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신지하기자] #"선물 줄까, 1회 보험료 내줄까?" 지난해 6월 A씨는 보험설계사 B씨의 제안에 후자를 택하고 화재보험 청약서를 작성했다. 일주일 정도 후 화재 사고로 재산 피해를 입은 A씨. B씨에게 연락했다가 황당한 답변을 들었다. B씨가 아직 자신의 보험료를 내지 않아 보험가입이 안 돼 있다는 얘기였다. 결국 민사소송으로 이어졌다. A씨는 보험금을 탈 수 있을까.
보험청약서(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사진 / 뉴시스
◇법원 "보험금 못 받아…다만 설계사·보험사 손배 책임 있어"
법원은 A씨가 보험금을 수령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보험료를 대신 내주기로 한 B씨의 과실을 떠나 보험료가 보험사에 납부된 적이 없다는 점에 주목했다. 대신 B씨와 해당 보험사는 보험금을 타지 못한 A씨에게 배상 책임이 있다고 결론 내렸다.
서울중앙지법 민사6단독 심창섭 판사는 A씨가 B씨와 C보험사를 상대로 낸 보험금 등 청구소송에서 "B씨·보험사는 공동으로 350여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고 30일 밝혔다.
재판부는 "1회 보험료가 납부된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며 A씨의 보험금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B씨는 A씨가 보험금을 받지 못한 데 따른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또 B씨의 과실로 A씨가 손해를 입은 만큼 B씨의 소속사인 보험사도 배상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B씨가 보험료 대납을 제의에 A씨가 응한 게 현행법상 처벌할 수 있는 조항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설령 그렇다 해도 보험사는 B씨의 잘못으로 인한 A씨의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설명했다.
단, A씨가 B씨에게 보험료 대납을 하도록 했다는 점 등을 고려해 B씨와 보험사의 배상 책임을 40%로 제한했다.
◇법조계 보험 전문가들 "설계사 잘못…보험사도 책임 지운 게 핵심"
여러 보험사건을 오랫동안 다뤄온 최혜원(46. 사법연수원 36기) 김앤장 변호사는 우선 "'보험료 대납'이란 계약자가 낼 1회 보험료를 설계사가 내주고 나머지는 계약자가 내는 것"이라며 "보험업법상 3만원 이상의 보험료를 대납하는 행위는 금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이번 판결은 설계사의 잘못된 행동에 따른 계약자의 손해를 설계사뿐만 아니라 보험사에도 책임을 지운 것에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보험료 대납'의 불법 행위를 중점적으로 따졌다기보다는 전반적으로 보험업법 102조를 폭넓게 해석해 보험사의 책임 부담을 강조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보험업법 102조(모집을 위탁한 보험사의 배상책임) 제1항은 '보험사는 보험설계사가 모집을 하면서 계약자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 배상 책임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최 변호사는 "보험금 청구가 가능하지 않은 경우도 해당 조항으로 보험사에 광범위하게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말했다.
재경지법 민사를 담당하는 한 판사도 "이번 판결은 보험료 대납 행위에 방점이 있는 게 아니다"라며 "A씨의 손해가 설계사의 과실로 발생했기 때문에 보험사도 사용자 책임을 인정할 수 있다고 본 것이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신지하 기자 sinnim1@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