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지금의 전도연이 있는 이유

입력 : 2015-08-12 오후 6:34:40
[뉴스토마토 함상범기자] 아마 국내 여배우 중 '제2의'라는 수식어로 가장 자주 활용되는 배우는 전도연일테다. 젊고 연기 잘하는 여배우가 나타나면 으레 사람들은 '제2의 전도연'이라는 수식어를 붙인다. 전도연이 깊은 감정선으로 연기하는 여배우의 대명사로 통하는 까닭이다. 
 
황정민과 함께 깊이 있는 사랑을 표현해낸 <너는 내 운명>, 전도연을 '칸의 여왕'으로 이끈 <밀양>, 계급사회의 단면을 노골적으로 보여준 <하녀>, 뛰어난 감정 절제를 보여준 <집으로 가는 길> 등 출연작마다 극의 전반적 분위기를 좌지우지했다. 그 덕분에 뻔한 소재를 다루는 경우라도 결코 단순하지 않은 이야기로 완성되고는 했다. 
 
그런 그가 다시 한 번 감정을 잡고 관객들과 만난다. 국내에서는 첫 선을 보이는 무협액션영화 장르인 <협녀:칼의 기억>(<협녀>)를 통해서다. 고려 말을 배경으로 하는 <협녀>는 천인이었다가 왕의 자리를 탐낸 남자와 그런 남자에게 배신당한 뒤 18년 동안 복수를 위해 칼을 간 여인, 그리고 그 복수를 위해 만들어진 한 여인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전도연.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전도연은 남자의 배신으로 깊은 상처를 받은 자신을 대신해 복수를 해줄 여인을 키우는 검술 고수 월소로 등장한다. 눈이 먼 맹인 검객이다. 섣불리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화려한 액션도 선보인다. 영화 전반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리지만, 전도연의 연기는 극찬일색이다.
 
그런데도 지난 10일 서울 삼청동 한 커피숍에서 만난 전도연은 자신의 연기력에 대해 못마땅해 했다. 한계와 좌절을 느꼈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액션이나 맹인 연기를 촬영할 때 생각했던 것보다는 극복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었다. 의도하든 아니든 내가 선택한 영화인데, 내 눈에 부족한 부분이 극명하게 보였다. 어쩔 수 없는 좌절과 한계를 느꼈다."
 
연기적인 측면에서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여배우 전도연은 계속해서 자신을 채찍질 하고 있었다. 여전히 자신을 갈고 닦는 전도연의 속마음을 엿봤다.
 
전도연.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맹인 연기, 눈을 깜박이면 안 되는데 깜박였다"
 
맹인이라는 설정에다 이제껏 해보지 않았던 액션을 하며 18년 동안 한을 품은 여인을 그려내야 했다. <협녀>의 월소에게 주어진 과제는 적지 않았다. 전도연은 산더미 같은 숙제를 훌륭하게 표현해냈다. 대다수의 관계자들은 전도연의 연기만큼은 손색없었다고 치켜세웠다.
 
그럼에도 전도연은 무엇이 그렇게 못마땅한 것일까. 첫 번째는 액션이었다.
 
"월소가 초절정 고수이기도 하고 액션을 하는 게 춤을 추는 듯 유연해야 하는데 그 모습이 고전무용하고 닮아있다. 그래서 고전무용도 3개월 동안 배웠다. 내가 운동신경도 뛰어나다고 생각했고, 연습도 많이 했다고 생각했는데, 그 유연함이 하루 아침에 생기는 건 아니었다. 현장에서 확 와닿더라. 월소가 액션을 제대로 보여주는 신은 50:1 신이었다. 시사회 때 영화를 보는데 만족스럽지 않았다. 더 연습을 했어야 했는데, 아쉽다."
 
두 번째는 맹인 연기였다. 맹인은 눈에 초점이 없기 때문에 눈을 깜박이지 않는다고 한다. 전도연 역시 무의식적으로라도 눈을 깜박이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맹인 연기는 제가 어딘가 보고 있다는 느낌을 주면 안 된다. 반사신경적인 거라서 제가 깜박이는 걸 인지하지 못했다. 모니터로 볼 때는 영상미도 좋고, 눈을 깜박이는 걸 느끼지 못했는데, 큰 스크린으로 보니까 다 보이더라. 눈을 깜박이는데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나한테는 슬로우 모션처럼 크게 '깜박' 하는 것처럼 보이더라."
 
전도연이 말한 대목은 어쩌면 타협하고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다. 굳이 꺼내지 않아도 되는 말일 수도 있다. 그가 직접 말을 하지 않으면 모를 수도 있었고, 첫 액션이었다는 점에서 충분히 감안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전도연은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조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태도를 갖고 있기에 지금의 전도연이 있는 건 아닐까.
 
전도연.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드라마에서는 열연하고 싶지 않아"
 
'칸의 여왕'이고 국내 최고의 연기자라는 평가를 받지만 최근 전도연의 흥행성적은 썩 좋지 않다. <너는 내 운명> 이후 흥행작이 없다. <하녀>, <멋진 하루>, <집으로 가는 길> 등은 작품성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상업성에서는 빛을 보진 못했다. 누적 관객수 400만 이상을 동원한 작품이 없다.
 
이러한 결과를 빚은 것은 언급한 영화들이 대부분 무겁고 깊은 감정선으로 진행되는 영화라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또 천만 관객을 노리는 대작에 참여하지 않은 점도 영향을 미쳤으리라. 전도연은 어떤 기준으로 작품을 선택하는지 궁금했다.
 
"이야기"라고 운을 뗀 전도연은 "내가 선택한 작품의 공통점은 내 마음 속에 이야기가 남았다는 거다. 일부러 무거운 역할을 하려고 작품을 선택하지 않았다. 하다보니 이야기가 마음에 남았고, 하다보니 짙은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 역할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가 선택한 이야기의 대부분은 따지자면 가벼운 쪽보다는 무거운 쪽에 속한다. 심지어 최근의 <무뢰한>도 그랬다. 90억 가까이 투입된 <협녀>도 마찬가지다. 왜 국내 영화 감독들은 이러한 역할을 전도연에게 먼저 건넬까. 
 
이 같은 질문에 전도연은 "그런 역할 나만 잘하는 것도 아니"라면서 손사래를 쳤다. 그는 “다들 '전도연 아니면 안돼'라고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누구나 다 잘 할 수 있다. 왜들 그러는지 몰라"라면서 웃음을 지었다. 그는 이어 "사실 <접속>을 할 때 했던 말이 '전도연은 안돼'였다. 하지만 그 때 전도연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전도연도 있는 거다. 충분히 나만큼 뛰어난 연기를 펼칠 이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에게 전달되는 드라마 시나리오도 비슷한 맥락의 무거운 이야기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힘들고, 아프고, 고통받고, 눈물을 흘리는 역할이란다. 그래서 드라마를 거절하고 있다고 했다.
 
"드라마로 데뷔했고 드라마의 성향을 모르는 것도 아니다. 이야기만 끌리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하지만 무겁고 삶의 고통이 느껴지는 역할은 하고 싶지 않다. 드라마에서까지 열연하고 싶지는 않다. 말랑말랑한 사랑을 해보고 싶다. SBS <프라하의 연인> 때처럼."
 
<협녀> 이후 전도연은 올 겨울에 영화 <남과 여>로 또 한 번 관객과 만날 계획이다. <멋진 하루>에서 한 차례 호흡을 맞춘 이윤기 감독의 작품이고, 공유가 상대역으로 등장한다. 이 작품에서는 활짝 웃는 전도연을 볼 수 있을까. 쉽게 타협하지 않는 전도연이기에 어떤 얼굴이든 관객을 실망시키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함상범 기자 sbrai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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