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동안 아내와 별거하면서 딴살림을 차린 남편의 이혼청구를 인정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혼인관계 파탄 책임이 있는 배우자(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기존의 '유책주의' 입장을 고수한 것이다.
대법원 2부(주심 조희대 대법관)는 이모(70)씨가 30여년간 별거 중인 아내 조모(67·여)씨를 상대로 낸 이혼 청구소송의 상고심에서 원고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4일 밝혔다.
종갓집 종손인 이씨는 아내와 1973년 결혼식을 올렸다. 하지만 이씨는 과거 부모의 반대로 헤어진 A(여)씨를 잊지 못했다. 이씨의 부모는 A씨가 불임 여성이라는 이유로 혼인을 허락하지 않았다.
혼인 초부터 잦은 음주와 외박을 일삼고 아내 몰래 A씨를 만나던 이씨는 급기야 1984년경 집을 나갔다. 1994년부터는 A씨와 함께 고향으로 내려가 부부처럼 살기 시작했다. 현재 이씨는 A씨와 20년 이상 동거해오고 있다.
반면, 아내는 이씨와 별거 후에도 보험설계사 일을 하며 홀로 자녀 셋을 키웠다. 이씨로부터 생활비나 학비 등 경제적 지원을 받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면서도 수년간 이씨의 부모를 한 집에서 모셨고 2007년경까지는 종가의 맏며느리로서 시증조부와 시조부모 제사 및 명절 제사를 지냈다.
30여년간 아내와 별거해 오던 이씨는 2010년 7월 이혼소송을 냈다가 취하하고 3년 후인 2013년 9월 이혼소송을 다시 냈다.
1심은 이씨의 혼인관계 파탄의 책임을 인정하면서도 "현재와 같은 파탄 상황을 유지하게 되면 이씨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을 계속 주는 결과를 가져온다"며 이씨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2심의 판단은 달랐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씨 부부는 현재까지 30년 동안 별거해 왔고 이씨는 A씨와 20년 이상 사실혼관계로 지내 혼인관계가 더 이상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라면서도 '혼인관계 파탄의 원인을 제공한 배우자에게는 이혼을 청구할 수 없다'는 기존 판례에 따라 이씨의 이혼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도 "혼인관계 파탄의 주된 책임은 이씨에게 있고 아내가 보복적 감정에서 이혼에 응하지 않는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을 인정할 만한 증명이 없다고 본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다"며 이씨의 상고를 기각했다.
신지하 기자 sinnim1@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