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임금피크제 도입 방침에 야당 "불이익으로 변경은 불법"

특수성 판례 적용 안돼…집단소송 발생 가능성도

입력 : 2015-06-17 오후 3:40:31
정부가 17일 예정됐던 ‘취업규칙 변경 가이드라인’ 발표를 미뤘다. 하지만 ‘노조의 동의 없는 임금피크제 도입’ 가능성을 열어놔 위법 논란의 불씨를 남겨뒀다.
 
이날 고용노동부 등 5개 관계부처는 ‘제1차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안’을 통해 “정년 60세 및 임금체계 개편의 안정적 정착을 지원하기 위해 법령과 판례 법리를 토대로 취업규칙 변경 시 근로자의 불이익 및 사회통념상 합리성 여부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을 정리해 제시하겠다”고 밝혔다. 취업규칙 변경을 위한 가이드라인은 이달 중 발표될 예정이다.
 
쟁점은 임금피크제 도입이 근로자의 불이익에 해당하느냐다. 현행 근로기준법 제94조는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는 경우에는 그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반면 정부는 임금피크제를 불이익으로 보기 어렵고, 불이익에 해당하더라도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인정된다면 노조의 동의 없는 취업규칙 변경도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정부 주장의 근거는 2004년 7월 22일 대법원 판례(2002다57362)다. 2000년 6월 농업진흥공사, 각 농지개량조합, 농지개량조합연합회 등 3개 기관은 재정악화 등을 해소하기 위한 구조조정 과정에서 각 기관의 정년을 통일시켜 일괄 단축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근로자 집단의 동의를 대신할 만한 사회통념상 합리성’을 근거로 개정된 취업규칙을 인정했다.
 
하지만 임금피크제는 근로자가 입게 될 ‘불이익’에 해당하고, ‘합리성’의 기준을 정부가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위법에 해당한다는 것이 야권의 주장이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한정애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은 “그것은 명백한 불법행위다. 가령 개별 사업체에서 정년을 3년 연장하면서 임금피크제를 도입한다면 임금피크제는 ‘근로자에 유리한 취업규칙의 조건’이기 때문에 불이익이라고 볼 수 없지만, 이미 내년 1월 1일부터는 정년 60세가 보장된다”며 “보장된 근로자의 권리를 ‘근로자에 유리한 조건’으로 전제해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는 건 불리하게 취업규칙을 변경하는 것이 된다”고 지적했다.
 
결국 사업체가 노조의 동의 없이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려면 국회가 근로기준법을 개정해 임금피크제를 예외 조항으로 넣거나, ‘불이익’에 관한 사항을 시행령으로 위임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 판례를 임금피크제에 그대로 대입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2004년 판례에서 재판부는 ▲구조조정에 따른 인사규정 변경이 요망됐던 점 ▲3개 기관이 불이익을 받게 된 근로자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노력했던 점 ▲대다수의 농지개량조합 노조가 변경된 취업규칙에 동의하거나, 이를 전제로 임금단체협상을 체결했던 점 등을 참작했다.
 
반면 임금피크제는 적용 연령과 임금 삭감폭, 불이익에 따른 보상책이 사업체별로 상이하고, 제도 도입에 노동계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특수성’이 반영된 판례를 일률적으로 적용하기에 무리가 있다는 시각이 많다.
 
야당의 한 의원은 “지금과 같은 상황에선 노동부도 가이드라인 제시를 강행하기 어려울뿐더러, 만약 가이드라인이 나와 사업체가 일방적으로 취업규칙을 변경한다면 집단 소송 사태가 벌어질 것”이라며 “법이 바뀌지 않는 한 소송이 진행돼도 사업체가 승소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영 기자 jiyeong8506@etomato.com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정연만 환경부 차관, 윤성규 환경부 장관,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 고영선 고용노동부 차관, 정홍상 기상청 차장이 의원들의 질의를 듣고 있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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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