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대포집 불청객' 대통령과 검찰

입력 : 2014-10-21 오후 6:30:18
1972년 12월.
 
호환마마보다 더 무서운 유신의 시대에 20대 후반이었던 필자의 아버지는 하마터면 철창신세를 질 뻔했다. 친구와 막걸리를 드시다가 '박정희, 박정희'라고 한 것이 화근이었다. 같이 술자리에 있던 경찰관이었던 아버지의 친구는 "각하가 네 친구냐"며 격분했던 걸 어머니가 겨우 달랬다고 한다.
 
1980년 여름 나의 젊은 아버지는 또 한 번 끌려갈 뻔했다. 이번에는 삼청교육대였다. 역시 술자리에서 회사 동료와 다소 격하게 실랑이를 벌인 것이 빌미가 됐다. 전두환 군사정권의 무지막지한 철권통치는 퇴근 후 소박한 술자리에서의 사소한 드잡이도 그냥 두지 않았다.
 
덕분에 필자는 어렸을 때부터 '입조심'하라는 어머니의 단속을 이름보다 더 듣고 자랐다. 때문에 법과 규칙이라면 걱실걱실 말을 잘 들었다.
 
초등학교 애국조회시간 옆 친구가 쓰러져도 계속되던 교장선생님의 훈화는 이상할 것이 없었고, 복도에서 뛰지 말라는 선생님들의 지도와 매질에 손 등을 양 허리에 대고 무용하듯 사뿐사뿐 걷던 것도 어색하지 않았다. 우리학교 학생들이 다 그랬으니까.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잘 못 된 것인지를 알았을 때 이미 내 보석 같은 유년기는 이미 가고 없었다.
 
필자의 경우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역사적으로도 예의 '막걸리보안법'의 기능은 대부분 역기능이었다. '사회악 일소 특별조치'와 '계엄포고령 13호', '삼청5호계획'이라는 근본부터 불분명한 전씨의 '삼청교육대'조치는 세계사에 남을 야만적 정권의 폭거였다. 그 밑을 떠받친 군사교육에 준하는 학교 교육도 다를 게 없었다.
 
요즘 언론 보도를 보면서 자꾸 아버지의 곤욕과 필자의 애국조회 시간이 어른거린다. 이런 증상은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말씀'이 있고부터로 기억된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16일 국무회의에서 "사이버상 국론을 분열시키는 아니면 말고 식의 폭로성 발언이 도를 넘고 있어 사회의 분열을 가져오고 있다. 이런 상태를 더 이상 방치한다면 국민들의 불안이 쌓이게 돼서 걷잡을 수 없게 된다"고 말했다.
 
검찰이 친히 사이버 명예훼손 단속을 강화하겠다고 나섰다. 대상에 대해서는 카카오톡을 비롯한 메신저나 인터넷 포털 등 여러 곳이 대상으로 지목되면서 논란에 휩싸이다가 '인터넷에 공개된 사이트를 대상으로 한 허위사실 유포 글'로 가닥이 잡혔다.
 
하지만 검찰은 피해자가 명예훼손 사실을 알지 못하는 데도 역시 친히 수사를 개시하겠다는 선제적 수사는 이상할 정도로 집착하듯 고수하고 있다.
 
아버지 살아계실 적 좋은 지인들과 얼굴 맞대고 세상 사는 얘기하는 곳은 마을 입구 대포집이 단연 최고였다. 지금은 시선을 맞대고 서로에게 집중하는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그 역할을 하고 있다.
 
다만 그 때나 지금이나 "나라 꼴이 이래서야"는 최고의 안줏거리다. 세대와 만나는 곳이 다른 아버지와 필자가 유일하게 알아보고 어울릴 수 있는 끈과 같은 것이다.
 
지금 박 대통령과 검찰은 우리 안줏거리를 들여다 보려 대포집으로 머리를 들이밀고 있다.
 
최기철 정치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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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