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산다"…이재용 체제 2년과 삼성의 변화

부친 공백을 실용주의로 메우다…강력한 카리스마 대신 현장과 소통

입력 : 2016-05-03 오후 5:06:37
 
[뉴스토마토 이재영기자] 이재용 체제 2년. 오는 10일이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지 정확히 2년이 된다. 세간의 걱정을 딛고 자가호흡 등 체력적 안정을 되찾았으나, 경영일선 복귀는 요원해 보인다. 강력한 카리스마를 내뿜는 거목의 공백 속에 삼성은 빠르게 이재용 체재로 재편됐다. 
 
먼저 지주사 체제로의 재편을 단행했다. 환상형 순환출자 구조에서 삼성물산을 정점으로 전자와 금융, 두 날개를 펼쳤다. 이 과정에서 방산 등 불필요한 사업군들을 과감히 정리하는가 하면, 미래를 대비해 전장과 바이오 등 새로운 성장동력을 포진시켰다. 관통하는 핵심 철학은 실용주의에 기반한 선택과 집중이다. 또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분리될 것으로 봤던 두 동생(부진·서현)의 지분도 사실상 정지작업을 통해 '원(One) 삼성'의 기반을 만들었다. 물론 모친인 홍라희 리움관장의 역할이 컸다는 게 재계 중론이다.
 
이재용 체제에 대한 재계의 시선은 '파는 삼성'이다. 속도도 빠르다. 사업 조정을 동반한 지배구조 개편은 이 회장이 쓰러지기 전에도 활발했다. 2014년 5월 이 회장이 입원한 이후 진행됐던 에버랜드 상장, 중공업과 엔지니어링 합병도 예정됐던 바다. 다만 에버랜드 상장이 경영권 승계를 위한 핵심 절차였다면 중공업과 엔지니어링 합병은 효율성 제고를 위한 사업 조정 성격이 짙다. 이후 삼성은 향후 대규모 합병 건 등이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그해 11월 한화와의 화학·방산 계열사 매각 빅딜이 발표돼 시장을 놀라게 했다. 이 부회장의 결정 속에 빠르게 협상이 전개됐다. 곧이어 롯데와의 인수합병도 진행됐다. 선대회장이 사업보국 차원에서 진행했던 방산업을 모조리 정리했다. 삼성 주력사업과 성격이 맞지 않는 화학도 과감히 팔아치웠다. 제일기획(광고)도 매각 대상에 올랐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집계한 삼성그룹 기업집단의 계열사 수는 2003년 63개에서 10년 뒤 76개로 증가했다가 지난해 67개까지 줄었다.
 
매각 선택이 옳았는지는 현재로서는 불투명하다. 한화와 롯데로 넘어간 비핵심 계열사들이 저마다 선전하며 고른 실적을 올렸다. 물론 이는 본연의 경쟁력보다 업황에 기인한 측면이 크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이 같은 진통을 감내하고 삼성이 선택한 전략적 측면을 바라봐야 한다고 조언한다. 대표적 사례가 케미칼을 떼내고 2차전지 제조사로 재탄생한 삼성SDI다. 카메라 사업 철수 등도 이재용 부회장의 삼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경쟁력의 한계를 보일 경우 과감히 정리할 수 있음을 대내외에 각인시켰다. 
 
이건희 회장과 이재용 부회장은 리더십에서도 명백한 차이를 보인다. 이 회장이 한때 은둔의 경영자로 불렸다면, 이 부회장은 현장을 직접 뛰어다닌다. 8년여를 끌어왔던 반도체사업장 백혈병 논란을 해결하는가 하면, 메르스 사태 때는 대국민 사과를 하기도 했다. 애플과의 특허전쟁, 중국 반도체라인 신설 등도 그의 손을 거쳐 해결 국면에 진입했다. 이외 글로벌 완성차 CEO 등을 직접 만나는 등 영업 일선에도 섰다. 전세기를 내다팔고 캐리어를 직접 끌며 해외 곳곳을 다니는 그에게서 부친의 은둔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이 회장이 적당한 시기마다 '위기'를 강조하며 조직에 긴장감을 불어넣은 것과도 대비된다.
 
관행과 권위를 걷어내고 일하는 문화로 혁신하자는 삼성의 ‘컬처혁신’ 선포는 그런 연장선에서 나왔다. 삼성은 내달 직급 단순화, 수평적 호칭, 선발형 승격, 성과형 보상 등 사내 문화를 개선하는 ‘글로벌 인사 혁신 로드맵’을 발표한다. 여기에는 실적에 따른 엄격한 신상필벌 원칙도 따른다.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 선언과 대비된다. 비서실이 모태인 미래전략실도 향후 상당 부분 성격 변화가 예고된다. 보좌에 의존하기 보다 직접 소통하고 현장으로 뛰어가겠다는 이재용 체제의 색깔이 미래전략실을 현장 중심으로 돌려세울 가능성이 크다.
 
남은 과제는 경영권 승계 마지막 퍼즐과 반도체-스마트폰을 이을 새로운 성장동력의 확보다. 구글 등 실리콜밸리가 주도하는 미래사업 전장터에서 대형 제조사의 한계를 벗어던져야 한다. 경영권 승계를 마무리 짓는 동시에 두 동생과의 갈등을 피하며 원 삼성도 유지시켜야 한다. 흩어졌던 범삼성가의 지존으로서의 역량과 아량도 보여야 한다. 무엇보다 이 부회장이 지목한 전장과 바이오 분야에서 그의 혜안이 옳았음을 대내외에 입증해야 한다. 아직 갈 길은 멀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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