러나 올 한해는 대책만 많이 내놨지 실질적으로 효과를 이룬 대책이 많지 않았다는 게 업계 안팎의 진단이다.
고용창출의 핵심인 중소기업에 대한 금융지원도 한계가 있어 크게 늘어나지 않았으며 은행권 10% 대출 및 세일앤리스백 등의 상품의 실적도 미미했다.
업계 한 전문가는 “금융기관들이 금융당국의 정책에 따라 서민금융 활성화 하는 데는 리스크 때문에 한계가 있다”며 “하지만 올해는 대선이라는 정치권 이슈가 있어 금융기관들도 눈치를 보며 어쩔 수 없이 서민금융 지원 및 사회공헌 등에 나선 것”이라고 소회했다.
◇정치권 일정으로 대형 M&A 무산..저축은행 구조조정은 일단락
금융당국의 서민경제 챙기기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불법 사채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대대적인 단속에도 나섰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물론 국무총리실, 법무부, 행정안정부, 금융위 등 9개 정부 부처 및 유관 기관이 공동으로 '불법 사금융 척결 방안'을 발표하고 피해 신고센터를 설치했다. 범정부 수준이었다.
이례적으로 이달까지 불법대부업자 1만702명을 검거하고 2866억원의 세금도 추징했다.
35년만에 200만 곳의 가맹점 수수료를 인하하면서 중소가맹점들의 환영을 받기도 했다. 대신 연매출 1000억원 이상 대형 가맹점은 수수료율이 높아지면서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은행고객들이 대출을 받을 때 기준이 되는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 담합 논란도 제기돼 대출금리 기준을 단기 코픽스(COPIX)로 변경했다. 이에 따라 대출금리가 일정부분 낮아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대선을 앞 둔 상황이어서 금융권의 대형 M&A 무산도 속출했다.
산업은행과 우리금융 인수 추진은 정치권의 반발로 무산된 후 인수자를 찾지 못해 결국 다음 정권으로 넘어가게 됐다. KB금융 또한 정치권 눈치를 본 사외이사들이 ING생명 인수 반대에 나서면서 M&A는 좌절됐다.
이밖에 지난해 16개 저축은행이 퇴출된 데 이어 올해도 솔로몬, 미래, 한국, 한주저축은행 4곳이 추가로 퇴출시켜 저축은행 구조조정은 일단락했다.
◇보육대란의 부메랑 '무상보육'
올해부터 0~2세 보육료지원이 전 계층으로 확대되면서 이른바 '무상보육' 정책을 둘러싼 정치권과 정부,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실수요자인 학부모간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다.
문제는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한 보육지원책에서 시작됐다. 보육과 양육의 차별화에 따라 보육시설을 이용할 때에만 정부 예산이 지원되면서 무리하게 아이를 보육시설에 보내는 등 보육시설 쏠림현상이 심화됐다.
이에 따라 보육비를 집행하는 지방자치단체의 예산난이 심각해졌고, 급기야 서울시 등 보육비부담이 급증한 지자체를 중심으로 하반기부터 무상보육을 중단한다는 엄포도 쏟아졌다.
이 과정에서 허약한 복지전달체계를 이용한 어린이집과 보육시설의 모럴헤저드는 하늘을 찔렀다. 돈은 뿌려졌지만 학부모들은 혜택을 받지 못하는 불합리함이 계속됐다.
올해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무리하게 국회를 통과시킨 보육정책이 학부모에게는 혼란으로, 지자체에는 재정난으로 돌아온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무상보육정책을 6개월만에 폐기하고, 0~2세 보육료 지원을 소득하위 70%에게만 집중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한편, 보육비 지원과 함께 양육비 지원을 차상위 계층에서 소득하위 70%로 늘리는 등의 대책으로 재정난 해결을 모색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연말 대선과정에서 다시 무상보육 확대정책은 복지의 전면에 나섰고, 박근혜 당선자의 공약대로 0~5세 전면무상교육을 이행하기 위한 보육갈등은 현재진행형으로 계속될 전망이다.
◇비리 속에서 터진 '원전사고' 그리고 '전력대란'
작년 가을 주무부처 장관까지 갈아치운 '블랙아웃'이라는 전력대란은 예고편에 불과했다. 올해 잇따른 원전사고와 비리, 그로 인한 전력난은 올 겨울뿐만 아니라 향후 몇년간 대한민국을 전력위기로 내몰지 알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30년 수명을 마쳤지만 정부가 2008년부터 가동을 연장한 고리 원전 1호기가 올해 2월에 갑자기 고장나 멈춰섰으며, 7월 31일 상업운전을 시작한 최신 원전 신월성 1호기는 가동 한달도 채 안된 8월 19일에 멈춰섰다.
잇따른 원전사고의 원흉은 내부비리에 있었다. 원전에 사용되는 부품들의 시험성적서가 대거 위조된 것이 발각되면서 원전부품을 둘러싼 내부 납품비리까지 밝혀졌다.
위조부품 교체를 위해 원전 2기가 추가로 가동중단됐고, 여기에 감사원 감사 결과 수입산 부품뿐만 아니라 국산부품도 가짜 공인기관의 시험성적서를 달고 원전에 납품된 것이 추가로 확인됐다.
비리와 사고가 잇따르면서 전력난은 극에 달하고 있다. 12월 초부터 시작된 한파로 전력예비율은 연일 관심경보와 주의경보를 울리고 있지만 주요 전력공급원인 원전의 비정상적인 가동으로 전력당국은 소비자들의 절전만 호소하고 있는 상황이다.
◇환경분야 월드뱅크 '녹색기후기금' 유치
올해는 개발도상국들의 기후변화 대응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될 예정인 녹색기후기금(GCF)의 본부를 한국에 유치하는데 성공하는 쾌거를 일궈내기도 했다.
당초 독일과 스위스 등 쟁쟁한 경쟁국들 때문에 유치 가능성은 희박해 보였지만, 10개월의 짧은 유치기간 동안 사무공간 무상임대 등 파격적인 지원을 앞세워 10월, 인천 송도 유치에 당당히 성공했다.
인류 공통과제인 기후변화 대응에 중추적인 역할을 할 기구를 국내에 유치했다는 사실만으로 국민적 자부심이 고취되고 있지만, 기금유치 방법과 송도의 정주여건 확보 등 현실적인 고민도 산적한 상황이다.
◇세계경제 위기 속 국가신용등급의 회복
미국발 금융위기와 유럽 재정위기를 잇따라 겪으면서 대외경제여건에 취약한 한국경제도 크게 흔들렸지만, 그 와중에도 국가재정건전성관리에는 높은 신뢰도를 얻었다.
올 8월과 9월 사이 무디스와 피치, 스탠다드앤푸어스(S&P) 등 3대 국제신용평가사들이 우리나라의 국가신용등급을 잇따라 한단계씩 상향조정했다. 1997년 IMF 이전의 신용등급으로 회복된 것을 넘어 일부 신평사는 역대 최고 등급으로 우리나라의 신용등급을 평가했다.
특히 글로벌 위기로 전세계적으로도 국가신용등급이 하향조정되는 추세 속에서 신용등급이 상햔됐다는 점에서 더 큰 의미가 부여되고 있다.
다만 최근 로켓발사 성공 등 북한리스크가 여전하고, 신용평가사들이 가장 위험하다고 지적한 공기업 부채 등은 향후에도 적극적으로 해결해야할 과제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