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한국거래소)
[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 "요즘은 주가조작 사례가 별로 감지되지 않는다. 잠잠하다"
우리 주식 시장을 상시 들여다보고 있는 한국증권거래소 시장감시위원회 심리부 관계자의 말이다. 그는 지난해 정치 테마주가 기승을 부리며 정점을 찍은 뒤 이렇다 할 주가조작 사례가 발견되지 않고 있다고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직후 주가조작 사범들을 엄단할 것을 지시하면서 최근 검찰과 금융당국이 증권범죄 합동수사단을 꾸려 칼을 빼들었다. 사회적인 관심도 주가조작 사례와 작전세력들에게 집중되고 있다.
그러나 증권거래소나 금융감독원 관계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이 같은 상황이 직접적으로 주가조작의 움직임을 억누르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주가를 조작해도 모여들 투자자들이 없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증권거래소의 또 다른 관계자도 "지난해 대선 테마주로 개인투자자들의 출혈이 너무 컸다. 그 여파로 거래량이 많이 줄었고 시장이 전반적으로 침체에 빠졌다"고 설명했다.
그의 말대로 지난해를 정점으로 활활 타올랐던 정치테마주와 대선테마주의 피해는 우리 주식시장을 그야말로 초토화시켰다.
◇지난해 정치테마주 피해액 1조5천억
지난해를 기준으로 금융당국에 의해 확인된 정치테마주 피해자는 200만명, 피해액은 1조5000억원에 달한다. 개인 투자자들 중에는 최고 26억원을 손해 본 사람도 있다.
당시 대주주들이 이른바 '대박'을 터뜨리며 시장을 떠난 뒤 그 후폭풍을 개인투자자들이 그대로 떠안은 것이다. 증권가의 또 다른 관계자는 "주가조작을 하려고 해도 희생양 이 없다. 시장이 죽었으니 주가조작이고 뭐고 통하지를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치테마주가 본격적으로 시장을 교란시키기 시작한 때는 2000년 초반으로 알려져 있다. 인터넷이 상당한 수준으로 발달하고 대중들이 정치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면서 정치인들이 연예인 못지않게 주목 받기 시작한 때다.
이때 일부 기업대표들이 특정 정치인을 공개지지하거나 친분을 과시함으로써 그의 인기에 편승하는 일이 자주 벌어졌다. 자연스레 그 기업의 주가는 친분이 있는 정치인의 지지율이 오를 때마다 상한가를 쳤다.
이것을 지켜보던 주가조작세력이 본격적으로 정치테마주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증권거래소와 금융당국, 검찰 관계자들은 정치테마주를 최근 진화한 가장 대표적인 주가조작 사례로 꼽는다. 게다가 인터넷과 모바일 등의 발전으로 그 파괴력과 규모가 몇 배나 늘었다.
지난해 6월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는 정치테마주 조작으로 386억원의 부당이득을 얻은 주가조작꾼 4명을 기소했다. 이 사건 주범은 K증권사에서 개최한 실전투자 대회에서 1위를 한 편모씨였다.
◇증권사 실전투자대회 우승자가 주가조작
편씨 등은 장 종료 1시간 전 정치테마주로 분류된 52개주를 대량으로 매수해 상한가로 만든 다음 장 종료 후에도 대량의 허위 매수주문을 내 일반 투자자를 유인하며 상한가를 유지시켰다.
이들은 다음날 개장 직전 전일 종가보다 높은 가격으로 대량의 허위 매수주문을 내 주가 상승을 유도한 뒤 개장 직후 주식 전량을 소량으로 쪼개 팔아치워 막대한 차익을 챙겼다.
이같은 범행은 사용된 정치테마주들이 실적 등과는 관계 없이 풍문에 따라 주가가 등락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금융감독원 자본시장조사팀 관계자는 "최근 정치테마주로 인한 피해가 커서 그렇지 테마주는 소위 작전세력들의, 말 그대로 고정적인 '테마'"라고 말했다.
그는 "몇 년 주기로 보면 자원개발이나 바이오 등 이슈테마주를 계속 만들어 주가조작을 하다가 대선 등 소위 '대목'이 오면 정치테마주로 집중해 한 몫 챙기는 게 최근 주가조작꾼들의 전형적인 생리"라고 설명했다.
(사진=뉴스토마토DB)
하나의 종목을 가지고 오랫동안 주가를 조작하는 방법에서 한꺼번에 여러 종목의 시세를 조종한 뒤 빨리 빠지는 수법도 최근 발견되고 있는 주가조작 방법이다. '60분 작전'이라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수십분 동안 매수·매도주문..사람 모이면 팔아치워
'60분 작전'은 장중 60분 이내의 짧은 시간 동안 집중적으로 소량의 시장가 매수·매도주문을 반복제출함으로써 주가를 조작하는 수법이다. 이렇게 되면 거래가 활발한 것 처럼 보여 투자자가 모여들고 이어 주가가 상승하면 그때 주식을 팔아 차익을 챙긴다.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자주 발견되는 주가조작 수법이다.
'2일 작전'이라는 상한가 굳히기 수법도 최근 자주 발견되고 있다. 주로 테마주들을 대상으로 하는데, 테마주 등 주가가 오르고 있는 종목들을 대상으로 거액의 자금을 동원해 종가를 상한가로 유지시켜 주가상승 기대감을 높인 다음 그 다음날 일반 투자자가 모여들면 팔아치우는 수법이다. 앞의 사례에서 편씨가 이 수법을 썼다. 거액의 자금이 필요하다는 특징 때문에 사채업자나 폭력조직을 끼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금융당국이나 검찰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주가조작은 방법적인 면에서도 진화했다. 인터넷 블로그와 스마트폰, SNS 등을 동원한 주가조작 최근 진화한 대표적인 주가조작 범죄수법이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는 지난 4월 중학교 교사와 간호사, 전문조작꾼으로 이뤄진 작전세력 24명을 적발해 기소했다.
주범인 김씨 등은 지난해 8~10월 37개 증권계좌를 이용해 총 2046회의 시세조종 행위를 벌임으로써 6만5000원 하던 특정 종목을 21만원까지 끌어올려 1억8000만원의 부당이득을 얻었다.
◇스마트폰 메신저 대화방에서 실시간 작전
이들은 인터넷 카페를 베이스캠프로, 카카오톡, 마이피플 등 스마트폰 메신저로 대화방을 만들어 실시간으로 작전 대상 종목 선정과 매매 수량, 매매 타이밍 등을 연락했다.
검찰 관계자는 "카페 내에서 작전에 참여하는 사람들만 채팅에 참여할 수 있고, 채팅 내용을 게시하고 삭제하는 것이 쉽기 때문에 스마트폰 메신저가 주가조작에 방법으로 적극 활용되고 있다" 말했다.
또 "인터넷 카페는 추적이 비교적 쉬운 반면, 스마트폰 메신저 방은 적발 위험이 있을 경우 바로 폐쇄하고 잠적할 수 있기 때문에 적발이 쉽지 않다" 설명했다.
작전세력 구성원도 조직화·전문화 됐다. 기업임원이나 증권사 관계자가 합세한 것은 벌써 오래 전 일이다. 최근에는 전문 주가조작꾼은 물론 변호사나 회계사 등 전문직 종사자들도 주가조작에 뛰어들고 있다.
(사진=최기철기자)
최근에는 인터넷증권방송 등을 통해 얼굴을 알린 소위 '주식전문가'들과 방송사 PD 등이 합세한 주가조작 세력들이 검찰에 적발돼 기소됐다. 또 국내 대형로펌 대표 변호사가 주가조작에 연루돼 현재 검찰 조사가 진행 중이다.
◇주가조작세력 조직화·기업화 추세
주가조작세력들의 조직화·기업화 추세도 최근 증권범죄 중 두드러지는 특성이다.
검찰 관계자는 "과거에는 단독범이나 3~4명으로 이뤄졌던 주가조작범들이 최근에는 조직화·기업화되고 있다"며 "그런만큼 주가조작으로 피해를 보는 일반투자자들이 늘고 피해액도 상당히 증가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또 "작전 중심세력은 소규모라고 하더라도 수십명의 아르바이트생들을 동원해 시세를 조종하고 있는 사례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상당히 오랜 동안 주가조작 수법으로 이용되고 있는 것이 '검은머리 외국인' 수법이다.
작전세력이 국내 특정 종목을 외국계 증권사를 통해 매수함으로써 마치 외국계자금이 유입된 것처럼 조작해 차익을 낸다. 표면상으로는 외국계 자금이지만 실상은 우리나라 국적의 작전세력이라는 점에서 '검은머리 외국인'이라고 부르고 있다. 적발이 가장 쉽지 않은 범죄수법이기도 하다.
증권거래소 관계자는 "가장 흔하지만 실체를 파악하기 가장 어려운 수법이 바로 '검은머리 외국인'세력"이라고 말했다. 외국인의 이름으로, 외국계 펀드형태로 들어오기 때문이다.
◇우리증시 1천조 중 3백조가 외국계 자금
그는 "우리나라 증권시장 규모가 약 1000조인데 이 중 300조가 외국계자금"이라며 "특히 대기업이나 우량기업으로 흘러들어올 경우엔 실체를 전혀 파악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특별한 우량주도 아닌데 외국인 매수세가 몰리면 작전세력이 들어왔다고 일단은 의심하고 피해야 하는 게 '검은머리 외국인'들의 희생양이 되지 않는 방법"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