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 세월호 침몰 참사 당시 승객을 버려두고 도주한 세월호 승무원들이 잇따라 사법처리되고 있는 가운데 이들에 대한 혐의적용을 두고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이준석 선장에 대해 검·경 합동수사본부(본부장 이성윤 목포지청장)가 적용한 특가법상 '도주선박의 선장 또는 승무원에 대한 가중처벌(도주선박)' 혐의가 성립하는지부터 적극적으로 살인죄를 적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여기에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1일 "선장과 일부 승무원들의 행위는 상식적으로 도저히 납득할 수 없고 용납될 없는 살인과도 같은 행태"라고 비난하면서 기름을 부었다.
이 선장은 사고 당시 조타실을 비운데다가 세월호에서 가장 먼저 탈출해 구조된 것으로 알려졌다. 구조된 후에는 선장인 본인의 신분을 숨기고 일반인 행세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현재까지 공개된 해상교통관제센터(VTS)와의 교신 역시 이 선장이 아닌 1등 항해사 강모씨가 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이 선장에게는 애초부터 승객들에 대한 구조의사가 없었다는 지적까지 제기되고 있다.
합수본이 이 선장에게 적용한 혐의는 도주선박 혐의 등을 포함해 형법상 유기치사와 업무상과실선박매몰죄, 수난구호법 위반, 선원법 위반 등 5개다.
◇특가법상 '도주선박' 혐의 개정후 첫 적용
이 중 특가법 위반혐의가 주목받는 것은 법정형이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으로 매우 무겁기도 하지만 지난해 7월30일 특가법에 제정된 규정으로 이번에 처음 적용되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특가법 위반혐의 적용에 대해 회의적으로 보고 있다. 입법 취지가 선박 상호간 충돌을 전제한 것으로 이번 사건과는 사안이 다르다는 것이다.
발의자인 김승남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등은 당시 "선박충돌 발생시 인명과 선박에 대한 즉각적인 구호조치를 하지 않고 현장에서 도주할 경우 대부분 사망, 실종 등 대형사고로 이어진다"며 "해상에서 선박충돌사고 발생 후 피해자에 대한 충분한 구호조치를 이행하지 않고 도주한 행위를 가중처벌해 도주심리를 억제하고 충돌사고를 사전 예방하는 등 해상교통질서를 확립하려는 것"이라고 제안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반드시 선박 충돌시에만 특가법 위반혐의가 적용되는 것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일단 도주선박 혐의에 대한 규정은 '해사안전법' 2조에 따른 선박의 교통시에 발생한 사고라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해사안전법 2조는 '항해 중인'선박에 대한 정의 규정이다. 정박하거나 항만의 안벽 등 계류시설에 매어놓은 상태, 얹혀있는 상태가 아니면 항해 중으로 본다.
◇'선박 상호 충돌후 도피'로 제한 안돼
이어 '선박의 교통시에 발생한 사고'의 개념이 문제되는데, 이는 선박이 항해 중에 일어나는 인명 및 재산사고로 해석하는 것이 법조계의 중론이다. 다른 선박과의 충돌시로만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는 분석이다.
해상 및 항공관련 전문로펌인 법무법인 세창의 김현 대표 변호사는 "특가법상 해상의 교통의 의미는 선박운항으로 일반적인 선박운항을 말한다"며 "넓은 개념으로 봐야 하며 해상운송 여객선 선장의 여객선 운항행위도 여기에 포함된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이어 "입법시 제안이유가 비록 충돌사고를 전제로 한 것으로 볼 수 있더라도 꼭 배들간의 충돌에만 엄격히 제한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해상전문 변호사도 같은 취지로 설명했다. 한 대형로펌의 해상전문 변호사는 "피고인이나 변호인 입장에서는 입법취지를 강조해 충돌사고에만 특가법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 된다면 이번 사건과 같은 대형 참사는 적용할 법이 없는 공백상태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이어 "입법취지가 강조된다고 하더라도 당시 제안이유에서 보듯 이 규정은 선장이나 승무원이 본인의 법률상 구조의무를 회피함으로써 야기되는 대규모 인명피해에 대한 처벌을 가중하고, 나아가서 이를 예방하자는 데 취지가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며 "이번 사건에 적용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검찰 "문언 및 입법 취지 충분히 검토"
검찰 관계자도 특가법상 도주선박 규정의 적용과 관련해서 "사건 발생 직후 형사처벌 가능성이 제기된 이후부터 면밀하고도 광범위한 법리검토를 거쳤다. 문언상이나 취지를 해석해보더라도 법 적용에는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특가법상 도주선박죄와 더불어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이 이 선장에 대해 살인죄를 적용할 수 있는 것이냐의 문제다. 법률전문가들 사이에는 의견이 팽팽히 갈리고 있다. 그러나 교신내용 공개 등 이 선장 등의 행적이 속속 드러나면서는 살인죄 적용이 가능하다는 쪽에 무게가 실리는 분위기다.
살인죄가 적용되기 위해서는 부작위에 의한 살인을 인정할 수 있는지를 두고 복잡한 법리적 쟁점이 있다.
부작위범이란 아무 행위도 하지 않은 것을 적극적으로 행위를 한 것과 같이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이 사건에서 보면 선장의 도주행위를 살인행위와 동일하게 볼 수 있어야 한다. 고의의 문제는 그 다음의 문제다.
이를 위해서는 일단 행위 의무가 있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여기에서의 의무는 법적으로 부과된 의미라는 게 법률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선장 및 승무원들의 승객 구조의무는 선원법과 수난구호법상 명시되어 있다. 결국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가 성립된다는 것이 법조계의 대체적인 해석이다.
문제는 이 선장에게 살인의 고의성을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다.
◇"고의, 최소한 미필적 고의 인정돼"
적지 않은 법률전문가들이 "40년 가까운 경력을 가지고 있는 이 선장으로서는 자신이 조치하지 않으면 승객 중 한 명이라도 사망할 것이라는 인식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다"며 "고의, 최소한 미필적 고의가 충분히 인정된다"고 해석하고 있다.
시민을 위한 변호사회 공동회장인 이헌 변호사는 페이스북을 통해 이 선장에게는 법리상 '미필적 고의'가 인정된다는 의견을 내놨다.
그는 ▲사고발생 당시 선장이 1시간이 넘도록 승객들을 대피시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동하지 말라고 한 점 ▲그 사이 자신과 선원들만 대피한 점 ▲구조된 뒤 신분을 은폐해 승객들 구조작업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은 점 등을 지적하며 "선장에게 귀책사유가 있는 승객들의 사망에 대하여 법리상 '인식있는 과실'을 넘어 '미필적 고의'가 있다"고 주장했다.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 구성이 가능할지는 몰라도 살인의 고의가 인정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반대 입장도 만만치 않다.
형사사건을 많이 변호하고 있는 한 중견 변호사는 "아무리 그래도 선장이 승객들을 죽이려는 의사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살인죄가 된다는 것은 어거지"라고 반대 입장을 일축했다.
◇"살인죄 적용은 어거지"
판사 출신의 한 형사전문 변호사도 "살인의 고의는 매우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며 "이번 사건의 경우 선장이 별다른 조치 없이 도주하기는 했으나 그가 떠난 이후에도 일부 승무원들이 남아 있었던 점을 볼 때 승객들이 사망해도 어쩔 수 없다는 정도의 살인의 고의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부장판사 출신의 또 다른 변호사는 "살인이 성립되느냐 아니냐는 지금 단계에서는 말할 수도 말해서도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매우 참담한 심정이지만 여론에 밀려 법을 억지로 적용할 수는 없지 않느냐"며 "칠곡과 울산 계모 살인사건을 통해 격앙된 여론이 이번 사건에 개입되면서 증폭되는 분위기인데 이 선장을 사형시키라는 외부 압력이 형성돼 사법부를 흔들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검찰 관계자는 이 선장에 대한 살인죄 적용 가능성에 대해 "우선 신속한 조치가 필요하기 때문에 특가법을 적용한 것이고 지금으로서는 말 할 단계가 아니다"며 "지금 적용된 게 다가 아니다. (수사와 기소에 소요되는)기간이 아주 길어질 것 같다"고 말해 여운을 남겼다.
◇세월호 침몰사건 실종자 가족들이 팽목항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아이들의 생존을 기도하고 있다.(사진=임애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