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한광범기자] "나에 대한 모독이 도를 넘고 있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격노' 이후 검찰이 대대적으로 모니터링을 통해 사이버공간에서의 명예훼손을 적발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검찰의 '심기경호'로 인해 지난 2010년 위헌 판결을 받은 전기통신기본법 47조 1항이 새삼 다시 관심 받고 있다.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에 대해 '공익'이라는 모호한 개념을 앞세워 검찰이 대대적인 수사를 진행하며 표현의 자유를 크게 위축시키는데 이용된 법조항이었기 때문이다.
검찰이 '공개된 장소'에서 대대적으로 '공적기관'·'공적인물'을 상대로 한 사이버 명예훼손을 모니터링 하겠다고 밝힌 것에 대해 "사실상의 전기통신기본법의 부활"이라는 비난이 거세지고 있다.
전기통신기본법 47조 1항은 "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전기통신설비에 의하여 공연히 허위의 통신을 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돼 있었다.
법률가들조차 그 존재자체를 잘 몰랐던 이 법조항이 존재감을 드러낸 것은, 지난 2009년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 사건에서였다. 그래서 이른바 '미네르바법'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 법은 1961년 박정희 대통령이 군사쿠데타 후 설립한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만들어진 전기통신법 89조 1항에 뿌리를 두고 있다. '공익을 해할 목적'이라는 모호한 문장을 가진 이 조항은 쿠데타로 집권한 군사정권이 정권 비판의 목소리를 잠재우기 위해 만든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미네르바' 박모씨는 2008년 포털 게시판에 정부의 금융정책을 연일 비판하며 유명세를 탔다. 특히 산업은행이 인수하려 했던 '리만브라더스'의 파산을 예측해 네티즌들로부터 '경제대통령'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미네르바의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이 계속되는 와중이던 2008년 11월, 홍일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의원이 대정부질문에서 김경한 법무부장관에게 미네르바에 대한 수사를 촉구했다. 김 장관도 이에 화답하듯 수사 가능성을 내비쳤다.
김 장관의 발언이 있자, 미네르바는 '국가가 침묵을 명했다'며 그동안의 글을 지우고, 온라인상에서 자취를 감췄다. 그리고 한 달가량이 그해 12월말, 미네르바는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 온라인상에서는 엄청난 동조자들이 생겼다.
글이 올라온 날, 검찰은 곧바로 수사에 착수했다. 피해자를 특정할 수도 없고 고소·고발도 없었지만 검찰은 포털업체의 '협조'를 얻어 미네르바의 신원을 확인했다. 또 인터넷사업자의 '협조'를 통해 그의 거주지까지 파악했다. 일사천리였다.
2009년 1월초 검찰은 법원으로부터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 받아, 미네르바의 거주지를 찾았다. 미네르바는 검찰의 임의동행 요구에 따라 나섰다. 그가 다시 집에 돌아온 건 100일 가량이 지난 4월 중순, 1심에서 무죄를 선거 받은 뒤였다.
검찰은 1심에서 미네르바에게 징역 1년6개월을 구형했지만, 1심 재판부는 '일부 과장된 서술이 있지만, 허위라고 인식하고 글을 게재했다고 보기 어렵다', '허위 사실 게시에 고의가 없었고, 공익을 해할 목적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1심 판결 후인 5월 미네르바는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청구를 제기했다. 다음해인 2010년 12월 헌재는 공익의 개념이 '불명확하고 추상적'이라는 이유를 들어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이번 검찰의 사이버 명예훼손 모니터링이 '전기통신법 47조 1항의 부활'이라는 거센 비판을 받는 배경에는 검찰의 모니터링과 그에 이은 수사가 '불명확하고 추상적'인 잣대를 보일 수밖에 없다는 데 있다.
검찰은 상시 모니터링을 통해, '공적기관'과 '공적인물' 등에 대한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을 처벌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공적기관'과 '공적인물'의 기준 및 처벌 기준을 아직 마련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모니터링 인력과 수사 인력이 한정적인 상황에서 무궁무진한 정보가 있는 인터넷에서 '공적기관'과 '공적인물' 역시 극히 제한된 수일 수밖에 없다. 검찰의 보호 대상이 극히 일부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검찰은 명예훼손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중론인 공적기관에 대한 비방에 대해서도 모니터링 하겠다고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공적기관'의 대상에 대해 "공적기관의 공적인물"이라고 설명했다.
광우병 보도와 관련해 PD수첩 제작진들을 기소할 당시 적용한 '기관에 대한 비판은 기관의 수장에 대한 명예훼손'이라는 논리와 거의 흡사하다. 아울러 '허위사실'에 대한 진위 여부 판단이 나오기 전에 검찰이 수사에 나서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기준이 불명확한 상황에서 사문화됐던 '전기통신기본법 47조 1항'을 꺼내면서까지 정권 비판에 칼을 들이댔던 미네르바 사건처럼, 이번 조치가 정권에 대한 비판을 원천적으로 막는 '전가의 보도'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공적기관이나 공적인물에 비해 제한된 정보를 가질 수밖에 없는 일반 시민들의 경우엔, 명확한 사실 관계를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런 지적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글을 올릴 때는 어느정도 책임감을 갖고 올려야 한다"며 "문제없는 글을 올리면 (글 작성자 역시도) 문제없다"고 말해, 안이한 인식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