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 "내일 모레면 변호사 3만명 시대입니다. 그러나 전혀 대비가 안돼서 젊은 변호사들이 허둥대고 있습니다. 가는 곳마다 젊은 변호사들이 묻습니다. '변협은 우리에게 뭘 해줬습니까?'"
박영수 변호사(63·사법연수원 10기)가 삭풍이 몰아치는 변호사 업계의 현실을 개탄하며 정면으로 대한변협의 책임을 물었다.
새벽부터 변호사들을 만나며 강행군을 하고 돌아온 박 변호사의 눈에는 핏발이 서 있었다. 그가 예의 담백하고 진솔한 태도로 말을 이었다.
"지금까지의 의식과 관행을 모조리 바꿔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 큰일 납니다."
◇대한변협 48대 협회장 후보 기호 3번 박영수 변호사가 지난 18일 서초동 선거 캠프에서 뉴스토마토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사진=뉴스토마토)
'칼잡이', '재벌저승사자', '특수수사의 달인'…. 박 변호사의 별명이다. 검찰 출신인 그는 특수수사 분야에서 큰 획을 그은 인물이다.
제20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검사가 된 그는 강력·특수통으로 이름을 날리며 수많은 사건의 수사에서 활약했다. 서울지검 2차장으로 재직할 때엔 이른바 'SK분식회계 사건'의 수사를 끝까지 파헤칠 수 있도록 견인차 역할을 했으며, 2006년 대검 중수부장 시절엔 현대차그룹의 비자금 조성 및 불법 사용 혐의를 찾아내 정몽구 회장을 구속기소했다. 때문에 그를 아직도 대검 중수부장으로 기억하는 사람이 더 많을 정도다.
◇'칼잡이 박영수'에서 '변호사 박영수'로
그러나 지난 18일 선거캠프에서 만난 그의 모습에서는 '칼잡이 박영수'는 없었다. 변호사들의 현실에 가슴을 치는 '변호사 박영수'가 있었을 뿐이다.
박 변호사는 서울고검장을 끝으로 검찰을 떠나 2009년 3월 막 합병을 한 법무법인 대륙아주의 대표 변호사로 취임했다. 김진한 대표의 간곡한 청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각별한 인연이 있다. 김 대표가 검찰 시보였을 때 박 변호사가 담당 부장검사였다.
그리고 2010년 2월 중소로펌인 법무법인 '산호'를 설립하고 대륙아주를 나왔다. 이후 2013년부터 현재까지 법무법인 강남의 대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대형로펌과 중소로펌을 고루 경험한 셈이다.
2012년 8월에는 대한변협 지자체세금낭비조사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역량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박 변호사는 서울시 세빛둥둥섬조성사업과 용인시의 용인경전철사업에서 재정낭비 증거를 확보하고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실무 공무원을 업무상 배임 등의 혐의로 검찰에 수사를 요청했다.
또 한국농어촌공사의 새만금 제2공구 방조제 사업과 관련해 끝막이 보강공사의 공사비를 부당하게 부풀려 지급한 혐의로 농어촌공사 직원 4명을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이와 함께 오투리조트 사업과 관련해 사업 실패로 3360억원의 부채에 허덕이는 태백관광개발공사에 대해 파산을 검토할 것을 제안했다.
◇공직 30년 뒤 시작 변호사 생활, 공익활동에 올인
6년이라는 다소 짧은 기간이지만 그는 변호사 생활을 촘촘하고 속도감 있게 보냈다. 변호사로서의 사건 수임이나 로펌 경영 보다는 대부분 공익 활동에 초점을 맞춰 활동했다.
그런 만큼 박 변호사는 변호사 업계의 현실을 폭넓게 꿰뚫고 있었고 여러 현안을 묻는 질문에도 거침이 없었다.
이른바 '먹고 사는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방안으로 박 변호사는 새로운 업무영역 개척에 방점을 뒀다. 대부분의 공약에 이런 신념이 녹아 있다. 그는 특히 국선전담변호사 제도와 법률구조 사업 등 사법부와 정부에서 운영하고 있는 제도를 변협이 주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 우리 법률시장은 상당히 왜곡돼 있습니다. 우리가 속칭 팔아야 할 상품을 다른 사람이 팔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법률구조공단의 법률구제기능과 정부 소송을 공단이 독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법원에서 국선변호인 시장을 차지하고 있는 것도 문제입니다. 우리 시장을 정부나 법원이 점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밥도 못 찾아먹고 빼앗긴 것입니다."
특히 국선변호인 제도에 대해서는 실제 국선변호인들이 하소연한 여러 문제를 지적했다. 법원이 제도를 주도하고 있는 만큼 판사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데다가 이른바 진상 피고인 사건만 배당받는 등 업무 스트레스가 극심하다고 지적했다.
"국선변호사들에게 배당된 사건의 상당 수가 소위 '진상 피고인' 사건입니다. 얼마 전에 만난 어떤 국선 전담 변호사는 '조금만 더 하다가는 암에 걸릴 것 같다'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피고인들이 법리에 맞지도 않는 요구조건을 내걸고 어거지와 떼를 쓰는 것은 물론이고 국선 전담 변호사가 이에 응하지 않으면 재판부에 곧바로 진정을 해버린다는 것입니다. 변협이 운영하면 이런 일이 있겠습니까?"
박 변호사는 이어 "변협이 국선변호인 인력 풀을 운용하면 변호사별로 능력을 파악할 수 있는 만큼 전문성이나 국민의 변호권 보장 차원에서도 바람직하다"며 "적어도 추천권과 관리권은 변협이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정부 법무담당관이나 국회 입법보좌관, 기업체의 준법지원인 등의 도입과 정착도 임기 내에 실현하겠다고 약속했다.
◇기호 3번 박영수 후보의 공보물 사진(사진제공=박영수 후보 캠프)
◇변호사 영역확대는 법치주의와 직결
박 변호사는 변호사의 영역확대는 국가의 법치주의 확립과도 직결된다고 설명했다. 여러 분야에서 법률전문가인 변호사들이 활동하게 되면 주먹구구식이던 행정관행 등이 체계가 잡히고 국민들 역시 인권적인 면은 물론 고품질의 법률서비스를 받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사직역들과의 직역 다툼 문제에 대해서도 그는 단호했다. 박 변호사는 "궁극적으로는 소송대리권의 문제로 이 권한을 이 분야 저 분야 전문가들에게 주려면 차라리 변호사를 뽑지 말아야 한다. 상당히 무리한 주장"이라고 강하게 성토했다.
그는 이어 "로스쿨 제도를 만든 취지도 유사직역을 통합해서 변호사로 일원화된 법률서비스를 하자는 것"이었다며 "법무사나 변리사가 들으면 속상할지 모르나 장기적으로는 그렇게 가야 한다. 다만, 기존 법률시장에 혼란이 올 수 있으므로 점진적으로 개선할 문제지만, 그들이 소송대리권을 달라는 것은 받아들일 수가 없다"고 명확히 선을 그었다.
박 변호사는 특히 "(타 직역의) 국회를 통한 입법로비가 굉장히 위험한 수준까지 올랐다"며 "기필코 막아야 한다. 설득으로 안 된다면 몸으로 막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실제로 변호사의 업무인 소송대리를 잠탈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형사고발 등 과감하게 대처해야 한다"며 "잠정적으로라도 변협에 입법감시를 할 수 있는 실무부서를 만들어 대처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변호사들이 너무 밥그릇 챙기려고 한다는 지적이 있지만 이는 잘못된 사고"라며 "타 직역들로부터의 직역을 수호하는 것이나 국선변호인 제도 등 정부나 법원에서 운용 중인 제도를 변협에서 운용하는 것은 결국 주인이 자기 자리를 찾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직역·영역 수호..주인이 제자리 찾는 것
박 변호사가 강조한 변호사 영역의 확대는 역대 회장들도 공약으로 내세워 임기 내에 시도했던 사항들이다. 그러나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박 변호사는 "그것이 내가 변협회장 선거에 나선 이유"라며 이렇게 강조했다.
"제가 공직생활 30년 하면서 청와대에도 있었고 많은 네트워크를 갖고 있습니다. 국회는 물론이고, 경제계도 그렇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한 번도 빚을 진 적이 없습니다. 당당하게 요구할 것입니다. 변협회장으로서 법조의 발전을 위해서 당신네들이 역할을 해달라고 요구하면 쉽게 거절하지 못할 것입니다."
다시 말해 '빚'을 진 것이 없기 때문에 변호사들을 위한 대외적 활동에 제한이 없다는 것이다. 원하는 만큼 충분히 얻어야 할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자신했다.
박 변호사는 또 변협에 대한 전면적인 개혁도 예고했다.
"변협 회장이 되면 조직을 어떻게 만들겠다는 구상이 돼 있습니다. 기구를 어떻게 만들지, 시스템 구상을 이미 마쳐놓은 상태입니다. 저는 공직에서 기획업무를 많이 담당한 만큼 개혁능력이 있습니다."
실제로 그는 법무부 재직시 기획담당관을 역임했고 대검 21세기 기획단에서도 일했다. 현재의 검찰 정보통신 기반을 그가 만들어 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업경영 혁신기법으로 검찰개혁의 단초가 된 '6시그마' 도입 때도 상당한 역할을 했다.
박 변호사는 변호사 배출 숫자 감축이나 사법시험 존치 여부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운 입장을 나타냈다. 두 사안 모두 국민적 합의가 필요한 만큼 전략적으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박 변호사는 "목표점은 가져야지만 구체적으로 수치까지 제시하는 것은 이른바 공약(空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수치 정한 사시·로스쿨 정책 공약은 '空約'
이런 관점에서 그는 구체적인 수치를 정해놓고 사법시험 존치나 로스쿨제도 개혁을 공약으로 내세운 다른 후보들의 진정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박 변호사는 "로스쿨 법안이 통과되었던 2007년에 하창우 후보는 서울회 회장이었고 소순무 후보는 변협 부협회장이었다"며 "본인들이 회무의 책임자로 있을 당시 사법시험 폐지법안이 통과되게 놔두었다가 이제 와서 반드시 사시존치가 되도록 하겠다고 주장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쓴소리를 했다.
그는 변협 회장에 당선되면 사익을 추구하지 않고 회무에만 전념하겠다고 약속했다.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얻은 '국민세금지킴이'라는 별명만큼 자타가 공인하는 청렴한 회장이 되겠다는 각오다.
박 변호사는 고검장 출신인 그가 변협회장 선거에 도전한 것을 두고도 여러 오해와 소문이 있다면서 "변협을 개혁하고, 법조계 중심에 변호사를 세우는 것. 그것만이 저의 목표"라며 "변호사들의 든든한 맏형이 되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