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옥 후보자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담당..靑 '고의누락' 논란

서기호 의원 "진실 알고도 권력에 굴복..대법관 자질 없어"

입력 : 2015-02-03 오후 1:59:48
[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 대법관 후보자로 제청된 박상옥 한국형사정책연구원장이 '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담당검사였던 것으로 드러나면서 파문이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
 
3일 정의당 서기호 의원에 따르면, 박 후보자는 사건 수사팀 담당검사로 활동했지만 대통령이 국회에 보낸 대법관 임명동의안의 임명동의 요청사유와 박 후보자의 주요 경력에는 이같은 내용이 모두 빠져 있어 일부러 누락시킨 것 아니냐는 의혹마저 일고 있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서울대학교 3학년이던 박종철씨가 1987년 1월 14일 치안본부 대공수사관들에 의해 영장 없이 불법으로 강제 연행된 후 경찰의 물고문 등으로 사망한 사건이다.
 
당시 경찰은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면서 박씨가 자기압박에 의해 충격사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폭로로 진상이 밝혀졌으며, 87년 6월 민주화운동의 출발점이 되었던 사건이다.
 
◇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 수사를 맡았던 서울지검의 신창언 부장검사(오른쪽) 안상수검사(가운데) 박상옥검사(왼쪽)가 검찰청사내에서 수사내용을 검토하고 있다.(출처 : 동아일보 1994.11.18.자/촬영일:1987.3.1.)
 
당시 검찰은 이 사건에 대한 수사에 착수, 1987년 2월27일 고문경찰관으로부터 "범인이 3명 더 있다"는 자백을 받았으나 2명만 기소하는 선에서 사건을 매듭지으려 했다.
 
그러나 같은 해 5월18일 사제단이 고문 경찰관이 3명 더 있다는 사실을 폭로하고 여론이 들끓자 검찰은 공범으로 지목된 경찰관 3명을 추가로 구속기소했다.
 
검찰은 또 당시 강민창 치안본부장에 대해 "범인 축소 조작에 가담한 혐의가 전혀 없다"며 무혐의 처분했으나 1987년 민주화항쟁 이후인 1988년 1월15일 강 본부장을 직권남용 및 직무유기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했다.
 
이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2009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관계기관대책회의 은폐·조작 의혹'에 대한 결정문을 통해 "검찰은 사건의 진상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직무를 유기하여 수사를 제대로 진행하지 못했다"며 "국민에게 은폐사실이 폭로된 이후에야 추가 공범을 포함 치안본부 관계자 등 은폐에 가담한 책임자를 최소한만 기소하여 결과적으로 관계기관대책회의의 부당한 개입을 방조하고 은폐한 잘못이 있다"고 발표했다.
 
또 "검찰이 외압에 굴복해 헌법과 법률로 부여된 수사권을 적절하게 행사하지 못한 점에 대하여 유족에게 사과할 필요가 있다"며 "검찰이 헌법에 독립성을 보장받고 있었음에도 권력층의 압력에 굴복하여 진실 왜곡을 바로 잡지 못한 점에 대하여 사과할 필요가 있다"고 질책했다.
 
서 의원은 "대법원은 어떠한 권력 아래에도 소속되지 않으면서 독립성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그러나 박 후보자는 당시 담당검사로서 사건의 진실을 알고도 권력층의 압력에 굴복해 헌법이 보장하는 수사의 독립성을 지키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현재까지도 반성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대법관으로서 자질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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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