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을 수 없는 의자를 아십니까, <우리동네 마트액션>

우리가 사는 세상 / 가능 사회

입력 : 2016-06-14 오후 5:31:32
‘의자는 의자인데 앉을 수 없는 의자는?‘. 언뜻 난센스 퀴즈의 한 구절처럼 보이는 이 문제의 답은 무엇일까? 답은 생각보다 우리 가까이에 있다. 당신이 답을 듣는다면 고개를 갸우뚱할지도 모르겠다. 그 의자에 앉지 않는 걸 너무 당연하게 여기고 지내왔을 것 같으니 말이다. 
 
 답은 바로 ‘마트 노동자가 앉는 의자‘. 서서 일하는 마트 계산원의 뒤로 놓여있는 의자를 보고도 우리는 그녀가 앉아서 계산하지 않음에 큰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종일을 서서 고기를 굽는 시식 판매원의 앞에서 음식을 집어 들면서도 별생각 없이 지나친다. 당연하게도 그들이 ’서비스 직’에 종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바람아시아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 이 명제에 불편한 질문을 던진 사람들이 있다. 여성민우회에서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주최한 <우리동네 마트액션> 캠페인. 지난 3월 5일, 연신내역 3번 출구 롯데슈퍼 앞에서 이들을 만났다. 앉을 틈 없이 서서 일하는 서비스직 노동자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계획된 행사라고 했다. 기자가 찾아간 곳은 연신내역이었지만, 신도림, 서울역, 미아에 있는 대형 마트 앞에서도 캠페인이 진행되었다. 
 
오전 11시가 되자 회원들은 마트 앞에서 피켓팅을 하는 한편, 미리 준비한 비누 장미와 유인물을 나눠 주기 시작했다. 장미는 1908년 3월 8일 미국의 여성 노동자들이 근무 시간 단축·임금 인상·투표권을 요구할 때 외쳤던 구호인 “우리에게 빵과 장미를 달라”에서 유래했다. 빵은 ‘굶주림을 채울 수 있는 생존권’, 장미는 ‘인간답게 살기 위한 권리’를 뜻한다. 또한 3월 8일은 1919년 대구 독립만세운동 당시 여학생들이 앞장서 활약했던 날이기도 하다. 
 
날씨는 흐렸고 쌀쌀했다. 비가 와서 비누 장미에 거품이 나면 어쩌느냐는 농담 섞인 걱정이 오가고 얼마 뒤, 굵은 빗방울이 하나둘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사진/바람아시아
                              
얼마 지나지 않아 마트 입구 주변에서 보라색 장미를 들고 걸어가는 행인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비를 맞으며 건넨 장미를 받은 시민들은 조금 의아해하는 눈치였다. 피켓을 든 회원 옆으로 다가와 캠페인의 목적을 물어보는 시민도 있었다. 사람들의 인식이 좋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기자의 우려와 달리 꽃을 나눠주던 민우회 회원은 “의외로 꽃과 유인물을 받아들고 질문과 격려를 해 주시는 분들이 많다.”며 “어떤 분은 사람이 좀 더 많은 곳에서 캠페인을 진행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조언을 해 주시더라.”라고 말했다.
   
꽃을 받아들고 있는 시민들. 사진/바람아시아
 
피켓팅을 하고 있는 여성민우회 회원. 사진/바람아시아
  
입구 옆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얼떨결에 피켓을 건네받은 기자, 어색한 자세로 피켓팅을 하기 시작했다. 한 행인이 다가왔다. “일하는 곳 안에 의자 다 있어요. 왜 왜곡해서 말해요? 누가 보면 의자 없는 줄 알겠구먼.” 시민은 민우회 회원과 이야기를 잠시 나누더니 “어쨌든 그 안에 다 앉을 수 있게 되어 있어요. 뭘 잘 모르네.” 라고 말하고 마트 안으로 들어갔다.
 
말마따나 요즘은 계산원의 뒤에 놓인 간이 의자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2008년에 전국적으로 ‘서서 일하는 마트노동자에게 의자를!’ 캠페인이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노동부가 ‘서서 일하는 근로자를 위한 건강 가이드’ 책자를 배포하기도 했다. 그 뒤로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 대형 마트에 의자가 배치되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서비스직인 마트 노동자들에겐 ‘그림의 떡’에 지나지 않는다. 서비스업 노동자가 서서 손님을 응대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사회적 인식 때문이다. 한 민우회 회원은 “언젠가 마트에서 계산하는 분에게 여쭤본 적이 있는데, 대부분의 고객이 서비스업 노동자가 앉아 있으면 좋게 보지 않는다. 불쾌해 하는 손님도 있고…. 서서 일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며 씁쓸해했다. 
                                      
사진/바람아시아
 
간이 의자를 배치했을 뿐 여전히 소비자 위주의 근로 환경도 문제점 중의 하나다. 외국의 경우 마트 노동자들이 물건을 앉아서 계산할 수 있도록 계산대가 낮게 만들어졌다. 반면 우리나라는 서 있는 소비자를 중심으로 설계되었기 때문에 계산대가 높고, 의자 또한 높아 발을 두는 곳이 불안할 수밖에 없다. 계산대에 다리 및 무릎을 위한 공간이 없어 의자로서 제 기능을 못 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등받이가 없는 간이 의자의 경우 장기간 이용하면 서 있는 것보다 더 몸에 무리가 간다는 지적도 나온다. 결국 의자는 계산대 한 쪽으로 치워진다.
 
여성민우회 회원들은 소비자들의 인식 개선이 우선이라고 말한다. 캠페인에 참가한 지역 주민 ‘바람(별칭)’은 “놓인 의자들이 쓰이게 하려면 먼저 소비자들부터 생각을 달리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게 이 캠페인의 목적이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소비자들은 의자의 존재와 필요성에 대해 거의 인식하지 못하고 있지만, 의자의 존재 여부에 관해 의문을 갖기 시작하면 필요성에 대해서도 관심을 두게 되고, 근로 환경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 ‘왜 안 앉지? 불편하지 않을까?’라고 묻기 시작하는 것이 변화의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이는 비단 마트 노동자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백화점, 대형 화장품 매장 등 서비스 직종 노동자들은 대부분의 근무 시간을 서서 일하고 있다. 이 단체는 백화점에서도 캠페인을 진행한 적이 있는데, ‘이러면 백화점 이미지에 타격을 준다‘며 불쾌한 시선을 보내는 이들이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마트 노동자의 근무 환경이 개선되면 노동 생산성도 향상되어 장기적으로는 결국 기업도 이득을 본다. 일례로, 세계적인 자동차 업체인 아우디는 공장 노동자들에게 ’Chairless Chair’ 일명 ‘의자 아닌 의자’를 보급했다. 다소 모순적인 이름의 이 의자는 종일 서 있는 노동자들이 받는 부담을 감소시켜 노동자의 근골격계를 보호한다고 한다.
 
사진/바람아시아
 
아우디 이사회의 임원인 허버트 와틀(Hubert Waltl) 박사는 “우리 종업원들의 건강을 좋게 하고, 또한 종업원들에게 최적화된 노동 환경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고 품질도 좋게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 먼 얘기일까. 
 
캠페인은 1시간 뒤 마무리됐다. 다 같이 모여 ‘마트 노동자에게 당연한 의자를!’이라는 구호를 외치고, 사진을 찍었다. 기자는 단체로부터 슬로건이 적힌 에코백을 받았다. 
 
여전히 마트 안에서는 노동자들이 선 채로 일하고 있고, 의자는 한 쪽으로 밀려나 있다. 사람들은 여전히 무심히 지나친다. 그러나 마트 안에서 불편함을 조금이라도 느낀 소비자들이 있다면, 천 리 길 걸음의 한 발자국 시작이 아닐까. 누구에게나 중요한, ‘때때로 앉을 수 있을 권리’. 다시 한 번, 마트노동자의 ‘앉을 수 있는 권리’를 이야기할 때이다.
 
사진/바람아시아
 
 
 
윤유진 baram.asia  T  F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