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를 이끌던 범현대가 기업들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아들들이 현대자동차그룹, 현대중공업그룹, 현대그룹 등을 각자 계열분리해 한국의 산업혁명을 이끌어왔다.
정몽구 회장이 이끄는 현대차그룹은 세계 5위 자동차 업체로 급성장하면서 글로벌 기업으로 우뚝 섰다. 현대차그룹은 자동차부터 부품, 제철, 물류 등 모든 사업부문을 수직계열화 하면서 폭발적인 외형성장을 이뤄냈다.
하지만 최근 중국 등 신흥국의 경제성장 둔화가 이어지면서 판매가 감소하고, 자동차 업체간 치킨 게임으로 인한 과도한 인센티브 지급, 자국 보호주의에 따른 강도 높은 규제강화, 노사 문제 등이 발목을 잡으면서 앞날을 어둡게 만들고 있다.
무엇보다 우리나라 대기업의 경우 수직계열화를 통해 외형을 불리다 보니 정점에 있는 핵심기업이 위기를 겪게 되면 나머지 기업들도 연쇄적으로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현대차(005380)의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은 1조3420억원 전년 동기 대비 15.5% 하락했다. 기업분석리서치 에프엔가이드에 따르면 자동차부품을 제조·공급하는 현대모비스(012330)와 현대위아(011210) 영업이익 역시 각각 6575억원(-6.4% YoY), 1062억원(-18.4% YoY) 가량 급감할 것으로 전망된다.
자동차 강판을 공급하는 현대제철(004020)은 가격인하가 실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면서 1분기 영업이익 3090억원(-9% YoY)으로 예상된다. 그나마 기아차와 현대글로비스의 경우 전년 동기 대비 실적개선이 점쳐지고 있다. 이외에 다른 주력 계열사인 현대건설, 현대위아, 현대로템 등도 실적과 주가가 예전 같지 않다.
세계 1위 조선사인 현대중공업(009540)도 지난 몇 년간 적자가 쌓이면서 부서 통합 및 인력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있다. 올해 1분기 흑자 전환하면서 일시적으로 숨통이 트였지만, 옛 명성을 되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현대중공업은 이날 담화문을 통해 “올해 선박수주 5척, 해양플랜트는 2014년 11월 이후 전무했다”면서 “생존을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할 테니 동참해달라”고 호소했다. 이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 문제가 회사 임직원은 물론 지역사회 이슈로 부각되면서 사실상 인력 구조조정이 순탄치 않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한때 재계 6위를 기록했던 현대중공업은 올해 공정거래위원회 자산기준 12위까지 떨어졌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26일 오전 열린 '제3차 산업경쟁력 강화 및 구조조정 협의체' 회의 결과 운임하락 지속으로 유동성 위기에 직면한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이 용선료 인하 협상 시한을 넘기면 후속 조치할 것'이라고 밝혀 협상 실패 시 법정관리로 갈 수 있음을 시사했다. 사진/뉴시스
현대그룹은 창립 이후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현대그룹은 알짜배기 현대증권을 시장에 내놓으면서 한숨을 돌렸지만, 주력인 현대상선이 경영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큰 위기를 겪고 있다.
와이즈에프엔에 따르면 지난해 현대상선의 연간 부채비율은 2006.54%에 달한다. 현정은 회장이 사재출연 등 위기극복을 위해 혼신의 힘을 쏟고 있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아 보인다.
시장 전문가는 “글로벌 경기침체가 지속하면서 범현대가 뿐 아니라 우리나라 대부분의 업종에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현대차의 경우 그간 빠른 속도로 성장했기 때문에 잠시 숨을 고르는 분위기고, 현대중공업과 현대상선은 시장 상황이 워낙 안 좋은 탓에 위기를 맞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범 현대가는 제조업 중심의 사업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 상황에 신속히 대응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고 덧붙였다.
김영택 기자 ykim98@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