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 최근 '재판소원'이 아닌 '위헌법률심사형 헌법소원심판' 등을 통해 법원의 판결에 대해 사실상 '재판소원'을 청구하는 경우가 늘고 있어 대법원이 긴장하고 있다.
또 헌법재판소가 이같은 형태의 헌법소원에 대해 변형결정을 통해 사실상 법원의 판결에 대해 위헌결정을 내리는 결정 또한 잇따라 나오고 있어 대법원의 대응이 주목된다.
일각에서는 최근 헌법재판소가 국회에 헌법재판소법 개정에 대한 의견을 내면서 '재판소원' 금지규정 삭제와 함께 '변형결정'에 대한 기속력 인정을 강하게 주장한 것이 이같은 시류적 흐름을 탄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변형결정은 법률을 어떻게 해석, 적용하느냐에 따라 위헌 또는 합헌으로 볼 수 있다는 헌재의 결정형태다.
한정위헌과 한정합헌, 헌법불합치 세가지 형태로 선고되지만 사실상 위헌결정의 한 형태로 보고 있다. 변형결정은 1991년 처음 선고된 데 이어 적은 건수지만 해마다 꾸준히 내려지고 있다. 지난해 12월까지 선고된 변형결정은 총 52건이다.
대법원은 그동안 법률의 해석은 법원의 고유영역이라며 헌재의 변형결정의 기속력을 일관되게 부인해왔다. 그러나 '변형된 형태의 재판소원'이 변형결정과 결합되어 헌재에서 선고되면서 대법원을 직접적으로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오른쪽)와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사진=대법원·헌법재판소 제공)
대표적인 예가 지난해 6월 헌재가 내린 GS칼텍스 조세소송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에 대한 한정위헌 결정이다. 헌재는 당시, "법개정으로 실효된 부칙을 적용한 대법원 판결은 권력분립과 조세법률주의 원칙에 위반된다"고 결정했다.
이 사건은 재판소원이 아닌 조세당국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으로 청구됐기 때문에 재판소원이 정면으로 문제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헌재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대법원 판결에 대해 위헌결정을 할 수 있음을 분명히 밝혀 파장을 불렀다.
최근에는 헌재가 대법원의 법률해석에 대해서도 직접 문제를 삼은 예가 있다. 헌재는 지난해 12월 뇌물수수로 기소된 남 모 교수가 "위촉위원을 공무원으로 규정해 공무원의 범죄를 저지를 경우 처벌토록 한 관련법은 위헌"이라며 낸 헌법소원에 대해 한정위헌 결정했다.
앞서 대법원은 이 규정을 근거로 남교수에 대한 유죄를 확정했다. 이에 남 교수 측이 대법원 판결에 불복하고 근거규정의 위헌성을 문제삼은 것이다.
당시 헌재 재판부는 "재판소원을 금지하는 헌법재판소법의 취지에 비추어 개별, 구체적 사건에서의 단순히 법률조항의 포섭이나 적용의 문제를 다투는 등 단지 재판결과를 다투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면서도 "재판의 전제가 된 법률에 대한 규범통제는 결국 해석에 의해 구체화된 법률의 의미와 내용에 대한 헌법적 통제로서 헌법재판소의 고유권한"이라고 못 박았다.
그러나 대법원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특히 앞의 GS칼텍스 사건은 여러 기업들과 막대한 조세액이 걸려 있는 문제로 사회적 파급이 컸다. GS칼텍스와 같은 결정을 받은 KSS해운의 재심판결에서 대법원은 헌재의 변형결정에 대한 효력을 정면으로 부인했다.
대법원은 지난 3월28일 KSS해운이 '전면개정으로 실효된 법 조항을 근거로 내린 과세처분은 부당하다'며 종로세무서장을 상대로 낸 법인세부과취소소송 재심청구를 기각했다.
이때 대법원은 "헌재의 한정위헌결정은 헌법상의 대원칙인 권력분립의 원리와 사법권 독립의 원칙에 반하고, 법적인 근거가 없어서 확정판결에 대한 재심사유도 될 수 없다"고 못박았다.
한걸음 더 나가서 대법원은 "헌법은 사법권이 '대법원을 최고법원으로 하는 법원'에 있다고 규정하고 있고, 사법권의 독립을 선언하고 있다"며 "헌재의 위헌법률심판의 대상은, 국회가 입법권을 행사하여 제정한 '법률' 그 자체이지, 법원이 구체적인 사건에서 법률의 뜻을 풀이한 '법률해석' 내지 그러한 법률해석을 적용한 '법원의 판결·결정·명령'이 아니다"라고 못박았다.
법률해석 권한에 대한 논란은 물론, 누가 최고의 사법기관이냐에 대해서도 확실하게 선을 그은 것이다.
헌법학자나 헌법재판 전문 변호사들 중에서는 '재판소원'에 대한 금지규정을 국민의 법감정 높이에서 다시 재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헌법재판소법을 제정한 1988년에 비해 국민들의 법의식 수준이 높아진 만큼 사법부에 대한 불신 또한 많이 늘었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금지된 재판소원을 우회해 법원이 근거로 삼은 법률의 위헌성을 직접 확인 받아 사실상 재판 효력을 무력화시키는 소송전략이 늘고 있다는 현장 변호사들의 지적도 나오고 있다.
반면, '재판소원' 허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법관 출신의 한 변호사는 "재판소원 금지규정의 뿌리는 헌법이 예정한 '3심제'이므로 헌법재판소법에서 재판소원을 허용할 경우 그 자체로 위헌 시비에 휘말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변호사도 "변형결정에 대한 기속력을 인정할 경우 법해석에 대한 중심 추가 헌법재판소로 옮겨지게 될 것이고 이 또한 건전한 견제관계에 있어야 하는 대법원과 헌재의 균형을 깨뜨리는 것으로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