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용준기자] 서울시에서 물꼬를 튼 생활임금제가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경기와 인천을 비롯해 광역지방자치단체와 기초지방자치단체 80여곳이 생활임금제를 도입했거나 검토 중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여전히 마뜩지 않은 눈치지만 20대 국회를 구성하는 각 정당에서도 최저임금 인상과 더불어 긍정적인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이대로 간다면 조기 법제화도 가능한 분위기다. ‘소득 불균형’의 해법으로 급부상한 생활임금제도의 현주소와 외국의 사례, 법제화 전망을 짚어봤다.(편집자주)
생활임금제가 최저임금제의 한계를 보완하고 소득 불평등을 해소할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서울을 비롯한 각 지자체에 점차 확산되면서 법제화 요구까지 일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해 광역지방자치단체 중 처음으로 생활임금 조례를 시행해 ‘서울형 생활임금제’를 도입했다. 현재 광역지자체 중엔 경기도, 세종시, 인천시, 광주시, 기초지자체 중엔 전국 80여곳이 이미 도입했거나 도입을 준비 중이다.
서울시는 생활임금 산정을 위해 서울연구원과 함께 가계지출, 주거비, 사교육비, 물가상승률 등을 반영한 ‘3인 가구 가계지출 모델’을 개발했다. 서울 25개 자치구 중 22개 자치구도 이미 도입했거나 준비 중으로, 서울형 생활임금제를 지역 실정에 맞게 변형하거나 자체 산출모델을 개발했다.
생활임금제 도입에 소극적이던 새누리당 소속 구청장의 자치구들도 상당수가 조례 발의 이상 단계에 들어섰다. 서울 자치구 중 가장 많은 생활임금을 지급하는 성동구는 통계청 가계동향조사 도시근로자 3인 가구 지출값의 55%, 최소주거기준 감안 주거비, 1인당 평균 사교육비를 반영해 서울시 생활임금보다도 약 500원 많은 시간당 7600원을 지급하고 있다.
올해 서울시 생활임금은 시간당 7145원, 월 149만3305원으로 지난해 생활임금보다 6.8% 올랐으며, 올해 최저임금 시간당 6030원, 월 126만270원과는 월 23만원가량 차이난다. 서울시 생활임금의 경우 올해 우리나라 최저임금보다 18.49% 많으며, 성동구 생활임금은 무려 26%, 월 기준으로는 33만원가량 많은 금액이다.
1904년 미국 볼티모어시에서 처음 도입된 생활임금은 인상 속도가 더딘 최저임금을 보완하기 위해 탄생한 제도다. 현행 최저임금만으로는 한달 평균 생계비의 60~70% 밖에 충족시키지 못하는 상황에서 소득 불평등을 해소하고 저임금 노동자들의 의식주부터 교육·교통·문화에 이르기까지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정책적 대안이다.
생활임금은 민간영역에 대한 강제성이 없어 우선 공공부문부터 점차 확대 적용하고 있다. 서울시는 생활임금의 단계적 확산을 위해 1차적으로 지난해 8월부터 서울시와 투자출연기관에서 직접 고용한 근로자 1039명을 대상으로 생활임금을 적용해 임금을 지급하고 있다. SBA 서울산업진흥원의 경우 청사관리직(미화·시설·경비) 45명에게 생활임금을 서울시 생활임금보다도 9.3% 높은 수준으로 급여를 인상 적용해 처우 개선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근무 분위기까지 개선되는 효과를 거뒀다.
서울시는 올해에도 간접고용 분야(용역, 민간위탁 등)에도 생활임금을 적용하고자 약 280개 민간위탁기관 1480명에게 7월부터 단계적으로 지급할 방침이다. 용역근로자들에게도 용역근로자 보호지침에 따라 시중노임단가(시급 8290원)를 적용하는 방안을 추진 중으로 서울연구원 용역을 거쳐 적용시기 등을 확정할 예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활임금의 성패는 민간영역에서의 확산 여부에 달려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 분석이다. 때문에 서울시는 민간 확산을 위해 올해 업종·특성별 타깃기업을 선정해 생활임금 적용 협약을 체결해 사회적 분위기 확산에 주력할 계획이다.
이미 다국적기업, 강소기업, 대형병원, 언론사, 프랜차이즈 등 10여곳을 생활임금위원회 위원 등 전문가로부터 추천받아 협의를 진행 중이다. 또 시에서 운영하는 하이서울 브랜드, 사회적경제 우수기업, 가족친화 우수기업 등 각종 기업 인증제도 심사 기준에 생활임금 적용 여부를 검토 중이다. 이밖에 양대 노총과 함께 하는 ‘노사민정청 사회적 협약 체결’에 생활임금 확산 어젠다를 반영하는 등 실질적인 민간 확산에 힘을 쏟는다.
서울 각 자치구들도 지역 소재 대학들과 양해각서를 체결하거나 공공계약 상대자를 대상으로 노동자 생활임금 적용을 권장하는 등 민간 확산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달 서울연구원이 발간한 연구보고서 ‘서울시 노동정책 발전전략’도 서울형 생활임금의 확산을 위해 서울형생활임금의 획기적인 인상과 민간 확산방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연구보고서는 최저임금이 지나치게 낮은데도 생활임금이 최저임금의 120% 수준에 머무르는 만큼 올해 인상률(7.6%)보다 획기적인 인상으로 생활임금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민간부문 확산을 위해 ‘우수기업 인증’이라는 방법 이외에도 ‘서울시 공공조달 가이드라인’에 생활임금 적용기업 가산점 규정을 신설하고 공공조달 부문에 생활임금 의무 적용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아울러 다른 지자체 확산을 위해 생활임금 수준과 적용방식에 대한 서울시 표준안을 만들고 지자체간 협의 구조를 구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진우 선임연구위원은 보고서를 통해 “서울시가 광역 최초로 도입한 생활임금제는 공공부문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한다는 측면에서 큰 의미가 있다”며 “민간영역에서도 생활임금 도입 필요성에 대한 공론화가 제기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달 27일 노동존중특별시 선언 기자설명회에서 생활임금 확산 정책을 설명하고 있다.사진/서울시
박용준 기자 yjunsay@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