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에 민감한 세상이다. 트렌드를 먹고, 마시고, 입는다. 요즘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아이돌 중심의 k-pop은 말할 것도 없고, 패션과 예술, 먹꺼리, 언어까지 온통 트렌드가 주재료다.
유행이란 것이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꿈틀거리며 세상을 움직인다는 말은 신선할 것 없이 통용되는 것이지만, 그 움직임이 점점 더 빨라져 지금은 마치'우사인 볼트'처럼 '전광석화'다. 몇 년, 몇 개월 단위는커녕 하루아침에 바뀌어 버리는 경우가 다반사다. 기성세대가 도저히 뒤쫓을 수 없는 속도다.
최근에는 스웨그(swag) 문화가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 'swag'는 사전적으로 약탈품', '밀수품' 이란 속어로도 사용되고, 꽃장식, 비틀거리기, 심지어 부랑자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는 여유와 멋, 약간의 허세, 치기를 표현하는, 즉 자유분방한 젊은이들 각자의 개성을 일컫는 단어가 됐다. 여기엔 무엇이든 가볍게 흘려버리는 '쿨'함도 포함돼 있다.
록음악과 함께 자유와 표현의 상징이 된 힙합 특유의, 흑인 특유의 껄렁껄렁함(?)이 이젠 요즘 세대가 가져야 할 멋으로 자리 잡았다.
한쪽에서는 이 같은 트렌드 변화와 'swag' 신드롬에 대해 옛것에 대한 고찰과 자기성찰 없는 경박함과 장난끼만 넘쳐난다고 경계심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 처럼 시대상에 맞는 변화와 신드롬 없이 써지는 새 역사가 어디에 있겠는가. 윗세대들은 받아들이기는 조금 불편하지만 이런 속에서도 나름의 질서를 찾고, 강한 개성이 혁신으로 확산되고 있으니 큰 걱정 없이 지켜볼만 하겠다.
그런데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는 트렌드가 있다. 희한하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불행은 한 번에 찾아온다는 머피의 법칙이 들어맞는다고 해야 할까.
취재 일선에서 보면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사건사고도 소름이 돋을 만큼 트렌드에 민감하다. 부녀자 연쇄살인이나 납치사건도 그렇고, 연예인이나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 일반인의 자살은 베르테르효과를 타고 유행처럼 확산된다. 열차사고도 한번 발생하면 줄줄이 비슷한 사고가 잇따른다. 필자의 주장이 뚜렷한 과학적 증거나 수치로 집계된 명확한 사실은 아니지만 분명 그렇다.
지난해 7월 미국 샌프란시스코 공항 아시아나항공기 추락사고 이후 숨 돌릴 틈도 없이 8월엔 공군 훈련기 T-50이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어 11월에는 LG소유 헬기가 강남 삼성동 한 아파트에 충돌해 추락했다.
원유유출 사고는 또 어떤가. 지난 설 연휴 기간 발생한 여수앞바다 원유유출사고는 해양수산부장관까지 낙마시켰다. 보름 후에는 부산앞바다에서 선박들이 충돌하면서 대량의 연료가 유출됐다. 이 뿐인가. 물론 바다에 피해를 주지는 않았지만 지난 4일 발생한 울산 정유공장 원유 유출 사고는 아직도 수습이 안 되고 있다.
건축물 관련 어이없는 사고도 트렌드로 찾아온 듯하다.
2월 10명의 생명을 앗아간 재앙, 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 붕괴사고에 이어 세종시에 한참 지어지고 있는 한 아파트의 철근 부실시공 사태, 며칠 전에는 목포 한 아파트 단지 내 도로와 주차장이 붕괴되는 위험천만한 사고가 발생했다. 수습하고 대책을 세우는 속도가 따라잡지 못할 정도로 정신없이 인재(人災)가 이어지고 있다.
이 정도면 꼭 수치를 계산하거나, 과학적 근거를 대지 않아도 사고에도 트렌드가 있다는 억측에 조금은 동의가 가지 않을런지.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게 다 사전에 막을 수 있는 사고들이다. 이런 어이없는 현상은 발생하기 전 누군가의 무사 안일함으로, 또는 커다란 시스템에서 벌써부터 작은 톱니 하나가 빠져나가며 한 번에 터질 것이라는 예고가 돼 있었다. 비슷한 시기, 분명 어떤 이들이 안일함이란 트렌드를 타고 퍼즐을 잘못 맞춰 일어난 집단 낭패다. 머피의 법칙이 아니다.
그런데 한심하게도 늘 발생 뒤 얻어맞고, 후회하고, 그제야 긴급처방에 들어간다. 불행한 사고가 예측됨에도 여유를 부리는 부정적인 의미의 'swag'다.
국민의 안전 앞에서는 대충대충 넘어가 잊히면 그러려니 하는 그런 트렌드, 마냥 쿨하고 남의 시선 따윈 신경 안 쓰는 장난끼 있는 'swag'는 좀 빼자. 대신 꼼꼼히 준비해 예방하는 트렌드를 만들어 보자.
박관종 산업2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