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 김승연 한화 그룹회장과 구자원 LIG그룹 회장이 나란히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고 지난 11일 석방되면서 앞으로 선고와 재판을 두고 있는 재벌기업들이 한껏 고무된 상태다.
김 회장은 2012년 특경가법상 횡령 및 배임 등의 혐의로 기소돼 서울서부지법에서 징역 4년에 벌금 51억원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되면서 재계에 큰 충격을 던졌다.
이 사건을 기점으로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경제민주화 바람과 함께 사법부의 재벌 비리 사건에 대한 잣대가 엄격해졌다는 분석이 쏟아졌다.
반면, 국민들은 ‘고무줄 판결’ ‘재벌봐주기 판결’의 종식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해석하며 사법부를 다시 봤다.
그러나 이번 판결을 보는 재계의 분석은 김 회장 측의 완벽한 승리다. 대법원 판결이 남아있는 상태지만 구 회장의 경우도 같다는 평가다.
재판을 앞두고 있는 기업들도 겉으로 표현은 않지만 속으로는 기대감이 커지는 눈치다.
◇재벌총수들 "무죄 안 바라 집행유예가 최종 목표"
재계와 기업소송 전문변호사들의 얘기를 종합해보면 재벌총수가 기소된 기업 형사사건의 경우 이들의 최종 목표는 무죄가 아닌 ‘집행유예’다. 죄는 인정하겠으니 풀어만 달라는 얘기다.
서울고법 형사합의5부(재판장 김기정)는 김 회장과 함께 기소된 임원들의 죄질이 매우 좋지 않아 엄벌이 불가피하다면서도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물론 한화석유화학이 소유한 여수시 부동산을 저가로 매각한 것에 대한 배임액이 감액된 점과 검찰 역시 배임액을 감액하고 공소장을 변경한 것이 크게 작용했으나 이는 공소사실에 대한 죄의 유무 판단에는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 또 감액된 배임액을 제하더라도 유죄로 인정된 배임액은 상당한 거액이다.
주목할 만한 것은 이 외에 주요 집행유예 사유로 참작한 피해액을 보전한 점, 경제건설에 기여한 공로, 건강상태가 악화된 점 등이다.
김 회장은 대출까지 받아가면서 파기환송심 구형일에 1597억원을 피해에 대한 보상으로 공탁했다. 건강상태는 지병인 당뇨에 우울증까지 겹쳐 법원이 3차례에 걸쳐 구속집행정지를 허가했다. 김 회장은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상당기간 서울대병원과 법정을 오가며 재판을 받았다.
◇재판부 피해보전·건강상태 주요 참작
서울고법 형사5부(재판장 김기정) 역시 구회장에 대해 집행유예를 선고하며 피해액 보전과 건강상태 등을 주요 참작사유로 들었다.
구 회장 역시 기소가 된 후 1심에서 570명의 피해자들에게 834억원을 변제하고 사재를 털어 피해보전 자금을 마련해 피해자들과 합의했다. 그는 또 79세의 고령이다.
이 외에 재판부들이 집행유예 사유로 참작하는 것이 국가 경제발전에 대한 기여다. 김 회장에 대해 재판부는 “한화그룹의 총수로서 그동안 나름대로 우리나라 경제건설에 이바지한 공로가 인정된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기업총수가 재판을 받고 있는 동안 해당 기업들은 해외 투자와 공익사업, 일자리 창출 등에 사활을 건 듯이 뛰어 든다.
한화그룹은 김 회장이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던 지난해 1월 2000여명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공교롭게도 석달 뒤 서울고법에서 김 회장은 징역 3년에 벌금 51억원으로 감형 받았다. 징역 3년이면 집행유예가 가능한 형량이다. 이 때부터 김 회장의 집행유예 가능성은 이미 제기된 상태였다.
곧 선고를 앞두거나 재판이 시작되는 재벌총수들도 김 회장이나 구 회장과 비슷한 전철을 밟고 있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사진 왼쪽), 최태원 SK그룹 회장(사진=뉴스토마토DB)
오는 14일 선고를 앞둔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신부전증과 신장이식 수술로 구속집행이 정지된 상태다. 고령은 아니지만 건강상태가 매우 좋지 않다.
또 지난 11월 2000억원대의 CJ 주식을 세무당국에 공탁한 뒤 지난달 15일 1심 결심공판에서 조세포탈 혐의의 고의성을 강력히 부정했다. 검찰은 이날 징역 6년과 벌금 1100억 원을 구형했다.
◇CJ, 이 회장 검찰 소환 직전 '정규직 전환' 발표
앞서 CJ그룹은 지난해 6월18일 주요 계열사에 흩어져 있는 비정규직 1만5000여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한다고 발효했다. 수천억대의 불법 비자금 사건이 터지고 이재현 회장이 검찰소환을 오늘내일 기다리던 때다.
이 회장에 대한 앞으로의 재판에서 변호인측은 이 회장의 이같은 사항들을 강력하게 주장하며 집행유예 선고를 이끌어내기 위해 사활을 걸 것으로 보인다.
이달 말 대법원 선고를 앞 둔 최 회장의 경우는 고령이나 지병 등에 대한 사유 보다는 경제건설에 이바지한 공로 등을 적극 주장할 것으로 보인다.
SK도 횡령과 배임 등의 혐의로 최태원 회장이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된 뒤 넉달 뒤인 지난해 5월 역대 최대 규모인 5800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제 재판을 시작하는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 측도 고령과 지병이 중한 점 등을 양형에 참작해줄 것을 강하게 주장하며 집행유예를 이끌어내기 위해 총력을 쏟을 것으로 보인다.
조 회장은 현재 만 79세로 지병인 담낭암으로 고생해왔으며 최근 전립선암이 추가로 발견돼 서울대 병원에서 치료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