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송두환 헌법재판관 퇴임사

입력 : 2013-03-22 오전 11:01:50
◇송두환 재판관
존경하는 헌법재판소 가족 여러분,
 
제가 6년 전 오늘 이 자리에서 헌법재판소 재판관으로서의 취임인사를 드린 것이 마치 엊그제의 일처럼 느껴집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세월이 문자 그대로 쏜살같이 흘러 이제 이 자리에서 퇴임인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곳에서 재판관으로서 일하는 동안 업무의 내외를 불문하고 저에게 따뜻한 조언과 지도, 성원을 해 주신 동료 재판관님들, 연구부 및 사무처의 여러 분들, 평소 애정 어린 관심으로 지켜보아 주시고 이 자리에 나와 주신 선배님과 동료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 자리에 서고자 하니, 제가 재판관으로 취임하면서 다짐했던 바들을 그 동안 어느 정도 실천할 수 있었는지, 그러기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다하였는지, 그리하여 과연 얼마만큼의 성과를 거두었다고 말할 수 있겠는지 자문하게 되었습니다만, 스스로 두려운 마음이 앞서서 길게 생각하기 어려웠음을 고백합니다.
 
다만, 사무처에서 정리하여 준 저의 재임중 사건처리 현황 자료를 받아보니, 제가 6년간 재직하는 동안 처리한 전원재판부 사건만 3,142건(3. 21. 선고분을 합하면 3,169건), 제가 주심으로서 담당 처리한 사건이 지정부 처리 사건, 전원재판부 처리 사건을 합하여 1,188건(1,189건)이라는 것이어서, 적어도 쉬지 않고 달려왔다는 것만은 말씀드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편, 제가 관여하여 처리한 개별사건들의 목록과 결정요지를 일별하며 돌아보니, 각개의 사건에서 다른 재판관님들과 함께 진지하게 토론하고 그리하여 얻어진 결론으로 헌법질서를 적정한 모습으로 그려낼 수 있었다고 자평하며 보람을 느끼게 되는 장면도 여럿 있었으나, 다른 한편, 제가 좀더 충분한 준비를 하여 좀더 치열한 설득의 노력을 하였더라면 다른 결론을 도출할 수도 있지 않았겠는가 생각되어 진한 아쉬움이 남는 장면도 여럿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러하기 때문에, 우리 사회의 모든 부면을 헌법 정신과 가치에 맞는 방향으로 다듬어 나가야 할 헌법재판소의 과업이 계속 요구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헌법재판소는 이른바 87년 헌법에 의하여 창설된 지 25주년을 앞두고 있고, 그 사이에 헌법질서를 수호하고 헌법적 가치를 실현하는 본래의 기능과 임무를 수행하면서 꾸준히 성장 발전하여 왔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저는 헌법재판소에 관한 최근의 우려스러운 상황에 대하여 잠시 언급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널리 아시다시피, 우리 헌법 및 관련 법률에 의하면, 헌법재판소는 9인의 재판관으로 구성하고, 모든 재판관은 대통령이 임명하되, 특히 헌법재판소장을 포함한 3인의 재판관은 대통령이 그 후보자를 지명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 1. 21. 전임 헌법재판소장이 퇴임함으로써 궐위상태가 발생한 이래, 지난 2. 25. 제18대 대통령 취임 후 현재까지도 헌법재판소장의 직위가 60일 이상 궐위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한편, 헌법재판소법 제6조 제3항은 재판관의 임기가 만료되는 경우 임기만료일까지 후임자를 임명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어제서야 후임 재판관 후보자의 지명이 이루어져서, 국회의 인사청문절차까지 예상하여 볼 때 상당 기간의 공백상태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이는 상황입니다.
 
어제 뒤늦게나마 헌법재판소장 및 재판관 후보자의 지명이 이루어져 조만간 궐위상태가 해소되리라고 기대합니다만, 지금까지의 상황만으로도 매우 심각한 위헌적 상태라는 점을 지적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더욱이 염려스러운 것은, 근래 이러한 헌법재판관 직의 공석 사태가 몇 차례 반복되는 것을 통하여 "더러 있을 수도 있는" 또는 "크게 문제될 것은 없을" 일이라는 잘못된 인식이 혹여 생겨나지 않을까 하는 점입니다.
 
헌법질서를 수호하고 헌법정신과 가치를 실현하여야 할 중핵적 헌법기관인 헌법재판소의 구성과 운영에 단 하루라도 공백이나 차질이 생겨서는 아니되며, 헌법재판소 구성을 위한 재판관 후보자의 지명에 관한 헌법적 권한은 단지 권한인 것을 넘어서 동시에 헌법상 의무이기도 하다는 것을 심각하게 인식하여야 할 것입니다.
 
나아가, 이러한 헌법재판소 구성의 공백이 다시는 생기지 아니하도록 담보할 수 있는 제도적 개선책을 강구하여, 그 구체적 방안을 서둘러 마련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일련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저는 헌법재판소가 이러저러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종내에는 헌법질서를 수호하고 헌법적 가치를 실현하는 본래의 기능과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여 꾸준히 성장 발전할 것으로 기대하고 또 확신합니다.
 
이제 제가 퇴임하고 새로운 재판관들이 취임하게 되면 이른바 제5기 재판부의 구성이 완료될 것으로 보이는바, 선배 재판관들께서 일구어내신 기초를 더욱 탄탄히 다지고 더욱 발전시켜서, 헌법정신과 가치가 우리 사회 모든 부면의 구석구석까지 밝게 비추이도록 만드는 역할과 기능을 다할 것을 기원합니다.
 
이제 아쉬운 마음과 홀가분한 마음이 뒤섞인 심정으로 그동안 정들었던 이곳을 떠나고자 합니다.
 
제가 헌법재판소에서 지난 6년간 근무할 수 있었던 것은 저에게 너무나 큰 영광이었고 동시에 큰 행복이었습니다. 이곳에서 근무했던 기간 헌법재판소 가족 여러분께서 보내주신 따뜻한 관심과 애정을 저는 오래오래 기억하고 감사한 마음을 간직할 것입니다.
 
헌법재판소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고, 이 자리에 계신 헌법재판소 가족 여러분과 각 가정에 건강과 행복이 항상 깃들기를 빌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감사합니다.
 
2013. 3.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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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