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없는 토요일 아침. 일주일간 쌓인 피로를 풀기에 이만큼 좋은 날도 없다. 늦잠 잔다고 볶아대는 와이프도 없고 꾸지람하는 부모도 없다. 이날만큼은 한량이 따로 없다.
하지만 먹어야 살 수 있는 인간인지라 시간 맞춰 찾아오는 허기짐은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배달 음식은 지겹다. 그렇다고 아침부터 분식점에 앉아 처량하니 혼자 밥 먹기는 더더욱 싫다. 이때 가장 좋은 것이 3500~4000원대의 편의점 도시락이다. 가격 대비 만족감이 이를 데가 없다.
2010년 GS25가 본격적으로 유명인을 본격적으로 내세운 '김혜자 도시락'을 선보이며 시작된 편의점 도시락의 인기는 5년 만에 '대세'가 됐다. 편의점 도시락을 주식으로 삼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치가 이를 증명한다.
연평균 성장률이 40~50%에 이를 정도로 폭발적 성장세다. 1인 가구 증가와 불황에 따른 복합적 결과라는 것이 업계의 공통적 분석이다. 1인 가구는 1990년 전체가구 대비 9%에서 2015년 27%로 대폭 늘었으며 2020년에는 30%를 넘길 것으로 보인다.
역설적으로 편의점 도시락이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 꼭 필요한 대세 식단이 되어가고 있는 것은 그만큼 서민들의 주머니가 가벼워졌다는 소리로 들린다. 급식이 없던 시대에 학교를 다녔던 40대 이상에게 도시락은 어머니의 사랑으로 기억된다.
공부하는 자식들을 위해 매일같이 이른 새벽부터 따뜻한 밥을 짓고 정성스럽게 반찬을 만들어 담아주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아직도 선하기 때문이다. 그런 시대를 살았던 우리가 이제는 그저 5000원도 안 되는 도시락으로 한 끼를 해결하고 하루를 버터야 한다는 것이 정말 정상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사회라 할 수 있을까?
명절에도 노량진 고시촌 작은 책상에 의지해야 하는 청년 취준생들과 자녀는 물론 결혼까지 포기해야하는 삼포, 사포세대들은 고향에 내려갈 엄두도 내질 못했다. 취준생과 노동자들이 자리를 비운 명절 차례상 앞에서는 어르신끼리 노동법 처리가 급하다는 이야기가 오가고, 당장 어린이집 보육비 대란에 몰린 어린 손주가 빠진 가운데 정부의 누리과정 예산 지원 중단사태가 교육청 탓이냐 아니냐를 논하고 있다.
이제는 기업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편하게 퇴출할 수 있도록 국민적 합의 없이 정책을 밀어붙이면서 조선족 운운하는 작금의 정부와 여당에게 더 이상 기대 하지 않는다. 그저 값싼 도시락으로 하루를 버텨야 하는 많은 서민들과 취준생들을 위해 편의점 업체들이 영양가 높은 도시락을 꾸준히 만들어주는 것에 감사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서글픈 병신년이다.
정헌철 생활부장 hunchul@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