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생활인권부장으로 처음 보임 받은 교사가 학교 폭력행위 사건 처리과정에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면 평소 우울증 증세가 없었더라도 공무상 재해로 봐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이인복 대법관)는 학생생활인권부장으로 근무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중학교 교사 현모씨의 아내 지모씨가 “남편의 죽음을 공무상 재해로 인정하지 않은 것은 잘못”이라며 공무원연금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보상금부지급결정처분취소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원고승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되돌려 보냈다고 14일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현씨는 학생생활인권부장을 처음 맡아 학생생활지도와 학교폭력 가해학생 등 면담과 진술서 작성,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에서 의결된 조치 집행 등 업무를 수행하면서 업무상 스트레스가 누적된 것으로 보인다”며 “교장에게 학생생활인권부장을 그만둘 의사를 표시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 “교내 학교폭력사건에서 현씨의 의견과 달리 가해학생 전원에게 전학조치라는 중징계가 내려지면서 가해학생과 피해학생 및 그 학부모들로부터 원망과 질책알 받아 심리적으로 상당히 위축되고, 스승으로서 가해학생이나 피해학생들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정신적 자괴감에 자치위원회 일부 위원의 참가자격에 관한 분쟁까지 겹쳐 극심한 업무상 스트레스와 정신적 고통을 받게 된 점 또한 인정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런 사정 등을 종합하면 현씨는 자살 직전 극심한 업무상 스트레스와 정신적 고통으로 급격히 우울증세가 유발됐고, 그로 인해 정상적 억제력이 현저히 저하돼 합리적 판단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의 상황에 처해 자살한 것으로 보인다"며 "현씨의 업무와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이어 “비록 현씨에게 우울증으로 치료받은 병력이 없다거나 개인적 성격상 취약성이 자살을 결의하게 된 데 일부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고 달리 볼 것은 아니다”며 “그럼에도 현씨가 사회평균인 또는 개인적 건강과 신체조건을 기준으로 도저히 감내할 수 없거나 극복할 수 없을 정도의 과중한 공무상 스트레스와 그에 따른 우울증에 기인해 자살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한 원심은 위법하다”고 판시했다.
21년 경력의 수학교사인 현씨는 경기도의 한 중학교에 부임한 뒤 처음으로 학생생활인권부장을 맡았는데 2012년 2학년생 12명이 1학년 학생들을 상습 폭행하고 금품을 갈취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가해 학생 중 사안이 중한 축구부소속 학생 6명은 학부모 등으로 구성된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로 회부됐는데, 이 과정에서 신고한 피해학생을 가해학생이 협박하는 일이 발생해 현씨가 피해학생 학부모로부터 항의를 받았으며, 가해학생 학부모가 자치위원으로 참여하면서 자격을 두고 갈등이 생겨 현씨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현씨는 동료 교사나 아내에게 스트레스와 부담감을 호소하다가 같은 해 7월 교장에게 보직 사임 의사를 밝혔지만 거절됐고, 자치회 회의에서 가해학생별로 조치를 달리 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결국 가해학생들이 소속된 축구부 해체와 가해학생 전원 전학조치 등이 의결됐다.
그러자 현씨는 같은해 9월 학교 화장실에서 스스로 목을 맸고 30분 뒤 동료 교사에게 발견 돼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지만 7일만에 사망했다. 이에 아내 지씨가 공무원연금공단에 유족보상금 등을 신청했지만 공단은 “업무와 관계없이 사망했다”며 거부했다. 이에 지씨가 소송을 냈다.
그러나 1, 2심이 현씨의 업무나 스트레스가 자살을 할 정도로 과중했다고 볼 수 없고, 사망한 해 7월 건강검진에서 스트레스 수치가 양호 판정을 받은 점, 이전에 우울증 등의 병력이 없었던 점 등을 들어 지씨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자 지씨가 상고했다.
대법원 청사. 사진/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