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지영기자]1997년 설립된 건설근로자공제회는 퇴직공제부금 수납 및 공제금 지급, 건설근로자 대상 복지사업 등을 담당하는 기관이다. 2013년 고용노동부 산하 공공기관으로 지정된 뒤에는 건설근로자 고용·복지서비스 전담기관으로 그 역할과 기능이 확대되고 있다.
권영순 건설근로자공제회 이사장은 공제회가 퇴직공제금만 적립해주는 기관이란 인식에서 탈피해 건설근로자들의 실질적인 ‘삶의 질’을 높여줄 수 있는 기관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를 위해 건설분야 인적자원개발위원회 등을 구성해 운영 중이다.
고용부 노동정책실장 등을 역임하면서 쌓은 전문성은 권 이사장의 최대 강점이다. 남은 임기 동안 권 이사장은 공제회의 사업영역 외에 산업재해, 임금체불, 고용불안정 등을 야기한 고용관행을 개선하는 데에도 최선을 다할 계획이다.
권영순 건설근로자공제회 이사장이 지난 21일 서울 을지로 국제빌딩 건설근로자공제회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이하 일문일답.
-퇴직공제제도 가입자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제도가 도입될 당시만 해도 100억원 이상 공공공사에만 적용됐으나, 이후 네 차례의 제도 개선을 통해 현재는 3억원 이상의 공공공사, 100억원 이상의 민간공사에도 적용되고 있다. 이에 따라 퇴직공제 가입 근로자 수도 크게 증가했는데, 올해 8월 말 현재 공제금을 찾아간 45만명을 제외하면 472만명이 가입돼 있다. 2013년부터 연차별로 8.8%, 6.9%, 5.9%씩 가입자가 증가하고 있어, 현행과 같은 수주가 유지될 경우 조만간 500만명도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공제금은 타 산업 퇴직금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또 미가입 근로자도 많다. 공제금 수준과 가입률을 높일 방안은 없는지.
먼저 가입률을 높이기 위해선 적용 범위를 넓혀야 한다. 제도의 혜택을 못 받는 민간의 중소 건설현장 근로자와 사업장 이동이 잦은 근로자, 건설기계 1인 사업자 등도 가입 대상에 포함시킬 필요가 있다. 공제금 수준을 높이기 위해선 현재 4000원 수준인 공제부금을 인상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법령상 한도액인 5000원으로 인상하고, 장기적으로는 퇴직급여에 맞춰 적립률을 8.3%까지 끌어올려야 한다. 현재 건설근로자의 적립률은 2.7%에 불과하다.
-퇴직공제금을 연금으로 전환하는 문제도 고려할 수 있는지.
그건 중장기적인 숙제다. 지금 1인당 공제금은 250만원 수준이다. 공제제도 가입 근로자 중 평균 적립일수가 250일 이상인 사람도 15% 정도다. 적립금 자체가 너무 적어서 연금으로 돌리자고 말할 수도 없다. 250만원을 연금으로 돌려봐야 급여액이 얼마나 지급되겠나. 근본적으로는 건설근로자의 종사(적립)기간이 길어지고 부금이 많아져야 한다.
-공제제도 대상을 넓히는 것만큼 중요한 문제가 건설근로자들의 직업안정성 높이는 것인데.
직업안정성을 높이려면 사회보험 사각지대 해소와 처우 개선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사회보험 문제는 적용 범위를 넓혀야 한다. 일례로 건강보험, 국민연금에 가입하려면 20일 이상 근무해야 하는데, 사업장에서 20일 미만으로 근로계약을 해버린다. 이런 탈법을 막을 수 있도록 가입 요건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 처우는 곧 임금인데, 발주자가 노무비 지급을 확인토록 하는 노무비구분관리제를 입법예고 중이다. 이와 함께 임금 지급주기 단축 등도 고민해봐야 한다.
-공제제도 외에 공제회의 주요 현안은 무엇인지.
건설현장은 다수 원하청 관계라 고용관계가 불확실하고 근로자의 이동이 잦아 관리가 어렵다. 그래서 작년부터 현장 단위로 단말기를 설치해 출퇴근할 때마다 카드를 찍으면 자동으로 고용관리가 되는 전자카드제 시범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9월 6개 현장에서 시작했고, 올해 하반기에 36개 사업장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시범사업을 해보니 같은 규모의 다른 사업장과 비교해 공제부금 가입률이 22% 정도 늘었다고 한다. 내년까지 시범사업을 해보고, 그 결과를 노사공 전문가들로 구성된 태스크포스(TF)에서 논의해 전국적으로 확대하려고 한다.
-전자카드제를 전국으로 확대하려면 비용이 많이 들 텐데, 사업비를 어떻게 마련할 계획인가.
단말기와 프로그램을 설치하는 데 돈이 많이 들어가는 건 사실이다. 사업장당 4~5대의 단말기가 필요하고, 단말기 한 대당 200만원 정도가 든다. 이 비용을 어떻게 부담할 것인지는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들어봐야 한다. 시범사업 비용은 우리가 지원하고 있는데 본사업으로 넘어간 뒤에도 모든 비용을 우리가 지원하면 부담이 너무 커진다. 가능한 방안으로는 고용보험기금을 활용하거나, 단말기 설치비용을 발주비용에 포함시키는 방법 등이 있겠다.
-공제회에서 취업지원 사업들도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있나.
건설일드림넷이라는 취업지원전산망을 개발해 운영 중이다. 이걸 토대로 스마트앱도 개발해 근로자 구인·구직 연결기능을 확대하려고 한다. 훈련 쪽에서는 지난달 인적자원개발위원회를 구성했다. 건설현장에는 임시일용직들이 많아서 기업들이 기능인력 양성에 소홀했는데, 이걸 산업 차원에서 접근해 훈련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 많아 구성하게 됐다. 앞으로 국가직무능력표준(NCS), 일학습병행제, 도제식훈련을 어떻게 기능인력 양성에 활용할 것인가를 논의하게 될 것이다. 중장기적으로는 기능인등급제를 활용한 적정임금제 도입도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건설근로자 대상 복지사업도 공제회의 주요 기능 중 하나인데.
복지사업과 관련해선 10월부터 생활안정대부제도를 도입했다. 건설근로자가 의료비, 결혼자금 등 급전이 필요할 때 적립금액의 절반 한도로 빌려주는 제도다. 대상은 250일 이상 적립 근로자다. 아울러 건설현장에서 재해가 많이 발생하지 않느냐. 산업재해에 대한 경각심을 심어주기 위해 25개 기관에서 훈련생 8000명을 대상으로 안전보건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또 현장에 찾아가는 안전교육도 지원하면서 안전보건공단과 함께 캠페인도 진행하고 있다.
-건설근로자공제회가 공공기관으로 지정된 지 이제 4년이 다 돼간다. 그간 공제회의 역할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설립 이래 20년간 공제회의 사업은 퇴직공제 중심이었지만, 공공기관으로 지정된 뒤에는 건설근로자 고용·복지 중심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가고 있다. 현재는 과도기다. 앞으로는 퇴직공제금만 적립해주는 기관이란 인식에서 탈피해 건설근로자의 고용·복지를 전담해 지원하는 기관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러려면 법령, 예산, 프로그램 등 조정해야 할 부분이 많다. 특히 건설현장의 고용관행은 수십 년간 별로 발전된 게 없다. 이로 인해 재해, 임금체불, 고용불안정 등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이런 시스템을 바꾸려면 상당한 제도·관행 개선이 필요하다.
-이사장 임기가 아직 2년도 더 남았다. 앞으로 추진하고 싶은 사업, 혹은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는지.
공제회가 이제 분명한 비전과 방향성이 있어야 한다. 말한 대로 공제회는 산업 차원의 건설근로자 고용노동정책을 실현해볼 수 있는 유일한 기관이다. 작년에 제3차 건설근로자 고용개선 기본계획을 수립했는데, 여기에 제반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이 거의 다 들어가 있다. 앞으로 공제회는 퇴직공제뿐 아니라 고용안정, 근로조건 보호, 취업지원, 복지로 영역까지 넓혀가면서 건설근로자들을 위한 고용·복지서비스 전담기관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김지영 기자 jiyeong8506@etomato.com