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장관은 모르는 검찰의 고민

'국정원 수사' 검찰 첫 시험대 '장관·청와대' 눈치 볼 겨를 없어
장관 '구속수사·선거법 적용 불가' 의견이 검찰 의지 굳힌 셈

입력 : 2013-06-07 오전 7:11:26
[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사법처리 수위를 두고 막판까지 깊은 고민에 빠져있다.
 
검찰은 지난 4월18일 대선 후보들에 대해 '찬반 댓글' 등을 달아 정치에 개입한 혐의(국정원법 위반) 등으로 국가정보원 직원 2명과 이들과 공모한 일반인 1명 등 총 3명에 대한 수사를 경찰로부터 이첩받았다.
 
이후 4월말부터 5월까지 한달여 기간 동안 국정원, 서울경찰청 등을 전격 압수수색하고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을 각각 두 번씩 소환조사하는 등 속도감 있게 수사를 전개했다.
 
검찰은 또 수사선상에 오른 15개 인터넷 사이트 등에서 국내정치 개입목적으로 국정원 직원들이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댓글과 게시물들을 다수 확보했다.
 
이 과정에서 검찰은 이미 수사대상에 오른 인물들 외에 다른 국정원 직원들의 활동 상황을 추가로 발견했다.
 
수사가 진척될수록 혐의가 짙어지자 국민적 관심은 '1차적 배후'인 원 전 원장에 대한 사법처리 여부로 쏠렸다.
 
검찰은 원 전 원장이 '댓글 작업' 등 국정원 직원들의 정치개입 및 대선관련 활동을 암묵적으로 지시 또는 묵인하는 방법으로 깊게 개입한 것으로 잠정 결론을 내린 상태다.
 
선거법 위반의 혐의를 적용할 경우 오는 19일 시효가 만료된다. 수사가 상당히 진척됐지만 구체적인 혐의 확정과 기소를 위해선 하루하루가 촉박한 상황이다.
 
수사팀 내부에서 원 전 원장 등에게 선거법 위반혐의를 적용하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지면서 검찰 입장도 사법처리 수위는 구속, 혐의는 국정원법 위반과 선거법위반으로 결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팀 내부는 물론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중앙지검과 대검찰청간 격론을 통해 내려진 결정이다.
 
그러나 돌연 황교안 법무부장관이 지난 3일 원 전 국정원장에 대한 선거법 위반혐의 적용과 구속수사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상당한 파장이 일었다. 일각에서는 선거법 적용과 원 전 원장의 구속여부를 두고 법무부와 검찰이 대치 중이라는 소문도 돌았다.
 
정계는 물론, 법조계에서도 황 장관의 의견개진은 '사실상의 수사지휘권 발동'이라며 강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자 법무부와 검찰은 "수사상 결론이 난 것은 없으며, 단순한 의견소통의 단계"라며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아울러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수사하고 있다"는 고정적인 입장도 재차 확인했다.
 
수사팀은 매우 당혹스러워 하면서도 불쾌하다는 분위기인 것으로 알려졌다. 원 전 원장에 대한 사법처리가 늦어지면서 검찰이 황 장관이나 청와대의 눈치를 보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다시 불거졌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채동욱 검찰총장이 수사팀을 따로 불러 격려했다는 말도 나왔다.
 
그러나 검찰은 지금 황 장관이나 청와대를 의식할만한 상황이 아니다. 원 전 원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더 나아가서는 선거법 위반혐의로 기소했을 경우 법원의 판단이 당장 발에 떨어진 불이다.
 
이번 사건은 후배검사들에 의해 검찰총장이 물러난 사상초유의 검란을 겪은 검찰이 새 정부, 새 총장 체제에서 맡은 첫 대형 사건이다. 검찰은 지금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여론이 비등한 상황에서 원 전 원장에게 선거법 위반혐의를 적용하지 않을 경우 검찰은 야권은 물론 국민적인 지탄을 받게 된다. 결국 황 장관의 뜻을 받아들였다는 비판과 함께 검찰 내부에서도 수사의 독립성, 정치적 중립성 문제가 강하게 대두되면서 검찰이 또 한번 휘청일 수도 있다.
 
반대로 선거법위반 혐의를 적용해서 원 전 원장을 사법처리할 경우 법원에서 기각된다면 '무리한 수사' '부실수사'라는 여권의 공격을 받게 된다. 청와대 역시 대놓고 불편한 기색이 나오기는 어렵겠지만 껄끄러운 상황으로 전개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이 같은 '진퇴양란'의 상황에서 검찰은 '정면돌파'를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 안팎에서는 지난 5일이나 6일 원 전 원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가능성이 강하게 제기됐지만 현실화 되지 않았다.
 
검찰은 끝까지 고민하고 있다. 원 전 원장의 사법처리를 법원에 관철시키기 위한 마지막 수순을 치열하게 밟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변수로 최근 등장한 것이 원 전 원장의 개인 비리의혹이다. 공사 수주 등의 대가로 원 전 원장에게 거액의 금품을 준 의혹을 받고 있는 황보건설의 황모 대표가 지난 5일 회삿돈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
 
황 대표가 구속된 것은 횡령 등의 혐의 때문이지만 원 전 원장과 연결된 의혹은 뇌물수수 등의 혐의다. 뇌물 범죄가 대향범임을 고려해보면 원 전 원장이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사건이 아닌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황 장관의 '소통 차원에서의 의견 개진'은 검찰의 고민을 깊게 배려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또 '구속수사 불가, 선거법 위반혐의 적용 불가'라는 의견표명이 여론의 역풍을 맞으면서 '원 전 원장 선거법 위반 혐의 구속수사'라는 검찰의 의지를 사실상 굳힌 것으로도 풀이된다. 검찰은 7일 중 원 전 원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법원에 청구할 것으로 보인다.
 
(사진=뉴스토마토DB)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최기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