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크라운베이커리! 고객의 추억도 소중히 여기길

입력 : 2013-09-13 오후 5:08:37
'ㅇㅇ사이다'. 난 유리컵에 찍힌 로고만 바라보고 있었다.
 
학창 시절, 전학 온 친구와 처음 만난 날 별것 아닌 일로 말다툼을 벌인 적이 있다. 아마도 내가 못되게도 텃세를 부렸을 테고, 녀석은 처음부터 기가 눌리면 안 된다는 자존심으로 버텼을 거다. 팽팽하던 말다툼 끝에 급기야 치고받는 주먹다짐으로 번졌다.
 
다음날, 수업을 마치고 교실을 나섰는데 멀리 정문 옆 그 친구가 웬 아주머니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지고 심장이 도리질을 쳤다.
 
'큰일이 나려나? 엄말 모시고 와야 하나? 선생님한테 이를까? 아냐 다른 일로 왔을 거야.'
 
순간 다 커서 친구랑 싸웠다고 엄마에게 이른 녀석이 야속하고, 선생님의 불방망이도 떠올라 나 자신에게 수많은 질문을 던져댔다.
 
짧은 시간이 지나고 그 친구가 나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는 것을 곁눈질로 확인하는 순간 모든 걸 포기해 버렸다. 되도록이면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애를 쓰며 정문을 지나는 순간 아주머니가 날 부른다.
 
어라, 그런데 목소리가 참 온화하다. 혼부터 날줄 알았는데 내 어깨에 손을 얹으시더니 학교 앞 큰길가 빵집으로 이끄신다. 크라운베이커리.
 
먹음직스럽게 커다란 곰보빵과 윤기나는 단팥빵 한 접시, 거기에 우유 두 잔을 시키신다. 죄인이 돼 고개를 숙이고 있던 나는 한 조각 먹을 엄두도 못 내고 컵에 찍힌 로고에 눈길을 고정하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아주머니는 "우리 아들과 사이좋게 지내라"는 말과 함께 곰보빵을 하나 건네신다. 말투처럼 따스한 우유 한잔과 함께. 이후 그 친구와 얼마나 친해졌는지는 말을 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20년이 훨씬 지난 뒤에도 우연히 크라운베이커리를 지날 때면 현명한 친구 어머니의 온화한 목소리가 떠오른다. 크라운베이커리에 투영된 나의 작지만 아름다운, 선명한 추억이다. 나 말고도 이 빵집이 만들어준 추억을 가진 사람들이 참 많을 것이다. 격변했던 대한민국의 지난 25년과 함께 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런 크라운베이커리가 이달 30일이면 영원히 사라지게 된단다.
 
크라운베이커리는 1988년 크라운제과 생과사업부에서 별도 법인으로 분리된 이후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프랜차이즈 빵집의 행보를 걷는다. 한때는 전국 600여개의 가맹점을 보유하고, 인기 스타를 내세운 CF까지 방영하는 등 타 업체의 추종이 불가능 한 부동의 맹주였다.
 
1998년에는 100% 순우유로 만든 생크림케이크를 출시하며, 케이크의 맛은 물론 시장의 판도를 바꿔 놓는다. 순우유 케이크는 당시 최고 스타였던 김지우와 이제니가 광고 모델로 참여하면서 정신없이 팔려나갔다.
 
그랬던 크라운베이커리가 사라진다.
 
추억의 장소가 사라진다는 아쉬움이 크지만, 그보다 사라지게 된 배경, 아니 사라질 수밖에 없었던 배경 때문에 씁쓸한 뒷맛이 남는다. 정리 과정에 있어서도 잡음을 내고 있어 마음이 아프다.
 
외환위기 이후 (많은 기업이 그랬지만) 크라운베이커리는 급경사의 내리막길을 걷는다. 업계 1위, 국민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는 자만이 변화의 시대를 인지하지 못하게 만든 것일까. 거기에 트렌드를 읽은 SPC그룹 파리바게뜨, CJ푸드빌 뚜레쥬르의 물량 공세가 이어 지면서 그만 자포자기에 이른다. 늦가을 땅에 내려 앉아 다시 날아오르지 못하는 잠자리처럼.
 
2006년에는 윤영달 크라운해태제과 회장 부인인 육명희씨가 경영을 맡는다. 당시 시장에서는 그의 경영 능력에 의구심을 가지며 '자충수'라는 평을 내놓았다. 대표이사에 오르기 전 그의 경력은 크라운제과, 해태제과 고문을 지낸 게 고작이었다. 지난해 5월 대표 자리에서 물러날 때까지 회사는 절반 이상 매출이 급감하는 등 마이너스 성장을 지속했다. 역시 시장의 예측이 빗나가지 않은 것이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회사는 지난 4일 70여개 남짓한 가맹점을 대상으로 사업 중단을 통보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통보 전까지의 방법이 참으로 치사하다. 회사는 그동안 주문시스템 변경, 케이크 배달 서비스 중단, 제품 축소와 미출고, 가맹점 양도 불허, 가맹계약 갱신 거절 등 일방적인 정책을 추진하며 서서히 가맹점들의 숨통을 조였다. 그러면서도 사업을 중단하기로 한 내부 결정을 철저히 숨겼다. 의혹에 대해 강하게 부인했다.
 
일련의 과정을 거치는 동안 가맹점들은 그나마 찾아오는 손님들을 돌려보내야만 했다. 심각한 영업 손실을 입은 것이다.
 
남은 문제가 또 있다. 폐업 결정 후 공중으로 붕 뜬 가맹점주들과 직영점 직원들에 대한 사후 조치다. 회사는 일방적인 사업 중단 통보 후 가맹점주들에게 1000만~2000만원의 보상금을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직원들에게는 실업급여를 지급하겠다는 약속이 전부다.
 
이 같은 행태를 비판하는 여론이 조성되자 회사는 대기업들의 물량공세를 핑계로 삼았다. 막대한 자본으로 밀고 들어오니 어쩔 수 없었다는 논리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마치 골목상권 침해의 피해자 인양 방패막이를 만들고 있는 것에는 동의할 수가 없다.
 
크라운베이커리는 지난해 30년 만에 문을 닫은 홍대 앞 '리치몬드' 제과점이 아니다. 리치몬드 같은 중견 또는 골목 빵집들은 크라운베이커리 같은 거대 공룡들의 공격을 받고 결국 생명을 잃고 쓰러졌다.
 
피해자라기 보다는 가해자였고, 경쟁에서 참패했고, 그 원인은 오너일가의 미숙한 경영에 있다는 점을 스스로 깨끗히 인정해야 한다.
 
여전히 사랑받는 계열사들이 남아 있고, 또 고객들에겐 빵처럼 달달한 추억으로 기억될 회사가 아닌가.
 
그래서 새삼 크라운베이커리의 아름다운 퇴장을 당부한다. 국민들과 오랜 세월을 함께하며 사랑을 받아온 만큼 그들의 추억까지 소중히 여기는 철학을 보여줘야 한다.
  
박관종 생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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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관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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