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 '2007년 남북정상 회의록' 폐기 의혹 사건이 고의적인 ‘삭제’에서 착오 등에 의한 '누락'으로 무게 중심이 쏠리고 있다.
지금까지 확인된 검찰 수사진행과 참여정부 인사들의 증언에 따르면, 2007년 7월부터 시작된 이관작업은 참여정부 TFT가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각 비서관실이 실무를 담당했다.
담당 비서관실은 청와대이지원에 문서관리카드로 기록을 탑재해 표제부와 경로부, 속성부별로 정보를 기록을 끝낸 뒤 상급자에게 보고하는데 이 과정에서 담당 비서관은 ‘종료’ 버튼을 눌러 상급자에게 전송해 결재를 받는다.
당시 회의록 이관작업의 결재라인은 조명균 전 안보비서관과 윤병세 전 외교안보수석, 백종천 안보정책실장, 노무현 전 대통령 순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보고된 기록문건은 각 담당자의 결재가 완료되면 자동으로 국가기록원 이관물로 재분류돼 청와대기록물관리시스템인 RMS를 거쳐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물 관리시스템 '팜스(PAMS)'로 이관된다.
문제는 검찰이 청와대이지원에서 초안(복구본)과 수정본(발견본) 중 어느 것도 찾지 못하고 봉하이지원에서만 둘다 발견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앞서 봉하이지원에서 '삭제'된 초안을 발견해 복구했다고 발표했고, 이와는 별도로 초안이 수정된 수정본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김경수 전 연설기획비서관은 지난 9일 "청와대이지원에는 초안과 수정본이 모두 존재해 있었고, 다만 최종문건인 수정본이 완성돼 존재함에 따라 초안은 중복문서로 제목과 문건의 기본정보만 담긴 표제부가 삭제되었을 뿐 내용은 존재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또 "표제부만 지워졌을 뿐 원문은 남아 있으므로 '삭제'된 문건을 '복구'한 것이 아닌 '발견'됐다고 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검찰 발표대로 초안과 수정본이 봉하이지원에서 발견됐다는 것은 참여정부 인사들 말대로 초안과 수정본이 청와대이지원에 처음부터 존재하고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봉하이지원은 청와대이지원을 그대로 복사한 복제본이다. 문제는 봉하이지원의 복제 시기인데 검찰 관계자는 "퇴임 이전에 복제됐다"고 여러번 확인했다.
그렇다면 청와대이지원에서 검찰이 초안과 수정본을 발견할 수 없었던 이유는 무엇인가가 문제다. 검찰이 청와대이지원에는 초안과 수정본이 없었다고 발표하자 청와대이지원을 제대로 다 확인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강하게 일었다.
그러나 최근 언론보도를 통해 새로운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 같은 의혹을 풀 실마리가 제공될지 주목되고 있다.
<한국일보>는 16일 사정당국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참여정부는 노무현 전 대통령 퇴임 직전인 2008년 2월1일부터 24일까지 외주를 맡겨 정권이양 준비를 위한 이지원 초기화 작업을 했고, 이로 인해 이지원 전자결재가 되지 않은 회의록이 누락돼 기록원에 이관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이같은 사항을 종합해보면 회의록은 2007년 10월9일 처음 초안이 청와대이지원을 통해 노 전 대통령에게 보고됐고, 수정지시가 내려온 다음 작업을 거쳐 수정본이 청와대이지원을 통해 보고라인으로 올라가는 과정에서 담당자중 누군가가 보고를 누락한 것으로 보인다.
담당자가 청와대이지원 작업창에 있는 '종료' 버튼을 누르면 자동으로 직속상관을 통해 보고가 되는데 노 전 대통령에게까지 보고가 돼 결재가 됐다면 재분류작업을 거쳐 RMS로 넘어가 당연히 이관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 전 대통령에게까지 보고가 안돼 결재를 받지 못한 상태로 이관대상에서 빠진 것이고, 그 상태에서 청와대이지원 초기화 작업이 이뤄졌으니 수정본은 청와대이지원에서 찾아볼 수 없게 된 것으로 보인다.
초안도 표제부가 지워진 상태로 남아 있었으나 초기화 작업 과정에서 수정본과 함께 청와대이지원에서 지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이 당시 표제부가 지워진 초안과 수정본은 봉하이지원으로 이미 복제된 상태였다.
이런 이유로 조명균 전 비서관에게 다시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그는 회의록 이관 실무담당자였으며 초안과 수정본을 청와대이지원에 직접 탑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조 전 비서관이 회의록의 청와대 탑재 업무를 수행하면서 자신의 업무종료 표시인 동시에 결재전송 단계인 '종료' 버튼을 실수로 누르지 않은 것 아니냐는 의혹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조 전 비서관은 당시 상황을 명확히 기억해내지 못하고 있으며 최근 검찰 소환조사에서도 이렇다 할 진술을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조 전 비서관에 대한 재소환을 검토 중으로, 조 전 비서관에 이어 당시 보고라인에 있던 윤병세 전 외교안보수석, 백종천 안보정책실장 등도 소환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