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은 최상위 법이다. 그러나 그를 구체적으로 실현하고 있는 하위법령과 그 법령을 실행하는 행정기관의 행정처분은 헌법과 어긋날 때가 적지 않다. 그때마다 국민은 문을 두드리지만 사법부는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판단을 내리며 "이것이 법이다"라고 선언하는 경우가 없지 않다. 이럴 때 국민은 절망한다.
최근 내려진 대법원 판결 중 주목되는 판결이 있다. 일제 강점기 당시 노무자로 강제 동원됐던 강모(1921년 2월생, 사망)씨는 해방과 함께 고향인 북으로 귀환했다. 살인적 착취로 왼쪽다리가 마비되는 장해를 입은 그는 한국전쟁이라는 격랑 속에서 누이동생과 함께 북에 남았다가 사망했다.
그의 사망 소식은 2003년 이산가족 상봉 당시 누이동생을 통해 남한에 있던 남동생에게 전해졌다. 남동생은 한국전쟁이 터지자 남한으로 피란했다. 강씨의 사망 사실은 대한적십자를 통해서도 확인됐다. 강씨의 남동생은 '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로부터 형이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로 결정됐음을 통지받은 뒤 '강제동원희생자지원위원회'에 특별법에 따른 위로금을 신청했다. 그러나 위원회는 거부했다. 강씨가 북한 호적을 갖고 있어 대한민국 국적자가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남동생은 소송을 냈다.
법원은 "강씨는 대한민국 국적자"라며 위로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헌법 3조를 그대로 적용했다. 1심부터 대법원까지 일관된 판단이다. 대법원은 "우리 헌법이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영토조항을 두고 있는 이상 대한민국 헌법은 북한 지역을 포함한 한반도 전체에 그 효력이 미치는 것이므로 북한지역도 당연히 대한민국의 영토가 되고, 북한주민 역시 일반적으로 대한민국 국민에 포함 된다"고 밝혔다. 매우 당연한 판결인 한편, 모처럼 크게 환영할만한 판결로, 통쾌하기 까지 하다.
문제는 이후 정부를 비롯한 관계 당국의 후속조치다. 일제 강점기 일본 기업에서 강제 노역한 우리 국민은 최고 240만명, 이 가운데 강씨와 같은 처지의 피해자는 추산이 어려울 정도다. 지금 이 순간에도 또 다른 강씨는 피맺힌 한을 가슴에 품고 세상을 떠나고 있다. 정부는 이번 판결을 계기로 사각지대에 있는 피해자들을 적극적으로 찾아 위로해야 한다. 그 첫 번째로, 방치 끝에 해체한 '대일항쟁기강제동원피해조사위원회'부터 부활해야 한다. 국가가 외세로부터 당한 국민의 피해를 위로하고 대신 나서 싸워주는 데에 '불가역적'이란 것은 없다. 오직 진행형만 있을 뿐이다.
최기철 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