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수현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박 대통령은 13일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 성추문과 관련해 "이번 방미 일정 말미에 공직자로서 있어서는 안 되는 불미스런 일이 발생해서 국민 여러분께 큰 실망을 끼쳐 드린데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박 대통령이 "이번 일로 동포 여학생과 부모님이 받았을 충격과, 동포 여러분의 마음에 큰 상처가 된 것을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한 것도 눈에 띈다. 이남기 청와대 홍보수석의 사과문에는 없었던 피해 여성에 대한 사과가 포함됐기 때문.
또한 박 대통령은 ▲사실관계 규명 ▲미국 측 수사에 적극 협조 ▲관련자들의 응당한 책임 ▲청와대 공직기강 확립 등을 언급하며 정가의 태풍이 된 '윤창중 스캔들'을 진화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여성 대통령의 첫 해외순방 도중에 불거진 사상 초유의 낯뜨거운 성추행 파문으로 국내에서는 국민적 충격과 후폭풍을, 국제적으로는 망신살을 뻗쳤기 때문에 박 대통령이 이날 어떤 형태로든 유감의 뜻을 표명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결국 박 대통령은 사의를 표명한 이남기 수석과 허태열 청와대 비서실장의 사과문에 이어 사과의 뜻을 전했다. 12명이 낙마한 '인사 참사' 당시 허 비서실장 명의의 성명을 김행 대변인이 '17초 대독'한 것과 비교하면 한층 사과의 수위가 높아진 셈이다.
정부조직개편안 처리 지연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문'이 아닌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했을 정도로 용서를 구하는 일에 인색했던 박 대통령이었음을 감안하면 놀라운 변화이기도 하다.
더욱이 윤 전 대변인의 파렴치한 행동 정황이 속속들이 드러나고 있는 상황이기에 '대통령의 입'으로 인해 방미 성과까지 묻히게 된 박 대통령은 억울한 심경도 들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은 이번 사건의 피해자처럼 행동해서는 안된다. 단순히 윤 전 대변인이 저지른 행동에 대한 사과를 넘어, 국가 최고지도자로서 이번 사태가 왜 벌어졌는지에 대한 반성과 성찰 및 진실게임처럼 전개된 중도 귀국 논란에 대해서도 해명해야 한다.
우선 박 대통령은 상징성을 갖는 '1호 인사'로 윤 전 대변인을 임명한 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윤 전 대변인은 극우적인 시각이 담긴 언행이 부각돼 야권의 반대는 물론 여당 내에서도 인선 배경에 관한 무성한 추측을 낳은 인물로, '밀봉·불통' 인사 논란을 외면한 채 임명을 강행한 장본인은 박 대통령 자신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이에 대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또 박 대통령이 청와대 참모들이 배석한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사과한다"고 말한 것도 정정당당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간의 관심이 박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 여부에 모아진 이유는 국가의 최고 지도자인 박 대통령이 엄중한 사안 만큼이나 격식에 맞는 모습을 보여주길 원했기 때문일 것이다.
국민은 박 대통령이 "미안하다"고 했다더라는 언론의 보도를 보는 것보다 "미안하다"며 고개를 숙이는 박 대통령의 모습을 직접 보길 원하진 않았을까.
첫 여성 대통령인 박 대통령이 자신이 임명한 남성 대변인의 성추행 사건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면 모르되, '대국민 사과문' 형태의 발표가 이뤄지지 않은 대목은 아쉬움이 남는다.
끝으로 박 대통령이 청와대 직원들의 공직기강 확립을 약속하면서도 '갑(甲)질의 끝판왕'격인 이번 성추문과 같은 사태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언급이 없는 것도 지적할 수 있다.
박 대통령이 인수위 시절부터 '밀봉·불통' 인사가 문제된 것은 '코드 인사'를 단행해서가 아니라, 투명한 인사시스템의 확립 없이 '수첩'에 있는 인재풀만 가용한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박 대통령이 사과하는 일에 익숙치 않아 '대국민 사과'를 절대로 못하겠다면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의 마련은 필수적이라 하겠다. 박 대통령의 임기는 아직 4년 넘게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