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수천억원대 분식회계와 특가법상 조세포탈, 횡령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조석래(80) 효성그룹 회장에게 징역 10년을 구형했다. 검찰은 "이번 사건은 재벌그룹인 효성그룹 총수인 조 회장이 황제적인 그룹경영을 하는 과정에서 주요 임직원들과 함께 일으킨 조직적인 범죄"라고 규정했다.
9일 검찰은 서울중앙지법 형사28부(재판장 최창영) 심리로 열린 결심공판에서 조 회장에게 징역 10년에 벌금 3000억원을 구형했다. 70억원대 조세포탈 혐의로 함께 기소된 장남 조현준(47) 효성 사장에게는 징역 5년과 벌금 150억원이 구형됐다.
검찰은 "조 회장과 아들들, 효성 최고위층 임직원과 변호인까지도 직접 발벗고 나서서 증거인멸과 전현직 임직원에 대한 회유와 협박, 진술번복 강요, 대가 지급 등을 약속하며 조직적으로 검찰 수사를 방해했다"며 심각한 사법방해를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검찰 "조 회장, 사법권 위에 있다고 착각"
또 "특히 조 회장은 본인 스스로 국가 사법권 위에 존재한다고 착각하고 있으며, 증거인멸과 범행 후 태도 또한 매우 나쁘다"며 "기업인 부패에 대한 엄정한 책임을 요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비춰 엄한 처벌을 물어야 한다"고 구형 이유를 설명했다.
검찰은 조 사장에 대해서는 "과거 미국 부동산 구입과 관련해 횡령 혐의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특별사면을 받은 사실이 있으면서도 집행유예 기간 중에 이 같은 횡령 범행을 하고 사면 이후에도 계속해서 범행을 저질렀다"며 "횡령 액수가 16억원에 이르고 전혀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증여세 포탈 혐의에 대해서도 부인하고 외려 검찰 수사 과정에서 핵심 참고인에게 현금을 교부한 사실까지 있다"고 덧붙였다.
검찰은 "조 회장은 가짜 기계장치와 해외 페이퍼컴퍼니 뒤에 숨어서 국가존립의 재정적 기반이 되는 납세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조세권을 무력화시켰으며 회사를 사적 소유물로 전락시키면서 시장경제 질서의 근간인 주식회사 제도를 흔들리게 했다"며 "이 사회에 정의가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조 회장 "회사 살려보자고 한 일"
반면, 조 회장의 변호인은 검찰 구형에 앞서 "조 회장은 어떻게든 회사를 살려보자고 했는데 결과적으로 이 같은 불찰이 발생한 사실에 대해 매우 죄송스럽게 생각한다"면서도 혐의를 부인했다.
조 회장의 변호인은 2003년~2012년까지 부실자산을 가공의 기계장치로 대체해 자산을 과다 계상하는 방법으로 1200억원대 세금을 포탈한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당시 부실자산을 처리하기 위해 단순히 기초장부를 허위로 기재한 것일 뿐 거래증빙과 금융거래 조작 등의 행위에 해당하지 않아 '사기 또는 기타 부정한 행위'로 볼 수 없어 혐의 성립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또 실무자 차원에서 진행된 업무라 조 회장은 이를 애당초 인식하지 못했고 보고받은 바도 없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효성 싱가포르 법인을 통해 홍콩에 설립한 페이퍼컴퍼니인 CTI와 LF 명의로 카프로 주식을 차명으로 취득한 후 110억원대 세금을 포탈한 혐의와 이 과정에서 발생한 233억원대 배임 혐의도 부인했다. 또 CTI와 LF가 조 회장의 개인소유가 아니라는 이유다. 그 외 기술료 명목으로 698억원대 회삿돈을 횡령한 혐의 등 혐의 대부분을 부인했다.
조 회장의 변호인은 오히려 "조세미납은 원칙적으로 가산세로 제재하는 게 원칙"이라며 "조세포탈로 형사 처벌하지 않아도 국가세수엔 영향 없다"고 주장했다.
◇"탈세 처벌 안 해도 국가세수 영향 없어"
법정에 출석한 조 회장은 "회사일을 성실히 한 것 밖에 없다"면서 "부디 너그러운 선고를 부탁드린다"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최후진술했다.
조 사장은 "제 불찰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점에 대해 사죄 말씀 드리며 깊이 반성하고 있다"면서도 "증여세 부분은 관련 세금을 모두 납부했으며 증여받은 사실을 숨기려는 점도 없었다는 점을 살펴달라"며 준비해 온 진술문을 읽었다.
이어 "아버님에 대해 선처를 부탁드린다"면서 "부디 남은 인생을 명예롭게 마무리할 수 있도록 법이 허용하는 최대한의 관용을 베풀어달라"고 덧붙였다.
한편, 검찰은 조 회장의 탈세 등을 공모한 혐의(특가법상 조세 등)로 기소된 이상운(63) 효성 총괄부회장에 대해 징역 6년을 구형하고 벌금 2500억원의 선고유예를 구형했다. 벌금 납부 능력 등을 고려한 것이다.
조 회장 등의 범행에 공모한 혐의(특가법상 배임)로 함께 기소된 전 재무담당임원 김모씨(64)에 대해서는 징역 6년이, 조 회장의 범행 증거를 인멸한 혐의로 기소된 전 지원본부장 노모(55) 부사장에게는 징역 3년이 각각 구형됐다.
재판부는 "충실한 심리를 위해 시간이 필요하다"며 조 회장 등에 대한 선고 공판을 내년 1월 8일 오후 2시에 열기로 했다.
◇도 넘은 '회장님 구하기'로 재판 지연
한편, 이날 공판에는 효성그룹측의 도를 넘는 '회장님 구하기'로 재판이 지연되기도 했다. 법정 방청석 32석을 효성그룹 직원들이 상당부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자들이 보도를 위해 방청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재벌 총수에 대한 결심공판이나 선고공판시 과거 자주 이용되던 방법이다. 그러나 사기업이 언론을 통제한다는 비판이 빗발치면서 최근에는 기업들 대부분이 스스로 자제하고 있다.
장내가 몹시 혼잡하자 법정 경위가 효성그룹 직원들에게 자리를 양보할 것을 권했지만 이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보다 못한 검사가 "회장님이 말해줘야지 자리를 비켜줄 것 같다"고 말했지만 조 회장은 발끝만 쳐다본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효성그룹 관계자는 "법정이 작은데다가 변호인들이 워낙 많았다"며 "뒤늦게 온 기자들이나 평소에 오지 않던 기자들도 많아서 생긴 일이다. 고의적인 알박기는 아니다"고 해명했다.
앞서, 조 회장은 지난해 1월 특가법상 조세포탈과 특경법상 횡령·배임, 상법 및 자본시장법 위반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검찰 수사 결과 조 회장의 범죄 액수는 분식회계 5000억여원, 탈세 1500억여원, 횡령 690억여원, 배임 230억여원, 위법 배당 500억여원 등 총 8000억원으로 드러났다.
조 사장은 조 회장으로부터 해외 페이퍼컴퍼니 계좌로 비자금을 물려받으면서 증여세 70억원을 포탈하고 회삿돈 16억여원을 사적으로 사용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9일 오후 6시경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결심공판에 참석한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이 재판을 마치고 법정을 빠져나오고 있다. 사진 / 신지하 기자
최기철·신지하 기자 sinnim1@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