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자본시장 죽이는 정치인들

입력 : 2013-02-15 오전 10:00:00
한국 자본시장이 위기다. 그냥 말로만 위기가 아니라 진짜 심각하다.
 
일본의 아베 총리가 내세운 엔저 정책, 그리고 시장 예상치보다 낮게 나온 지난해 4분기 실적, 아직 확실하게 해결되지 않은 미국의 재정절벽, 여기에 미국과 유럽, 일본의 보이지 않는 환율전쟁과 담합.
 
위에 거론한 변수는 말 그대로 변수로 끝날 수도 있다.
 
실적 부진은 만회하면 해결될 것이고, 일본의 엔저정책은 거의 약발이 끝나가고 있다. 미국의 재정절벽 문제도 파국으로 가든, 타협점을 찾든 마무리는 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 3월 결산인 증권사들의 경우 적자가 수두룩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60개에 달하는 증권사들 수익을 다 합쳐도 고작 1조원 될까 말까 한다고 한다.
 
금융지주사 1개 회사의 영업이익이 1조5000억원에서 1조8000억원에 달하는 것과 비교하면 증권업이 얼마나 열악한지 알 수 있다.
 
주식거래 자체가 반토막났으니 거기서 나오는 수수료 수입이 반토막 났을테고, 증시에 돈이 안들어오니 굴릴 돈이 없을테고. 돈을 못굴리니 수익이 날리 없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 내부에 있다.
 
우선 가계부채 문제다. 주식시장의 주력부대였던 40~50대는 하우스푸어와 에듀푸어로 전락했다. 20~30대는 실업자 신세이거나 저임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신세다. 돈 많은 자산가들은 이미 다양한 형태로 투자를 하고 있다.
 
결국 한국 자본시장은 지금 투자할 주제도, 돈도 없다는 이야기다. 어차피 이 문제는 한국 경제 전체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자본시장 스스로 어찌 할 수 없으니 그냥 넘어가자.
 
또 다른 문제는 자본시장에 대한 무지 혹은 적대적인 분위기다.
 
2008년 발발한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리먼 브러더스니 메릴린치니 하는 대형 투자회사들의 투기적 행태와 파탄은 충분히 그런 분위기 조성에 일조했다.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한다.
 
그 여파로 국내에서도 자본시장에 대한 적대감이 커졌다. 그리고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줄여서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천덕꾸러기 신세에 처했다.
 
더구나 이 법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종합금융투자사업자(IB) 설립 허용과 다자간매매체결회사(ATS) 도입 등 한국형 IB와 헤지펀드 육성을 위한 정책은 쏙 빠져있다.
 
자본시장법을 개정하겠다는 정부와 금융당국만 믿고 증자를 했던 증권사들만 낙동강 오리알 신세다. 지난 2011년 현대증권, 대우증권, 삼성증권, 우리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등 5개사는 자본금 3조원을 맞추기 위해 증자를 했지만 자본시장법 개정은 요원하고, IB로서의 도약은 언감생심이다.
 
자본시장을 바라보는 적대적 인식은 민병두 의원이 내놓은 자료와 발언에서 엿볼 수 있다.
 
14일 민병두 민주통합당 의원은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근거로 삼성증권을 비판했다.
 
이 자료에 의하면 최근 3년간 국내 증권회사의 해외투자 손실액은 1억5080만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약 1637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이 가운데 삼성증권이 전체 손실액의 70.2%인 1억590만달러(한화 1150억원) 손실을 입었다고 한다.
 
이를 근거로 대형 IB 진입조건인 자기자본금 3조원이 합당한 것인지, 그리고 헤지펀드 등 활동영역을 넓혀주는 것이 문제가 없는 것인지 의문을 제기했다. 특히 삼성증권의 손실을 문제 삼았다.
 
문제제기는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래야 한다. 실패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서 이견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삼성증권이 손실을 입은 것은 학습비용으로 볼 수도 있다. 더구나 국내 시장은 이미 포화상태다. 그리고 앞서 언급했듯이 가계부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근본적으로 국내 자본시장은 앞날이 불투명하다.
 
따라서 대형 증권사들은 좀더 운신의 폭을 넓혀줘서 전 세계를 무대로 뛸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좁아터진 국내시장에서 벗어나기 위한 그들의 노력에 오히려 용기를 북돋아야 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나머지 증권사들도 활동공간이 생기고 공존할 수 있게 된다.
 
삼성증권 뿐만 아니라 국내 여러 증권사들이 해외에서 먹고 살 수 있는 길을 찾고 있다. 미래에셋증권의 경우 삼성증권보다 먼저 해외 개척에 진력을 다한 사례다. 비록 초창기에 수익을 내지 못했지만 역경의 세월을 견뎌내고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 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손실이 발생했다고 문제삼는다면 누구도 도전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의 삶도 그렇지 않은가?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도전과 꿈을, 단지 실패했다는 결과만 놓고 포기하게 만든다면 대체 꿈과 희망은 왜 필요한가?
 
이렇게 말하면 국내 증권사가 너무 많은게 문제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증권업계 구조조정만 하면 대형 IB니 이런거 안해도 된다는 논리도 보인다.
 
이런 논리의 바탕에는 극단적인 시장논리가 있다. 돈 못버는 증권사들 문 닫으면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 숫자 줄여버리면 된다. 그럼 먹고 살만해질 것이다. 실제로 이런 해법이 거의 10년 이상 회자됐다. 금융당국이나 각종 연구소들도 줄곧 자본시장의 구조조정을 해법으로 들먹인다.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는 해법이다. 얼마나 간단한가? 이런 해법은 비단 증권업에 국한되지 않는다. 모든 산업분야도 마찬가지 아닌가? 돈 안되면 문 닫아버리는 것, 참 간편하고 쉽다. 변호사가 너무 많으니 변호사 숫자 줄여버리고, 의사도 너무 많아서 먹고 살기 힘드니 줄여버리고, 제약업체도 너무 많다. 철강회사는 어떻고 건설사는 또 어떤가?
 
어느 누군가가 실업자가 되든 말든 돈 못 벌면 다 문닫으라는 게 구조조정론자들의 해법이다. 90년대 이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는 논리로 통용된 구조조정론이다.
 
그렇다면 대체 누가 나서서 자기 회사 문을 닫겠는가? 누가 스스로 자진해서 실업자의 길을 걷겠는가? 당신이 먼저 실업자가 될 용의가 있는가? 버틸때까지는 버티는게 인지상정 아닐까?
 
자본시장에 대한 적대감을 걷어내고 인간의 삶으로 한번 바라보자. 자본시장도 엄연히 한국 사람들이 먹고 사는 하나의 산업이다. 그러면 어떻게든 그들이 살 수 있는 길을 찾고, 그 해법을 모색하고 제시하는 게 옳다.
 
최고의 복지는 일자리다. 누구나 일할 수 있는 나라가 좋은 나라다. 없는 일자리도 만들어야 할 판에, 있는 일자리 없애자는 논리는 수긍할 수 없다.
 
국회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의 핵심 내용을 다시 검토하기 바란다. 국내 증권사들이 대형 IB의 길을 걸을 수 있는 원년을 만들기를 바란다. 정치권이 적대시하지 않아도 이미 자본시장에는 잔인한 봄이 기다리고 있다.
 
권순욱 증권부장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권순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