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주간 휴일 없이 일 하다가 뇌질환으로 사망했더라도 7년간 근무해 업무에 숙달됐고, 비교적 일찍 퇴근했다면 업무상재해로 볼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고영한 대법관)는 아내 A씨가 업무상 과로로 숨졌음에도 불구하고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지 않은 것은 잘못이라며 남편 김모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의 상고심에서 원고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원고패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되돌려 보냈다고 27일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A씨가 담당한 업무는 업무 강도나 밀도에 비춰 신체적 정신적 부담이 중한 업무라고 보기 어렵고 비록 사망하기 4주 전부터는 휴무일 없이 근무했더라도 보통 오후 8시 이전에는 퇴근해 어느 정도 규칙적인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또 “같은 조로 근무하던 동료가 건축사 시험을 준비하면서 일부 설계업무를 담당하기는 했지만 A씨가 회사에서 7년 정도 설계업무를 수행했기 때문에 업무 범위가 다소 넓어졌더라도 변화된 업무에 쉽게 적응했을 것으로 보이고 A씨가 할 수 없는 업무는 여전히 동료가 담당했으므로 특별히 심한 정신적 압박을 받았으리라고는 보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발병 전날 사업주 지시로 시어머니와 저녁약속을 취소하고 오후 10시까지 근무한 것이 뇌동맥류 파열을 유발할 정도로 급격한 정신적 충격이 될 정도로 보기 어려운 점, 뇌동맥류는 자연발생적으로 파열될 수 있는 점 등을 종합하면 A씨가 업무 중 과로와 스트레스가 없지 않았더라도 그것이 뇌동맥류를 자연경과 이상으로 급격히 악화시켜 파열에 이르게 했을 것으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A씨(사망당시 29세)는 H종합건축사무소 건축설계기사로 7년째 근무하던 중 2012년 9월 출근했다가 갑자기 두통과 어지럼증을 느껴 병원 진찰을 받은 결과 경미한 뇌실내출혈 진단을 받았다. 이후 A씨는 입원을 대기하던 중 다시 구토가 나 병원 화장실로 갔다가 의식을 잃고 쓰러졌고 같은 날 CT촬영 등을 한 결과 다량의 뇌샐내출혈과 심한 뇌부종이 발견돼 치료를 받았으나 닷새 뒤 사망했다.
김씨는 아내가 건출설계기사 업무 외 경리 등 다른 업무를 같이 처리하는 등 평소 업무가 과중했고 쓰러지기 전날에는 소장 지시로 시어머니와의 약속을 취소하고 업무를 하는 등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으며, 같은 조로 근무하던 동료가 건축사 시험을 준비하면서 동료 업무까지 부담하면서 입원 전까지 4주간 휴일 없이 일하는 등 업무상 과로와 스트레스 때문에 병을 얻어 사망했다며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 및 장의비 지급을 청구했다.
그러나 공단은 A씨가 사망한 것이 업무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며 청구를 거부했고 이에 김씨가 소송을 냈다.
1심은 A씨의 사망이 업무와는 직접적 관련이 없다며 공단의 손을 들어줬으나 2심은 발병일에 가까울수록 근무시간이 점차 증가했던 점, 근무시간에 반영되지 않는 직무스트레가 있었던 점, 뇌질환을 일으킬 만한 지병이 없었던 점 등을 들어 A씨의 사망이 업무상 과로와 스트레스 때문이라며 김씨의 청구를 받아들였다. 이에 공단이 상고했다.
대법원 전경. 사진/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