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 내란음모 혐의 등으로 영장실질심사를 받은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측과 국정원·검찰측이 초반부터 팽팽한 신경전을 벌였다.
당초 5일 10시30분부터 실시될 예정이었던 이 의원에 대한 영장실질심사는 30분이 지난 11시부터 진행에 들어갔다.
법원 관계자는 "변호인의 접견시간이 다소 길어져 11시 지나서 실질심사가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이날 이 의원측 변호인으로 총 6명의 변호사가 출석했다. 이정희 통진당 대표가 변호인 자격으로 출석했으며, 이 대표의 남편인 법무법인 정평 대표 심재환 변호사와 김칠준 법무법인 다산 대표 변호사도 출석했다.
검찰측에서는 수원지검 공안부(부장 최태원) 소속 검사와 파견 검사 등 3명이 출석했다.
이날 영장실질심사에서는 국가정보원이 입수한 녹취록의 증거능력 및 적법성 여부와 내란음모죄 성립 여부 등 핵심 쟁점을 두고 양측의 치열한 공방이 오간 것으로 전해졌다.
◇'내란음모' 혐의를 받고 있는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이 5일 오후 2시17분쯤 영장실질심사를 마치고 나오며 지지자들에게 손을 들어보이고 있다. 이 의원에 대한 영장발부 여부는 이날 밤 늦게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사진=수원 전재욱 기자)
녹취록의 증거능력과 적법성 여부는 사건 초기 국정원이 녹취록의 존재 사실을 알리면서부터 계속되어 왔다.
녹취와 입수 과정이 적법하지 않다고 법원이 판단할 경우 국정원의 혐의 입증 등 이번 수사가 통째로 흔들릴 수 있다. 일종의 뇌관인 셈이다.
오전 11시부터 2시까지 계속된 심사에서 이 의원 측에서는 이 점을 집중적으로 공략했고 국정원과 검찰은 녹취록의 적법성을 적극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은 음성녹취와 영상 파일을 통진당 내부 제보자를 통해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 제보자는 지난 5월12일 서울 합정동 모 종교시설에서 열린 모임에 참석해 녹음·촬영한 것으로 전해졌다.
통진당으로서도 모임과 녹취록의 존재 사실은 인정하고 있으나 국정원이 이 제보자를 불법적으로 포섭·침투시켜 얻은 것으로 증거능력이 없다는 주장을 해왔다. 통진당측 주장에 따르면 이 제보자는 거액의 도박빚을 지고 궁핍한 생활을 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 의원측 변호인단 대표인 김칠준 변호사는 최근 녹취록의 증거능력과 관련한 뉴스토마토와의 전화통화에서 "인간을 도구로 이용해 얻은 증거인 만큼 불법적인 것으로 증거능력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국정원과 검찰측은 "법원으로부터 영장을 받아 녹음·촬영한 것"이라며 증거능력이 문제 될 것이 없다고 하고 있다. 제보자인 통진당 관계자를 통해 입수한 것도 녹취록의 증거능력을 부정할 만큼 위법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제보자가 국정원측의 강압 없이 자발적으로 녹취해 제공한 것인 만큼 적법하다는 논리이다.
국정원이 3년여간 감청을 해왔다는 점도 공방이 오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의원 측에서는 "무기한 감청은 이미 헌법재판소에서 불합치 판단을 받았기 때문에 국정원이 근거 없이 3년간 계속 감청을 해 왔다면 불법 녹취"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국정원과 검찰은 "법원으로부터 영장을 받아 적법하게 감청했고, 또 감청 관련 조항이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았더라도 아직 해당 규정이 개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감청연장을 위법하다고 볼 수 없다"고 반박한 것으로 전해졌다.
]내란음모' 혐의 성립여부를 두고도 날선 공방이 오간 것으로 알려졌다. 형법은 87조(내란)죄에서 '국토를 참절하거나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폭동한 자'를 처벌한다고 하면서 수괴는 사형, 무기징역 또는 무기금고에 처하도록 정하고 있다.
워낙 중대한 범죄이기 때문에 실행에 옮기지 않고 사전에 모의만 하더라도 3년 이상의 유기징역이나 유기금고에 처한다. 국정원은 녹취록과 그동안의 수사를 통해 이 의원 등이 음모단계에 있었다고 판단해 '내란음모'혐의를 적용했다.
그러나 내란의 '음모'로 볼 수 있느냐를 두고 법조계에서 조차 의견이 첨예하게 갈린다.
죄가 성립될 수 있다는 입장에서는 이 의원이 강연을 통해 전쟁상황시 북한과의 연계 및 내란에 대한 총론적 지시를 내렸고 이후 이어진 분반토의에서 상당히 구체화됐다고 보고 있다.
특히 총을 준비하자는 제의와 폭탄 제조법, 특정지역 경비상황에 대한 사전 답사 등이 구체적으로 언급됐고, 이것이 각자의 주장이더라도 하나로 종합해 보면 전반적으로 내란에 대한 구체적인 음모가 있었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음모 정도로도 볼 수 없다는 견해 쪽에서는 목적이 있다고 하더라도 실행에 옮길 정도로 구체화 됐다고 볼 수 없고, 무엇보다 가능성이 없다고 해석한다. 130여명의 군사적 지식이 없는 사람들이 사제 총기나 폭탄을 통해 국토참절이나 국헌문란을 일으킬 수 있을 가능성은 없다는 것이다.
이 의원 측 변호인단은 이와 관련해 앞서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RO(Revolution Organization)라는 조직의 실체는 국정원의 일방적 주장에 불과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객관적인 근거가 없다. 또한 녹취록 어디에도 내란의 수단과 방법·시기 등에 관한 사항이 특정되어 있지 않고, 국토참절·국헌문란이라는 목적에 대한 “합의”의 존재조차도 인정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음모의 개념에 대해 대법원은 "2인 이상의 자 사이에 성립한 범죄 실행의 합의를 말하는 것으로, 범죄 실행의 합의가 있다고 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범죄결심을 외부에 표시·전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객관적으로 보아 특정한 범죄의 실행을 위한 준비행위라는 것이 명백히 인식되고, 그 합의에 실질적인 위험성이 인정될 정도가 되어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다.
이날 영장실질심사는 수원지법 오상용 영장전담 부장판사의 심리로 이뤄졌으며, 오 판사가 혐의사실에 대해 국정원·검찰측과 이 의원측에 질의하면 관련 사항에 대해 서로 논박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된 것으로 전해졌다.
심사는 이날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까지 점심시간 없이 3시간 동안 진행됐으며, 이 의원은 2시17분쯤 심사를 마치고 법원에서 나와 수원남부경찰서로 이송됐다.
오 판사는 국정원이 제출한 수사기록과 이 의원측 변호인단이 제출한 의견서, 이날 양측의 주장을 토대로 영장발부 여부를 결정하며 이날 밤 늦게 이 의원에 대한 구속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