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민간 금융회사의 상품 출시와 수수료 결정 등에 개입해 자율성을 해치고 각종 비용분담도 부당하게 요구해 온 것으로 감사원 감사결과 나타났다.
감사원은 17일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등 금융당국을 대상으로 지난 6~7월 실시한 ‘금융규제 운영 및 개선실태’ 결과 발표자료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우선 감사원이 지난 2009년부터 올해 5월까지 출시된 29개 정책금융상품의 출시 경위 및 실적 등을 확인한 결과 15개 상품에서 문제점이 발견됐다.
금융당국은 정책목표 달성이나 정부정책 홍보를 위해 충분한 수요조사나 관계 기관과의 협의 없이 민간 금융사에게 정책금융상품을 출시토록 했고, 부실한 상품 출시에 따른 부담은 금융사가 떠안았다.
금융위는 지난 2013년 5월 가계 부채를 줄이기 위해 은행권에 ‘채무조정 적격대출’ 상품 출시를 요청했고 16개 은행이 출시했다. 그러나 올해 5월말까지 실적은 37억원에 그쳤다. 시중은행이 자체적으로 운용하고 있는 기존 상품과 유사하면서도 금리는 오히려 더 높았기 때문이다.
금감원이 서민 주거 안정을 이유로 같은 해 3월 7개 은행에 출시하도록 한 ‘월세대출’ 상품도 올해 5월말까지 실적은 2억원에 불과했다. 은행과 집주인간 협의 등으로 절차가 복잡하고 세입자의 일시상환 부담도 컸다는 이유다.
여기에 금융당국은 금융사가 정책상품을 적극적으로 판매하도록 실적평가와 사후점검을 통해 간접적으로 압박하기도 했다.
금융위는 중소기업에 자금지원과 금리우대, 수수료 감면 등의 혜택을 제공하는 ‘집중호우 피해복구 지원 대출’ 등 4건의 정책금융상품을 출시하도록 한 뒤 은행별 지원실적을 점검했다. 금감원도 담보력이 낮은 중소기업 자금조달 지원을 목표로 한 ‘동산담보대출’ 상품을 은행권에 출시하토록 요청해 목표량을 부여하고 매월 실적을 보고해 경영평가에 반영하도록 했다.
아울러 금융당국은 은행의 수수료 결정에도 명확한 법적 근거없이 개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1999년부터 최근까지 ‘일반 소비자 부담 완화’, ‘불합리한 관행 개선’ 등을 이유로 총 12차례에 걸쳐 수수료 인하나 폐지 등의 결정에 개입했다.
금융당국이 민간에 부당한 비용분담을 요구한 사례도 적발됐다. 금융위는 지난 2013년 6월 ‘금융관행 개선을 위한 설문조사’ 비용 1억5000만원을 권역별 금융협회에 떠넘겼고, 같은해 8월 금감원은 ‘전자금융사기 예방서비스 전면시행’ 관련 홍보비용 8억5000만원을 은행과 증권사 등이 부담토록 했다.
감사원은 “금융위와 금감원은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20회에 걸쳐 정부 정책 추진에 드는 사업비로 모두 41억원 가량을 민간 금융회사 등이 내도록 했다”며 “금융당국으로부터 각종 검사와 감독, 제재를 받는 금융사와 관련 협회 입장에서는 홍보나 행사비용 등의 분담을 요청받을 경우 이를 거절하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금융당국에 대한 민간 금융사의 과도한 업무보고서 제출부담 완화 정책도 제대로 추진되지 않고 있고, 은행의 유가증권 투자 규제, 증권금융회사의 사채 발행 한도 규제 등 각종 규제혁파도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성휘 기자 noirciel@etomato.com
서울 종로구 북촌로에 위치한 감사원 전경. 사진/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