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조원 금융그룹'의 배신, '2조원 대부업체'의 신의

입력 : 2015-04-03 오후 2:48:24
◇우리카드와 한국배구연맹(KOVO) 관계자들이 지난 2013년 4월 드림식스 배구단 양도 양수 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사진제공=KOVO)
 
[뉴스토마토 이준혁기자] 자산규모가 무려 400조원이 넘는 금융그룹과 대부업이 주력이고 자산은 2조원 전후인 금융그룹. 일반적인 시각에서 보면 신뢰도는 아무래도 전자가 더 높다. 우선 자산규모에서 큰 차이가 나는 데다 국내에서 대부업체의 이미지는 아직까지 부정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배구계의 시각은 이와 조금 다르다. 전자는 배구계 진입 때부터 잡음을 내더니 급기야 무리수를 두며 철수, 배구계를 경악하게 했다. 후자는 대부업체라는 꼬리표 때문에 초반 어려움을 겪었지만 끝내 배구계의 염원이던 '남자7구단'을 세웠다. 우리카드와 러시앤캐시의 이야기다.
 
먼저 우리카드의 사례를 보면 스포츠 구단 창립시 모기업의 크기와 신뢰도가 반드시 비례하는 것은 아니라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한국배구연맹(KOVO)은 지난달 31일 열린 이사회 및 임시총회 때 우리카드로부터 남자 프로배구단을 더 이상 운영하지 않을 것이란 입장을 받았다. 오는 6일 KOVO는 우리카드를 회원사에서 임의탈퇴 처리한다. 창단 후 불과 2년 만에 벌어진 일이다.
  
◇드림식스 배구단의 주장 송병일이 구단 인수를 결정한 우리카드에 보낸 감사편지. (사진제공=송병일선수)
 
시간을 2013년 3월7일로 되돌려보자. 우리카드가 드림식스를 인수하며 배구계에 진입했던 시기다. 그때만 해도 우리카드를 향한 배구계의 기대는 높았다. 당시 드림식스는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겪다 KOVO의 위탁 관리 체제 아래 있던 상황이었다.
 
드림식스의 전신은 우리캐피탈이다. 2009년 배구계에 등장한 우리캐피탈은 불과 두 시즌을 보낸 후 모기업 매각에 따른 여파로 배구단 운영을 포기했다. 위탁 관리를 맡은 KOVO는 우리캐피탈의 이름을 '드림식스'로 변경하고 2시즌 간 팀을 운영했다. 이중 두 번째 시즌에는 아프로서비스그룹('러시앤캐시'가 속한 그룹)이 네이밍스폰서로 참가하며 17억원을 후원했다.
 
그러다 2013~2014시즌을 앞두고 KOVO는 드림식스의 매각을 꾀했다. 당시 인수후보는 지난 한 해 동안 드림식스의 운영 자금을 후원하던 러시앤캐시와 우리금융지주 카드회사 우리카드였다.
 
이중 우리카드는 인수 경쟁에 뒤늦게 뛰어들었다. 또한 인수를 위해 제시한 금액도 상대보다 5억원이나 적었다. 그렇지만 KOVO는 우리카드를 택했다. 대형 금융지주사 산하 기업이란 점이 작용했다. 다섯 평가항목의 합에서 근소하게 앞섰고 이사들도 다수가 우리카드의 손을 들어줬다.
 
◇러시앤캐시(현 OK저축은행) 선수단은 2013년 9월7~8일(1박2일간) 강원도 평창군 알펜시아리조트에서 개최된 아프로파이낸셜그룹 전체 워크숍 및 사내 배구단 창단식에 참석해 향후 비전과 각오를 전했다. (왼쪽부터) 김세진 러시앤캐시 베스피드 프로배구단 감독, 최윤 아프로파이낸셜그룹 회장, 곽노식 당시 러시앤캐시 베스피드 프로배구단 단장. (사진=이준혁 기자)
 
하지만 인수확정 3개월 만에 문제가 터졌다. 구단 인수에 나섰던 이팔성 회장이 물러나고 이순우 회장이 새로 취임하자, 우리카드는 구단인수 재고에 나섰다 다시 번복했다. 
 
이후에도 우리카드는 간접적 형태로 구단을 운영할 의사가 없음을 수시로 드러냈다. 당연히 배구단 지원도 적었다. 2014~2015시즌 구단이 3승33패란 최악의 성적으로 꼴찌가 된 것도 어찌보면 당연했다. 
 
끝내 우리카드 이사회에서 구단 운영포기 뜻을 표명하면서 우리카드와 프로배구의 754일 간 불편한 동거는 막을 내렸다.
 
게다가 운영포기 과정에서도 석연치 않은 흔적을 남겨 배구계에 충격을 줬다. 우리카드가 지난해 7월 국가대표 센터 신영석을 현대캐피탈에 현금 트레이드했고, 당시 받은 돈으로 지난 시즌을 꾸린 사실이 최근 드러난 것이다.
 
두 팀 거래에 법적인 문제는 없다. 팀간 트레이드는 공개의무가 없고, 신영식은 군 복무중인 선수라 KOVO 선수 등록 의무가 없다. 문제는 이를 숨기고 구단 매각을 추진했다는 사실이다. 신영식의 존재 유무는 구단가치 산정의 중요 변수인데, 이를 9개월 동안 감췄다. 
 
◇2014~2015시즌 프로배구 V리그 남자 우승을 확정한 OK저축은행 선수단이 트로피를 들며 환호하고 있다. ⓒNews1
 
반면 러시앤캐시는 드림식스 인수 실패라는 쓴 맛을 본 후에도 포기하지 않고 끝내 배구계의 염원이던 '남자7구단'을 세웠다.
 
러시앤캐시는 당시 최고 기대주 '경기대 3인방'(세터 이민규, 레프트 송명근·송희채)을 영입했고 감독에는 '월드스타' 김세진을 선임하는 등 공격적으로 투자에 나섰다. 뿐만 아니라 구단의 지역 정착을 위한 노력도 꾸준히 벌였다.
 
창단 두 번째 시즌에 러시앤캐시는 계열사 OK저축은행으로 이름을 변경하고 고공행진을 시작했다. 결국 정규리그를 2위로 마무리했고 챔피언 결정전에선 삼성화재를 상대로 3연승해 정상에 올랐다.
 
이처럼 우리카드와 러시앤캐시의 행보는 드림식스 인수자 결정 이후 극명하게 갈렸다. 인수한 팀을 꼴찌로 추락시키고 빠져나간 우리카드와, 절치부심 끝에 배구계에 안착하며 '신흥명가'의 자리까지 오른 러시앤캐시(OK저축은행)의 사례는 구단 인수에서 부와 명성 외에 진정성 여부 또한 중요하다는 시사점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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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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