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더미에 '한숨' 실직에 '눈물' 정부에는 '울분'…개성공단 폐쇄 연쇄충격

생산터전·일터·꿈이 한순간에 사라지다…남은 것은 빚과 불신

입력 : 2016-02-18 오후 3:46:34
개성공단의 기계소리가 멈췄다. 일터로 향하던 북한측 노동자의 발길도, 개성공단에서 생산된 제품을 남측으로 전달하던 트럭도 자취를 감췄다. 그렇게 남북 경제협력의 마지막 길이 끊겼다. 개성공단은 2003년 착공에 들어가 이듬해 제품 생산에 돌입했다. 북한의 도발 등에 따라 부침을 겪긴 했지만, 2013년 남북은 개성공단을 정상화하면서 “어떠한 경우에도 정세의 영향을 받음 없이” 공단의 정상적 운영을 보장한다는 데 합의했다. 개성공단이 남북 교류의 상징이자, 물릴 수 없는 민족 협력의 장이라는 데 인식을 같이 했다. 하지만 지난 10일 정부는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에 대응해 개성공단 전면중단이라는 초강수를 꺼내들었다. 북한도 개성공단 자산동결로 맞서면서 공단은 폐쇄됐다. 2004년 4168만달러에서 지난해 27억356만달러로 65배 가까이 늘어난 남북 교역은 중단됐다. 개성공단에 입주한 우리 기업들의 피해도 불가피해졌다. 정부 말만 믿고 남북 경협의 길을 열었으나 또 다시 정부에 의해 파산 직전으로 내몰렸다. 일감을 잃으면서 피해는 2·3차 협력사로 가중되고 있다. 직원들의 한숨소리도 커졌다.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의 한숨을 쫓았다.
 
"개성공단에 혼을 심었습니다. 있는 것 없는 것 모두 끌어 모아 투자했는데…하루빨리 공단 운영이 정상화되기만 바랄 뿐입니다."(섬유관련 A업체) "공장 설비라는 게 하루도 쉬지 않고 닦고, 기름칠을 해야 하는데…설비 가동 중단이 한 달 이상 넘어가면 녹이 슬어 일부 설비는 교체해야 합니다. 전체 투자비용 중 설비가 절반가량입니다."(전기전자관련 B업체)
 
하루아침에 생산 터전을 빼앗긴 124개 입주기업은 연일 곡소리다. 이들의 생산액은 월 5000만달러(550억원) 규모다. 하루에 입은 손해액은 18억원에 달한다.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이 설비에 투입한 투자비용과 납품계약 파기 비용 등 눈에 보이지 않는 금액들을 더할 경우 피해액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 특히 한 업체당 30~40개 협력업체가 딸린 점을 감안하면 5000여개에 이르는 협력사의 피해도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개성공단이 폐쇄되고 남북 교류가 완전히 중단된 14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통일대교에 적막감과 긴장감이 흐르는 가운데 차량들이 이동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원금 상환기간 코앞…엎친 데 덮친 격
 
2013년 개성공단 가동 중단 당시 긴급하게 대출받은 자금을 상환하지 못한 기업들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재정이 아직 정상화되지 않은 와중에 생산 중단에 따른 피해까지 고스란히 떠안아야 할 지경에 내몰렸다.
 
중소기업진흥공단에 따르면 2013년 개성공단 가동 중단과 관련해 61개 기업이 대출받은 긴급경영안정자금은 총 377억원. 이중 현재까지 41개 기업이 상환 중에 있으며, 남아있는 금액은 246억원 정도다. 총액의 65.5%가 아직 갚아야 할 빚으로 남아있다. 2013년 4월 구성된 긴급자금은 123개 개성공단 가동기업의 모기업을 대상으로 기업당 연간 10억원 한도로 2% 금리에 제공됐다. 만기는 1년, 기업 요청에 따라 2년6개월까지 연장 가능했으며, 이후 3년간 분할상환하게 돼 있다.
 
이 자금은 개성공단에 제조공장을 가지고 있는 기업이라면 지원 받을 수 있고, 일반은행에 비해 대출 조건 문턱이 낮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때문에 작고 영세한 기업들이 다수 자금확보에 나섰다. 한 관계자는 "아직 긴급자금을 상환하지 못한 기업은 주로 3년 전 공단 가동 중단으로 문 닫을 위기에 처했던 소규모 기업들"이라며 "정상화가 되기 전 또 한 번의 역풍을 맞았다"고 말했다.
 
신발공장을 운영 중인 한 업체 대표는 "당시 금리가 상대적으로 낮아 긴급자금을 지원받았지만 아직 절반도 채 갚지 못한 상황"이라며 "당장 공장을 돌리지 못해 매출이 발생하지 않는데, 이 자금은 어떻게 갚아야 할지 막막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한 의류공장 업체 대표도 "갚아야 할 원금과 이자가 산더미지만 무슨 수로 갚아야할지 모르겠다"며 "거래가 끊기니 돈 나올 구멍이 막혔다"고 연거푸 한숨을 내쉬었다.
 
정부가 중소기업진흥공단의 정책금융 원금 상환을 유예하고 대출 이자도 1년간 유예하기로 했다고 밝혔지만, 이 역시 언 발에 오줌 누기에 불과하다는 의견이 다수다. 당장 사업을 통해 한 푼도 벌어들일 수 없는 상황에서 원금 상환과 이자를 유예하는 것은 사망선고의 기한만 연장하는 것일 뿐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얘기다. 입주기업 관계자는 "2013년에도 160여일간 공장을 돌리지 못해 빚더미에 앉았다”며 “이자 낼 돈도 없는 판에 이자 미뤄준다고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며 되레 반문했다. 
 
협력사까지 줄도산 공포…근로자도 실직 위기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현재 개성공단기업협회에 따르면 개성공단 매출 비중이 100%인 곳은 입주기업 124곳 가운데 약 70%인 86개로 추산된다. 사실상 입주기업 근로자 대부분이 실직 위기에 몰려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2·3차 피해 또한 현실화되고 있다. 입주기업에 원부자재를 납품하는 5000여개 협력사는 물론 식자재 등을 공급하는 90여개 유통서비스업체, 개성공단에서 생산된 제품을 판매하는 국내 업체들까지 고사 위기다.
 
우선 124개 입주기업들의 공장 가동이 중단되면 이들과 거래하는 영세 납품업체들은 당장 판로가 막히게 된다. 개성공단기업협회에 따르면 이들 협력업체 5000여곳의 근로자 수는 12만5000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개성공단 입주 생산기업에 건설·유통·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영업기업들도 피해를 입기는 마찬가지다. 이들은 개성공단 입주기업이 필요한 건물 신·개축, 생필품과 식자재 공급, 노래방·당구장 운영 등을 지원하고 있다. 생산기업의 운영에 필수적인 각종 역할을 맡고 있지만 90여개 영업기업들은 피해 공식 집계에도 비켜나 있다.
 
개성공단영업기업연합회 관계자는 "생산기업들이야 원부자재가 들어오면 살 수 있다고 하지만, 우리 영업기업은 공단이 닫히면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며 "개성공단이 하루빨리 다시 열리기만을 기대할 뿐"이라고 말했다.
 
개성공단에서 식자재 유통업체를 운영하는 한 업체 관계자는 "생산기업에게 납품한 식자재 대금 2억원을 현재 받지 못했지만 현재로서는 대금을 달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처지"라고 말했다. 그는 "개성공단 소규모 서비스 협력업체의 90% 이상은 개성공단에서만 영업활동을 해온 회사들"이라며 "개성공단이 폐쇄되면 영업기업들은 살아남을 방법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개성공단에서 물품을 받아 판매하기 위해 설립된 개성공단상회도 날벽락을 맞았다. 개성공단상회는 지난해 9월 오픈한 직영점을 시작으로 현재 5개 대리점이 운영 중이다. 한 대리점 관계자는 "물품을 개성공단에서 받을 수 없다 보니, 가지고 있는 제품을 다 소진하면 사업을 유지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특히 이들의 실제 영업 기간은 2∼5개월에 지나지 않아 현 시점에서 매장을 닫게 되면 투자원금도 못 건지게 된다. 서울 군자역점은 내부 공사비와 가게 계약금 등으로 이미 1억원가량 지출했으나 이를 고스란히 날리게 됐다. 다음달 개점 예정인 강남점도 마찬가지다. 다른 대리점 관계자는 "대리점주들의 투자액은 1억∼3억원 정도인데 현재까지 누적 매출은 각각 1000만∼8000만원 밖에 안 되는 실정"이라며 "공사비를 비롯한 투자금을 눈앞에서 날리게 될 처리라 막막한 상태"라고 전했다. 
 
북한 개성공단 내 근로자들이 작업을 하는 모습. 사진/뉴시스
 
10년 공든탑이 송두리째 무너지다
 
"개성공단 중단, 모기업 몰락, 협력사 줄도산 공포는 눈에 보이는 피해일 뿐입니다. 10년 넘게 관계를 다져온 바이어들이 송두리째 날아가게 생겼습니다. 사업을 하지 말라는 얘기죠."
 
유동옥 개성공단기업협회 비상대책위 공동위원장의 울분이다. 개성공단 중단으로 입주기업들이 무너지고, 이 여파가 협력사로 이어지면서 연쇄 충격이 가해지고 있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이라는 것이다. 속속들이 들여다보면 이들이 10년 넘게 만들어 놓은 생활터전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으며, 힘들게 쌓아온 국내외 바이어들과의 신뢰도 물거품이 될 처지다.
 
그는 "개성공단은 히든챔피언의 탄생지였지만 우리가 쌓아온 모든 공든탑이 순식간에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고 말했다.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은 가장 큰 피해로 바이어들을 잃게 됐다는 점, 또 장기간 훈련을 통해 숙련된 노동자들을 다시 구할 수 없게 됐다는 점을 지적했다. 좋은 대체시설을 마련하더라도 이 두 가지를 다시 만드는 데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개성공단 입주기업 관계자는 "2013년 중단 기간 금이 간 바이어와의 신뢰 회복을 위해 많은 시간이 소요됐는데 같은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기존 바이어뿐 아니라 새로운 바이어를 찾을 수 있을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오늘의 개성공단을 이루기 위해 10년 넘게 피땀 흘린 노력이 중단돼 참담하고 안타깝다"고 말했다. 울부짖음이었다.
 
이지은 기자 jieune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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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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