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서 한국무역보험공사의 대기업 퍼주기 논란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그동안 대기업에 대한 보험 인수 비중과 보험요율, 지급된 보험금 액수 등이 도마 위에 올랐던 만큼 이번에야 말로 이를 바로 짚고 넘어가겠다는 포석이다.
현행법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장관은 매년 무역보험계약 체결의 한도를 상품별 ‘총액’으로 정하고 국무회의 심의와 국회 의결을 거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무역보험공사가 설립된 1992년 이후의 누적된 통계를 살펴보면 대기업에 대한 보험 인수 비중이 87%나 되어 중소기업에 대한 보험 인수 비중이 상대적으로 매우 낮은 실정이다.
또한 보험요율도 대기업 0.26%, 중소기업은 0.34%로 대기업을 우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그동안 대기업에게 지급한 보험금은 4조원 가량인 반면, 중소기업은 2조 6000억원으로 1조 4000억원의 차이가 났다.
이로 인해 대기업으로부터 받은 보험료 대비 지급한 보험금의 비중을 나타내는 ‘대기업 보험 손해율’은 109%로, 무역보험공사가 대기업 손해를 보전해줬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대기업에게서 돈을 벌어들인 것이 아니라 국민 혈세를 대기업에게 퍼줬다는 이야기다.
이와 관련해 정의당 김제남 의원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중소기업 무역보험 인수 비중이 낮은 점을 지적한 바 있다. 당시 김 의원은 “그동안 돈이 남아도는 대기업에게 국민 혈세를 퍼부어 온 것이 분명한 만큼, 대기업에 대한 보험료율을 단계적으로 인상해야 한다”며 “장기적으로는 ‘중소기업 무역보험공사’로 거듭나는 것이 무역보험공사가 나아가야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김 의원의 이 같은 지적에 무역보험공사는 “‘중소기업 무역보험공사’로 거듭나기 위한 혁신안을 마련하여 청와대 및 국회 상임위원회에 보고할 것”이라는 시정요구를 담은 ‘국정감사 결과보고서’를 채택한 바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근본적인 변화가 없는 상황이다.
또한 김 의원은 한국무역보험공사가 설립된 1992년 이후 총 3조 2784억원의 손실을 입은 것에 대해 지적하기도 했다. 연평균 1700억원의 국민 혈세가 수출 보조금이라는 명목으로 손실됐다는 것이다.
특히 굴지의 대기업 관련 손실이 두드러진 것으로 나타났다. 대표적으로 2009년 삼성전자가 자사와 관련된 제품을 수입해 올 때 제품 수입자가 파산하여 대금을 받지 못하자 무역보험공사는 1408억원을 갚아줬다. 그동안 일부 회수한 보험금을 감안하더라도 삼성전자로 인해 최소 2315억원이 손실로 남았다.
이에 김 의원은 이 같은 대기업 퍼주기 논란에 맞서 중소기업에 대한 무역보험의 규모를 확대하려는 내용의 ‘무역보험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김 의원은 이번 개정안을 통해 매년 무역보험계약 체결 한도를 정할 경우, 중소기업과 대기업에 대한 보험한도를 구분해 중소기업의 무역보험 확대에 힘을 실어줬다.
이번 김 의원의 개정안은 중소기업 보험인수 금액이나 비중의 하한을 두는 방식 등 직접적인 규제가 아니라 간접적인 방식으로 중소기업 보험인수 확대를 도모한 점이 핵심이다.
중소기업에 대한 무역보험 한도를 명시하게 되면 국무회의 심의 및 국회 의결 과정에서 중소기업 보험인수 한도가 공식적으로 논의되게 되고, 이에 따라 자연스럽고 유연하게 중소기업 보험규모가 증가할 것이라는 것이 김 의원의 생각이다.
김 의원은 “무역보험공사가 대기업 보험을 87%나 인수하고 있지만 대기업 보험손해율이 109%에 달한다”며 “이번 개정안을 통해 무역보험공사가 국민혈세를 대기업에 퍼주는 ‘대기업 무역보험공사’에서 ‘중소기업 무역보험공사’로 거듭나는 계기가 마련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
정의당 김제남 의원은 최근 한국무역보험공사의 대기업 퍼주기 논란에 맞서 중소기업에 대한 무역보험의 규모를 확대하려는 내용의 ‘무역보험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사진은 지난해 국회에서 열린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한국무역보험공사 등 관련 기관장들이 출석해 의원들 질의에 답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