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 뷰)유럽 경제, 당뇨병 환자 같아

폴 크루그먼 교수 "유럽경제, 양적완화라는 인슐린 주사로 버텨"

입력 : 2016-05-08 오후 2:01:09
[뉴스토마토 유희석기자] "유럽경제는 마치 당뇨병 환자와 같습니다. 당뇨병에 걸리면 인슐린 주사가 필요하듯이 유럽은 저금리로 인한 양적완화 없이는 버틸 수 없습니다. 이는 정상이 아니며 부작용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병을 완전히 뿌리 뽑아야 합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자 미국의 대표적인 진보 경제학자로 꼽히는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학교 명예교수는 최근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유럽경제를 당뇨병에 걸린 환자로 묘사했다. 
 
유럽이 수년간 시장에 돈을 풀어 경기를 부양시키는 모습이 마치 당뇨병 환자가 인슐린 주사 없이는 살지 못하는 모습과 비슷하다는 논리다. 
 
그는 "포르투갈 경제는 굉장히 나쁘지만 2~3년 전 최악의 상황보다는 괜찮다"며 "이 같은 현상은 유럽경제 전체에도 해당되고 이는 좋은 뉴스"라고 말했다. 
 
실제 유럽연합(EU) 통계기관 유럽통계청에 따르면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의 올해 1분기 국내총생산(GDP)은 작년 4분기에 비해 0.6% 증가했다. 실업률도 2013년 12%가량에서 최근 10%대로 감소했다.
 
하지만 유럽경제는 '성장'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아직 멀다. 뚜렷한 회복세를 보이며 금리 인상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미국과는 차이가 많이 난다. 미국은 실업률도 5% 미만이다.
 
지난 1일 프랑스 파리에서 노동절을 맞아 노동자들이 '노동권이 없다. 실업은 좋지 않다'는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행진하고 있다. 유로존 실업률은 미국의 2배를 넘는다. 사진/로이터
 
크루그먼 교수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8년이나 지났지만 유럽경제의 약점은 끝을 모르고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라며 "이것이 유럽은 물론 전 세계 모두를 걱정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유럽은 미국보다 경제성장률이 좋았던 적도 있었지만 이제야 금융위기 전보다 약간 좋아진 정도"라고 전했다. 
 
유럽경제의 침체는 금융시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독일의 국고채 5년물 금리는 마이너스 0.3%다. 지난 3월에는 독일의 민간은행이 세계 최초로 마이너스 금리 채권을 발행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안전자산인 국고채 금리가 마이너스라는 것은 투자자들이 경제 회복을 기대하지 않고 있음을 의미한다. 저금리가 유지되는 것은 중앙은행이 인위적으로 돈을 풀고 있기 때문이다. 
 
크루그먼 교수는 "유럽경제의 만성적인 질병은 늘지 않는 소비"라며 "이 때문에 경제 상황이 좋은 최근 몇 달간에도 계속 물가하락 성향을 보인다"고 분석했다. 유럽경제에 인슐린 주사(양적완화)가 현재 꼭 필요한 이유다.
 
문제는 인슐린이 당뇨병 증상을 완화시킬 뿐 완전한 치료제는 아니라는 점이다. 유로존의 올해 1월 인플레이션율은 0.4%로 유럽중앙은행(ECB) 목표인 2%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높은 실업률은 사회적, 정치적으로 엄청난 피해를 주고 있기도 하다. 스페인의 청년실업률은 45%에 이른다.
 
크루그먼 교수는 "ECB의 양적완화 없이 유럽경제가 어떻게 될지 생각해보라"며 "(ECB의 양적완화는) 유럽경제의 병을 고치기 위한 치료를 한 것이 아니다"고 꼬집었다.
 
유럽경제에 큰 충격을 줄 거대한 이벤트도 줄줄이 대기 중이다. 그리스는 여전히 불안하고 영국은 유럽연합(EU) 탈퇴 여부를 결정하는 국민투표가 6월에 실시된다. 중국 경제는 벼랑 끝에 아슬아슬 매달려 있다. 
 
이에 대해 크루그먼은 "유럽의 정책입안자들이 새로운 충격을 막기 위해 어떤 조치를 취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아무도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것 같다"고 걱정했다. 
 
크루그먼 교수는 유럽경제의 치료제로 '돈 풀기'가 아닌 공공부문의 재정지출 확대를 꼽았다. 그는 "독일과 프랑스처럼 재정상황이 비교적 괜찮은 나라들이 공공 지출을 늘려야 한다"며 "인프라 수요는 많이 있고 투자자들도 정부가 자신들의 돈을 받아 사용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이어 "유럽의 중심 국가들이 지출을 늘린다면 주변국들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정부의 재정 지출 확대는 정치적 장애물을 넘어야 한다.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재정 지출에 긍정적인 반면 영국과 독일은 재정 지출 확대에 매우 소극적이다. 재정 적자를 GDP의 3% 이내로 억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크루그먼 교수는 "유럽을 방문하는 것은 미국인으로서 조국에 대해 좋은 감정을 느끼게 한다"며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으로 혼란스럽지만) 미국의 경제적, 정치적 상황은 많은 희망을 갖게 한다"고 말했다. 
 
그는 유럽은 미국과 달리 여전히 경제위기에 대한 해법이 없지만 "진심으로 유럽이 구덩이에서 탈출하기를 바란다"며 "하지만 현재 그 어떤 긍정적인 신호도 발견하기 어렵다"고 끝을 맺었다.
 
폴 크루그먼은 미국을 대표하는 경제학자다. 교수이자 작가로 2000년부터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정치적으로 사회자유주의자 또는 진보주의자로 평가되며 2008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학자 50명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유희석 기자 heesuk@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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