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1600억원대 횡령·배임·탈세 혐의로 기소된 이재현(54) CJ그룹 회장에 대한 원심을 파기 환송했다.
가장 쟁점이 됐던 일본 도쿄 법인의 대출금 채무 전액을 배임액으로 볼 수 없다는 게 대법원 판단이다. 이 부분에 관한한 사실상 무죄 취지로 판단한 것이다. 이에 따라 파기환송심에서 이 회장에 대해 집행유예 판결이 선고될 가능성이 짙어졌다.
대법원 2부(주심 김창석 대법관)는 10일 특경가법상 횡령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이 회장에 대한 상고심에서 "원심에서 인정된 유죄부분을 파기하고 심리를 다시하라"며 징역 3년에 벌금 252억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되돌려 보냈다.
재판부가 유죄 부분을 다시 심리하라고 판단한 부분은 이 회장이 2007년 CJ Japan건물을 담보로 일본 도쿄에 있는 신한은행을 통해 사실상 이 회장 소유인 Pan Japan가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연대보증을 서게 하는 과정에서 검찰이 산정한 배임액 부분이다.
재판부는 "CJ Japan㈜가 Pan Japan의 대출에 연대보증을 할 당시, 주채무자인 Pan Japan가 이미 변제능력을 상실한 상태에 있었다거나 사실상 변제능력을 상실한 것과 같다고 평가될 정도의 상태에 있었다면, 연대보증으로 인해 Pan Japan가 취득한 이득액은 대출금채무 전액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그러나 연대보증 당시 Pan Japan가 그러한 상태에 있었다고 볼 수 없고, 상당한 정도의 대출금채무를 자력으로 임의 변제할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고 보이므로, 대출금채무 전액을 Pan Japan의 이득액으로 단정할 수는 없고, Pan Japan가 취득한 이득액을 산정할 수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또 "연대보증 당시를 기준으로 Pan Japan가 매입한 빌딩의 실제 가치, 이자율이나 원리금 분할상환약정 등 대출조건, 매입한 빌딩에서 발생하는 임대료 수입 등에 비추어 대출구조상 원리금을 정상적으로 상환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판단된다"며 "대출금채무 전액을 Pan Japan의 이득액으로 인정하여 특경가법을 적용한 원심의 판단은 특경법의 이득액 산정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검찰은 기소 당시 이 회장이 신한은행 도쿄 지점에서 Pan Japan를 위해 대출 받으면서 CJ Japan 소유 건물을 담보로 제공하고 연대보증을 서게 함으로써 309억여원의 이득을 얻고 그만큼의 손해를 끼쳤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CJ Japan가 연대보증 당시 Pan Japan에게 대출금 채무를 자력으로 갚을 수 있었고, 그렇다면 대출금 전부를 이 회장이 얻은 이득액 내지 회사가 받은 손해액으로 산정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재판부는 또 "이 회장에게 적용된 특경가법 3조를 적용할 때는 취득한 이득액을 엄격하고 신중하게 산정해야 하고 죄형균형 원칙과 책임주의 원칙에 배되어서는 안 된다"며 "배임으로 취득한 이득액을 구체적으로 산정할 수 없는 경우에는, 그 가액을 기준으로 가중 처벌하는 특경가법 3조를 적용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 회장에 대한 상고심에서 원심과 달리 판단한 내용은 일본 부동산 매입 관련 배임 부분에 대해 다시 판단하라는 것이지 형법상 배임혐의를 부정하는 취지는 아니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이날 나머지 혐의 부분에 대해서는 이 회장 측 상고를 모두 기각했다.
가장 중요한 양형은 파기환송심에서 정해진다. 대법원이 특경가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봤기 때문에 검찰도 이에 따라 형법의 '업무상 배임혐의'를 적용할 가능성이 크다. 업무상 배임혐의는 법정형이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이다.
이 회장은 이미 항소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형법을 적용하게 되면 형은 더 낮아질 가능성이 있다. 형법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금고의 형을 선고할 경우 범행 후의 정황 등 양형조건에 따라 집행유예를 선고할 수 있다. 이 회장은 8번이나 구속집행정지가 법원으로부터 받아들여질 정도로 건강상황이 좋지 않다. 조세포탈이나 횡령·배임 등으로 회사에 끼친 손해도 상당부분 갚은 상황이다. 파기환송심에서도 그만큼 집행유예를 받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앞서 이 회장은 1657억원의 횡령과 배임, 조세포탈 혐의로 지난 2013년 7월 구속 기소돼 1심에서 징역 4년과 벌금 260억원을 선고받았다.
이후 항소심에서는 직원들과 공모해 회비·조사연구비 등을 정상 지급한 것처럼 전표를 조작하고 회계장부를 조작해 115억8000만원을 횡령한 혐의 등이 무죄로 인정돼 징역 3년에 벌금 252억원이 선고됐다.
횡령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항소심 판결이 파기환송된 10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이 회장의 법률대리인인 안정호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가 입장을 밝히고 있다.사진/뉴시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